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 Fashion/패션 필로소피아

한국의 바느질, 뉴욕을 접수하다

패션 큐레이터 2012. 1. 4. 23:50

 

지난 해 겨울, 코리언 아이전 취재를 위해

갔던 뉴욕이었습니다. 한국 현대미술작가들을 세계

미술시장의 핵심부에서 알리는 일은 그리 쉽지는 않았습니다.

당대의 예술가가 태어나고 지위를 유지하고, 그들이 작업을 통해 시대와

소통하는 일만큼이나, 사실 기획자나 마케터, 스테프들의 일손도 힘들긴 매한가지입니다.

이 전시와 더불어 부속 행사가 있었습니다. 코리언 아이전의 스폰서중 하나인

설원문화재단에서 주최한 한국자수명인 시연전입니다.

 

 

자수명장 김태자 선생님을 초청, 뉴욕의 한복판

아트 앤 디자인 뮤지엄 6층의 포럼 공간에서 시연전을 열었습니다.

서구에선 유독 중국과 일본의 자수는 알려져 있지만 한국의 자수기법과 특성들은

그다지 알려져 있지 않다보니, 이런 계기를 통해 단순히 자수를 넘어 바느질로 그리는 그림

이라는 자수의 본질을, 인간의 장식욕구를 담아내는 원초적인 바느질의 힘을

알릴 수 있는 계기였다고 생각합니다. 자수박물관 관장님이자

패션 컬렉터이신 정영양 선생님께서 애를 많이 쓰셨죠.

 

 

현란한 자수 장식으로 만들어진 다양한 패션 소품을 보는

서구인들의 눈은 놀라움으로 가득찹니다. 사실 자수를 전파하겠다고

생각한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자수를 이용해 미국에

거주하는 아시안들에게 정체성의 질문을 던지는 일을 하고 싶으셨다고 하셨지요.

굉장히 의미있는 답변이었습니다. 바느질 한땀 한땀은 결국 우리들의

외피를 구성하는 일종의 벽돌과도 같은 것이니까요.

 

 

직접 시연에 참가한 이들의 모습이지요. 바느질이란 공통의 행위

앞에서 한땀 한땀 서로의 이야기들을 나누고, 인사를 하고 시연에 빠져들어갑니다.

 

 

자수를 이용한 안경 케이스입니다.

자수를 의미하는 Embroidery의 어원을 라틴어로

찾아보면 Ars Pictura입니다. 말 그대로 바늘로 그리는 그림의 기술

입니다. 이때 픽투라는 그림이란 뜻과 더불어 한 편의 시를 짓는 기술, 바로 시학적

관점이란 뜻도 아울러 갖고 있지요. 한 장의 그림을 그리는 일, 천 위에 장식을 목적으로 한편의

바늘의 영혼을 빌어, 그림을 그리는 일, 이 모든 것들이 생의 찬미를 위한 것임을

다시 한번 배웁니다. 바늘이란 물자는 때로는 찔릴 때, 우리를 아프게

하지만 그것은 관성에 빠지 우리들을 찔러, 긴장하게 하고

상처를 봉합하는 생의 마법을 부리기도 하지요.

 

 

이틀 동안 열린 행사인데요. 사실 뉴욕에서

이 정도의 공간을 이틀동안 빌리는 것도 쉽지가 않습니다.

우리는 툭하면 한국의 디자이너들이 혹은 화가들이 뉴욕에서 전시를

했네 어쩌네 하면서 '세계를 빛낸' 이란 식의 전가의 보도들을 꽤 자주 접합니다.

대부분 국민의 혈세로 이뤄진 전시행정들이 대부분이고, 뉴욕에 거주하는

한국인들이 행사의 관람객으로 참여하는게 불편한 진실이죠.

 

 

실제로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한국이 아닌

다른 사회에서 주류에 끼어든다는 건 그만큼 어렵습니다.

더구나 과학이나 기술분과가 아닌 인간의 미감과 주관을 다루는

예술과 공예 분과에서 체감할 수 있는 벽은 정말이지 만만치 않지요. 이때

이런 부분들을 처리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관료적인 태도에만

빠져있는 관공서들 혹은 공무원들의 전시 행정에 목을

매기 보단, 컬렉터나 열혈 지원자들을 통해

주체적으로 행사를 주관하는 것이

더 나을 때가 많습니다

 

 

이번 행사 후, 아트 앤 디자인 뮤지엄의 관장님이

직접 정영양 선생님께 감사 편지까지 보냈다고 들었습니다.

이후 관련 행사들을 적극 지원하겠다는 언질까지 받았다고 하시더라구요.

행사를 취재한 저로서는 정말 기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한편으론 왜 이 나라는

이런 문제를 항상 독립적인 개인의 힘으로 해내야 하는 가에 대한 불만은

여전합니다. 외교를 자임하는 자들은 하나같이 몰상식한 행동으로

눈쌀을 찌푸리게 하는 일이 많았던 작년 한해였지요.

그래서인지 정영양 박사님의 다소 외로운

싸움이 고맙고 감사합니다.

 

 

이 늦은 시간에 뉴욕에서 전화를 주셨네요.

글을 쓰는데 관장님 목소리를 들으니 반갑기 그지

없습니다. 뉴욕의 저명한 사립고등학교에서 자수 시연을 해달라는

요청을 받으셨다네요. 이 외에 여러 단체에서 요청을 받으셔서, 입이 함지박.

저로서도 기쁘지요. 전통적으로 바느질이란 하면 규방 공예라 했고 스스로 여인들의 영역이자,

거시적인 남성의 역사의 영역에 낄 수 없는 작은 것 들의 역사라고 규정해온 우리의

뿌리깊은 편견이 있습니다. 이 깊은 벽을 넘어, 바늘로 그리는 그림을 통해

세상과 소통하는 날을 기대해봅니다. 우리의 문화를 타인들에게

알리는 일은 만만한 작업이 아닙니다. 한번에 되지 않기에

오랜 시간을 놓고 서서히 해빙의 기회들을 만들고

우리의 품 안에 녹여내야지요.

 

다시 한번 수고하신 김태자 명장과

뉴욕의 또 다른 명장, 정영양 박사님께 박수를 보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