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핸드백 전문기업 시몬느 탐방기-인생에서 돈으로 살 수 없는 두 가지

패션 큐레이터 2012. 8. 30. 00:38

 

 

 

시몬느 가는 길, 폭풍을 뚫고

태풍 볼라벤이 북상하던 28일 오전 12시, 핸드백 전문기업 (주)시몬느의 박은관 회장님을 뵈러 갔습니다. 28일 점심 약속을 한 터라, 저는 처음 신사동 핸드백 박물관에서 잠깐 간단하게 뵙자는 것인 줄 알고 카메라도 준비를 해서 가지 못했는데요. 시몬느 본사로 가는 여정이었습니다. 경기도 의왕시 고천동에 자리한 3층짜리 사옥은 파사드부터 심상치 않았습니다. 건물의 외형은 초록빛으로 가득한 울창한 숲이 촘촘하게 감싸안고 있었습니다. 여느 기업과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회장님께서 본사 사옥 구경을 시켜주신다고 해서 투어 정도로 생각했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놀랄 수 밖에 없었네요. 사진 속에서 맨 오른쪽이 박은관 회장님이시고요. 중앙에 계신 분이 패션 인사이트의 편집국장님이세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곳은 시몬느 본사를 둘러싼 숲 길입니다. 각 사무실은 숲과 연결되어 있고, 차양 밖으로 햇살과 바람을 충분히 맞을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사옥 로비에는 갤러리를 연상시키듯 수 많은 미술작품이 걸려 있었습니다. 신선미 작가의 유쾌한 한복이 눈에 띄는 한국화에서 부터, 신인작들의 작품에 이르기까지, 예술 컬렉터로서의 면모를 보여주신 박은관 회장님의 눈썰미를 살펴볼 수 있었는데요. 제 블로그를 보시고 한번 만나고 싶었다고 하셔서 저도 이날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들을 수 있었습니다. 취미가 비슷하고 바라보는 세계의 무늬가 동일한 분을, 기업 회장으로서 만나기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제겐 더욱 의미있는 자리였고요. 


시몬느에 대해서는 의외로 아는 분이 많질 않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글로벌 핸드백 시장에서 이 기업이 차지하고 있는 위상은 엄청납니다. 코치(Coach)나 마이클 코어즈, 마크 제이콥스, 셀린, DKNY, 지방시, 케이트 스페이드와 로웨베 등 세계적인 브랜드의 핸드백들이 실제로는 이 회사에서 ODM으로 납품하는 제품이랍니다. 숨어있는 강자라고 비유될 만한 강소기업이죠. 이 회사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건, 신사동 가로수길에 백 스테이지란 핸드백 박물관 공간이 생기면서 부터였습니다. 정교한 컬렉션을 보면서, 이 정도를 할 수 있는 회사라면 상당한 기업전반의 미감을 갖고 있는 회사일 것이다란 판단을 했거든요.



제가 가본 사옥 중에 가장 아기자기하고 예쁜 건물이었습니다. 남녀 화장실도 직원들이 벽의 마티에르를 살려서 멋지게 만들었고요. 작은 부분 하나하나, 디테일까지 핸드백 명품 기업답게 디자인을 했더군요. 사진 속 공간이 그림이 놓여진 회장님의 공간입니다. 현대미술 작품이 많습니다. 미술계의 컬렉터 분들과 계를 만들어서 작품도 보고 구매하고 콜라보를 위한 가능성도 타진하시고요. 좋아하는 작가군이 저와 많이 겹쳐서, 개인적으로는 기분이 좋았습니다. 컬렉터들은 컬렉션을 보고, 사람의 인품이나 개성을 타진할 수 있습니다. 왜냐면 컬렉팅이란 행위 자체가 언어로 표현하지 않는 부분을, 제2의 자아를 은밀하게 드러내는 방식이기에 그렇죠.



바이어 미팅을 위한 응접실입니다. 밖으로는 초록빛 가득한 쉼터 공간이 연결되어 있고, 그 안에는 박은관 회장님이 직접 외국의 플리마켓에서 구매한 멋진 빈티지 가구와 소품이 즐비하게 배열되어 있습니다. 이런 것들이 컬렉터의 눈썰미와 감각이죠. 칭찬을 안할 수가 없습니다. 사람이 돈만 많다고 예쁘게 꾸미고 사는게 아니랍니다. 감각이란 건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데다, 많이 사보고, 보고, 느끼고 실패해봐야 그런 감각이 생겨요.

 

회장님 표현대로 '누적되는 시간의 힘'을 돈으로 살 수 없다는 말씀에 적극 동의합니다. 회장님의 선대 아버님께서 정원을 가꾸시면서 해주신 말씀이라고 하더군요. "인생에서 돈으로 살 수 없는 두가지가 있는데 정원과 나무다. 왜냐하면 돈이 있으면 물론 비싸게 조형된 나무를 미리 가져다 심을 순 있다. 하지만 이것이 너의 나무가 되려면 네가 가지를 잘라 접을 붙이고, 토양에 뿌리를 내려서 그 빛깔이 드러나야 하는 것" 이기에, 그만큼 서두르지 말고 기다려야 하는 것이라고요.


 


시몬느 핸드백 박물관의 컬렉션들


핸드백을 만드는 일도 그렇습니다. 우리가 해외 명품에 푹 빠져 국내 브랜드를 평가절하 하는 동안, 시몬느는 한국의 전통 가죽기술을 부활시키고, 그 기술을 접목하고 응용해서 문화적 헤리티지가 될 수 있는 품목으로 만들고, 우리의 스토리를 입히는 과업을 하신거죠. 이 부분은 칭찬해야 합니다. 게다가 이 회사의 장점이 직원들의 내부 만족도가 높다는 것입니다. 사옥 안에 직원을 위해 설치한 헬스장이며 다양한 파티오등 시설적인 측면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후생적인 측면을 지키고자 했던 경영자의 마인드가 이것을 이뤄냈다고 봐야죠. 이렇게 이직율이 낮은 회사는 한국 내 중소기업에서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가죽을 다루는 일. 섬세하게 기술을 축적하고 내부적으로 쌓아야, 경쟁력과 비교우위가 발생하는 업종입니다. 장인의식이 필요하죠.

 

우리가 장인의식을 아무리 떠들어도, 이들을 한 조직에서 꾸준하게 작업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기술의 융합과 축적이 이뤄지지 않으면 이는 정치적 수사에 불과합니다. 회장님이 그러시는거에요. "우리 나라도 이제 우리만의 스토리를 가진 브랜드라 나올 때가 되었어요. 솔직히 2천억만 있어도 기본 브랜드 사다가 장사 잘할 수 있지. 하지만 우리 브랜드를 만들려면 솔직히 시간이랑 돈도 더 걸리고, 힘들지 하지만 누군가는 해야 되잖아. 그렇다면 내가 그걸 해보겠다는 거지" 제가 이 말씀 한 마디에 매혹이 되었습니다.

 


좋은 경영자를 만나는 시간은 행복합니다. 한국어 마케팅을 위해 캐나다 UBC의 한국어학 연구소와 미네소타 대학의 한국연구소 등에 6만불씩 비용을 대주고 계시더라구요. UBC 한국어 연구소에서 소설가 박완서 선생님의 작품을 영어로 완역한 사실을 아는 분은 많지 않습니다. 제가 CEO 평가점수가 굉장히 짠 편입니다. 어떤 자리에 있는 사람이, 그 자리에 있음이 당연하다고 느껴지는 것. 그런 사람을 만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 자리가 합당하다고 믿음이 가는 분을 뵈었네요.

 

솔직히 회사 하는 입장에서 그저 제 회사나 생각하고 살기 마련인데요. 이 날의 만남으로 저도 많은 걸 배웁니다. 한국에도 좋은 CEO들이 패션 분야에서 많이 나와야 합니다. 그렇게 될 때 바로 해외의 SPA 브랜드가 모든 시장을 평정한 우리의 패션시장에, 우리의 숨골을 틔우고 자신의 목소리를 담은 패션을 세상에 선보일 수 있을 테니까요. 정말 이 시몬느란 회사가 건승하셨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