Art Holic/일상의 황홀

월요일 오전......혜화동에서

패션 큐레이터 2013. 4. 23. 18:14


페북에 올라온 사진들을 보다가, 문득 어떤 영화 제목을 봤다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영화 제목이라는데 <월요일 아침>이었다.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조직과 구조체에 묶인 개인으로 살아온 이들에게 이 말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 자명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겁을 상실한 걸까. 

이 월요일날 한적한 오전, 하루를 쉬고 혜화동에 나갔다. 



올 해 세 권의 책을 마무리 하겠다고 호언했는데 벌써 4월의 끝 자락에

서 있다. 두 권의 번역은 마무리 단계이고, 단행본도 에디터가 열심히 손 보고 

있으니 이제 곧 나올 것이다. 스튜디오에 하루종일 처박혀 글을 쓰다보니, 마른 식물

처럼 죽어갈까 두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흔히 '광합성'좀 하자며 산책하자는데 내겐 이상하리

만치 일종의 의례가 된 셈이다. 그렇게 나간 산책길이다. 에피톤 프로젝트의 이화동 

노래를 들으며 카페에 들어가 망고주스 한 잔과 베이글로 배를 가볍게 채운다.



글을 쓰다보면, 어느 장소에 가든, 장소성이 주는 작은 디테일에 주목한다.

물론 그속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이들의 목소리에도 살짝 귀를 기울일 때가 있다.

먼저 온 커플은 유통업체에서 일을 하는지, 모처럼 만에 쉬는 월요일날 함께 나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나 또한 백화점 바이어 생활과 점포생활을 했으니 내용을 모를 리 없다.

약간의 동병상련도 있고. 생활의 흐름이 다르다보니, 친구를 만나기도 어렵다

그렇게 작은 생의 흐름이 누적되다보면, 흔히 같은 판의 사람과 만나 

연애도 하고 등산도 가고 한다. 먹고 사는 방식이 삶을 바꾼다.



패션의 인문학은 이제 60퍼센트가 끝났다. <하하미술관>을 2009년에 

내고 3년이 흘러서야 후속편을 낸다. 이번에는 하하미술관 시절보다는 다소 

육중한 메시지들이 담길 것이다. 물론 그림은 유쾌하고 발랄하다. 우리 사회의 정서

구조와 그 내부를 보는 일, 이것을 그림과 글로 풀어내는 일은 두 개의 감정과

싸우는 일이다. 포기할까? 혹은 여전히 희망을 품어볼까? 자발적인 패배

보다는 싸움을 걸고, 그 속에서 쌓인 응어리라도 토해보고 싶었다. 



책이 사멸할 지경이라고 한다. 사람들이 책을 읽지 않는다고. 출판계

에디터들은 말한다. 스마트폰으로 게임이나 음악을 드는 이들은 자주 봐도 

사실 텍스트를 대면하고 생각하는 이들을 만나기란 쉽지 않은 게 현실. 텍스트가 

정보와 지식을 주는 최첨단이 아닌 이상, 여기에 대해 슬프다 말할 생각은 없다. 텍스트가 

최고도 아니고, 최고의 권위를 가진 승인자로 아니지 않은가. 그럼에도 글을 읽으며

머리 속으로 자신의 양식으로 해석해내는 능력은 급격하게 떨어지는 듯 하다.

그런 요즘 학생들을 가르쳐 보면 안다. 검색은 잘 하는데, 사색을 하지

않으니, 검색한 내용을 연결하고 주체적으로 소화하는 역량은 

한없이 떨어지는 것 갚다. 뭐든 상보적인게 좋을 텐데.



매 해 열심히 활동하자고 내 자신에게 되뇌인다. 올해도 방송 몇개가 

이미 잡혀있고, 패션 다큐 제작과 방송강의가 있을 듯 싶다. 다큐인이란 프로

에서 나란 한 개인을 포착한 내용을 다루고 싶다는데 6월로 하자고 해두었다. 방송에

나간다고 더 잘팔릴 이유도, 인지도가 올라가는 것도 아니지 싶다. 다만 하고

싶은 말들, 목소리를 담을 그릇을 찾는 것일 뿐이리라. 그렇게 생각한다.



글을 쓰는 것은, 적어도 내겐 누군가에게 손으로 꾹 눌러 쓴 손편지를 

쓰는 일이다. 편지엔 너무 어려운 내용을 담아서는 안된다. 자신의 근황과 더불어

편지를 읽는 이에 대한 마음을 더 많이 담아야 한다. 이번 미술책은 그런 마음을 담았다. 

40대 독자를 염두에 두었지만, 사실은 우리 사회가 받아들여야 할 하나의 라이프 스타일을 다시 

한번 고민해보자고 어떤 개념을 줄창 풀어봤다. 마음에 들어야 할텐데. 그렇다고 꼰대스런

목소리를 내진 않았다. 글을 통해 누군가를 껴안고 위로하고, 작은 지혜의 편린 하나

얻어간다면 다행이지 싶다. 6월 초에나 나오게 될 것 같다. 하하미술관으로 

만나 이 곳에서 독자가 되어준 이들도 많다. 그들에게 가장 먼저 

이 소식을 전하며 책을 바칠 생각이다. 멋진 파티도 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