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모드의 시작-패션 교육의 역사를 되집다
에스모드 졸업전에 다녀왔다. 신인발굴 프로젝트를 시작한 요즘, 홈쇼핑과 동대문 디자이너들과의 결합은 아주 흐뭇한 소식이다. 바로 돈이 되는 디자인만 선점하려는 노력을 넘어, 패션의 토대가 될 수 있는 교육적 환경에 대한 선행 투자가 필요하다. 패션이란 것도 결국 사회 내부의 시스템으로서, 역사의 일부를 이룬다. 다시 말해 패션교육도 이처럼 역사를 통해 누적되며, 원칙과 훈육의 방식을 직조해낸다. 이 교육상의 스타일은 타 국가로 이식되면서 언어처럼 그 사회내부에 기존에 없었던 인식의 주름을 만들어낸다. 한국사회에서 에스모드란 프랑스발 패션학교의 시스템과 도입 또한 그런 맥락에서 읽어볼 필요가 있다. 세계적인 패션 학교가 동일한 과목을 갖고 있다고 해도, 결국 가르치는 페다고지의 방식이 다른 것이다. 결국 문화의 문제다.
SADI에서 미국식의 기능주의적 관점의 제도적 흔적을 읽을 수 있다면 에스모드에서는 견고한 장인의식을 바탕으로 하되, 근대 파리의 변화에 맞추어 패션을 시스템화했던 그들의 역사와 교육방식이 녹아있다. 궁정화가 빈터할터의 그림 속 나폴레옹 3세의 황후였던 외제니의 수석 재단사였던 알렉시스 라비뉴가 1841년 설립한 이 에스모드는 엄정한 재단기술과 패션 디자인의 결합이라는 숙제를 오랜동안 풀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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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 바늘상 : 손지민
이번 졸업전의 전체 테마는 <APP'shion>이다. application과 fashion의 합성어로, 트렌드 사이클이 짧아지고 패션 소비층의 욕구와 취향이 다변화되고 있는 요즘, 스마트폰 어플리케이션처럼 패션 콘텐츠 유저들의 니즈에 맞는 다양하고 크리에이티브한 아이디어의 패션작품을 선보인다는 의미이다. 에스모드는 전통적 테일러링 기술의 전수와 창의적 디자인 과정을 중시하지만, 이에 못지 않게 시장의 변화와 역동성에도 관심을 기울이며 학생들을 지도한다. 이런 정신이 구현된 것이 바로 패션 마케팅 학교인 ISEM인데 에스모드에서 설립한 패션 학교다. 라이프스타일의 주기가 점점 더 짧아지며 급격한 변화의 속도를 견뎌내는 것이 경쟁의 요체가 된 요즘, 패션을 일종의 애플리케이션으로 보려는 태도가 아주 인상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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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전설이 된 패션 디자이너 발렌시아가는 스스로를 디자이너라기 보다는 쿠튀리에, 옷을 재단하는 사람이라고 불렀다.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재단이란 용어가, 모델링이란 단어의 힘이 스타일을 만드는 디자인 과정보다 하위에 속하는 것처럼 인식하는 버릇이 있다. 하지만 스페인의 문화적 자양분을 충분히 결합한 발렌시아가의 옷은 그의 뛰어난 재단기술이 없이는 불가능 한 것이었다. 최근에 진행된 알렉산더 맥퀸 또한 마찬가지다. 모델리즘은 아이디어에 실제적인 질료를 통해 존재의 집을 짓는 과정이다.
최고의 패턴 디자인을 보여준 학생에게 돌아가는 금바늘상은 모시적삼 속에 받쳐 입어 통풍을 도와주는 등거리를 모던하게 해석한 여성복 전공 손지민에게 돌아갔다. 그녀는 굵기와 형태가 다른 두 종류의 면 스트링과 모시로 끈을 만들어 등거리의 짜임과 한국 전통매듭의 형태를 이용, 디테일을 잡았고, 한복에서 보이는 겹겹의 주름 느낌과 고쟁이의 패턴을 응용해 소재 자체의 볼륨감을 최대한 살린 작품을 제작했다. 아우터에는 모시를, 이너웨어에는 실크와 오간자, 면, 한지사 등 내추럴한 소재를 사용하였고, 시접처리는 안과 밖에서 모두 깔끔하게 보일 수 있도록 손바느질로 통솔 처리했다. 전통적인 짜기와 매듭기술을 서구의 재단기술을 통해 재해석해낸 디자이너의 시선이 멋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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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아동복 바이어를 했던 경험 때문인지 그냥 지나칠 수 없었던 박형민 학생의 아동복 작품들이다. 전투기 조종사 복식을 응용해 남자 아이들의 활동성에 의미를 더했다. |
고혹적인 란제리도 눈길을 끌었다. 최근들어 란제리의 역사를 비롯, 디자인의 진화과정에 대한 공부들을 하고 있던 터라 유독 눈에 들어왔다. 란제리는 결국 유혹의 기술을 진화시켜온 인간의 역사다. 여기에 기능성을 결합한다면 어떨까? 지금처럼 여성 스스로가 독립적 주체로 살아가는 도시에서, 그녀들의 속옷이 변하는 건 당연한 이치다. |
강상우 학생이 지퍼와 버클 등의 패스닝 제품의 특성을 가장 잘 살린 작품에 수여되는 YKK한국상의 영예를 안았다. 개인적으로 패스너를 이용해 옷을 구성하는 것에 관심이 많다. 건축과 패션을 하나의 관점에서 바라볼 때, 벽돌과 벽돌 사이를 이어주는 이음새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이 패스너다. 집이란 실체에는 벽이라는 공간의 균열이 있기에 오히려 공간은 절제된 조화를 가질 수 있다. 옷도 마찬가지다 이 역할을 하는 거시 바로 지퍼다. |
에스모드 전시는 여성복, 남성복, 란제리, 아동복과 같이 복종으로 나누어 전시를 한다. 패션업계 실무자 및 패션계 대표 인사들로 구성된 52명의 외부 심사위원들로부터 가장 높은 점수를 받은 심사위원상은 스포츠웨어와 포멀웨어를 결합한 하이브리드 컬렉션을 제작한 남성복 전공 김진휘 학생에게 돌아갔다. 'Hybrid Emotion'이란 테마의 컬렉션을 제작한 김진휘는 테일러드 재킷과 블루종이 믹스된 아이템을 디자인하거나 스포티브한 느낌의 블루종과 함께 포멀 팬츠나 스커트를 매치하는 등 아이템과 스타일 두 면에서 모두 하이브리드적인 컬렉션을 보여주었다.
테일러드 재킷에 스포티한 블루종 소매를 믹스하거나 코트를 뒤집으면 블루종으로도 입을 수 있으며, 가방의 지퍼를 열어 패딩을 내놓으면 베스트로도 활용할 수 있다. 김진휘의 작품은 스포츠웨어와 포멀웨어를 매우 스타일리쉬하게 결합해 새로운 콘셉트의 남성복 라인을 제시했을 뿐만 아니라 옷에 태양열 충전판을 부착, 유사시에 스마트 기기의 충전이 가능하도록 기능성까지 고려했다는 점에서 심사위원들에게 높은 점수를 받았다. 김진휘는 "127시간이란 영화에서 하이킹 중 사고를 당해 에너지가 고갈되어 가는 주인공의 모습을 보고 태양열 전지판이 옷에 부착된 기능성 의상을 착안하게 되었다"며 "스트링과 지퍼를 이용해 스포티브한 스타일로 변형해 입을 수 있도록 하면서도 포멀웨어로도 손색이 없는 옷을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다. 패션과 기술의 결합을 넘어, 스마트 시대의 아이콘으로 언제든 변모할 수 있는 옷의 기능적 변신에 주목해볼 만하다. |
졸업 발표회에서 크리스틴 발터 보니니 에스모드 파리 교장님과 짧게나마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높은 테크닉'의 수준을 자랑하는 에스모드 서울이다. 각 학교별로 특성화의 과정이나 결과물이 다를 수 있다. 패션은 문화이며, 그 속에서 이를 흡수하고 옷이란 실체를 만들어가는 이들의 손과 뇌를 좌우하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어떤 특성이 더 낫다라고 판단하지 않는 것이다. 우리가 우리의 표정을 패션에 담기 위해, 오랜 세월을 통해 축적해온 것들, 이것이 옷을 통해 드러날 뿐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의 표정이 제대로 담겼는가를 판단할 근거를 만드는 일이다. 패션이 어플이 될 수 있는 건, 바로 그 아이콘의 표정을 통해 우리의 내면을 드러내기 때문이리라. 졸업 후 각자 최고의 회사에서 다시 옷을 만들겠지만 어디를 가든 기억했으면 하는 마음이다. SADI와 에스모드, 올 겨울 두 학교에 차례로 다니며 학생들의 작품을 봤다. 그들의 열정이 부럽고 고맙다. 건승하시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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