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 Fashion/런웨이를 읽는 시간

한 장의 담요, 현대 패션의 영감이 되다-프로엔자 스쿨러의 2011 F/W

패션 큐레이터 2011. 10. 7. 04:27

 

 

인디언 섬머를 보낸지 얼마나 되었다고

벌써 가을 기운이 깊다. 오늘 출근 길은 기온이 뚝 떨어져서

사무실에 자리 잡고 일하는 시간, 머리를 차게 유지하려고 방의 온도를 최소로

맞추어 놓았다. 아래가 차다. 이럴 땐 한 장의 따스한 담요가 그립다. 여행용 포터블 담요나

다음 주에는 챙겨 놔야지 하는 생각을 하다가, 문득 올 2011 F/W 런웨이에 등장한

프로엔자 숄더의 옷을 생각했다.  세라프라는 멕시코의 전통 담요에서

영감을 얻어 패션에 적용한 마음이 요즘 같은 계절에 딱이다

 

 

프로엔자 스쿨러는 뉴욕에 기반을 두고 활동하는 여성복과

액세서리 브랜드다. 2002년 디자이너 잭 컬러와 라자로 에르난데즈가

설립했다. 이 듀오는 파슨즈에서 공부하던 시절 함께 알게 된 인연으로, 졸업 논문을

준비하며 시작한 프로젝트를 실제 패션사업으로 옮겼다. 프로엔자 스쿨러는 두 디자이너가 각자

자신의 엄마의 결혼 전 성을 따서 만든 이름이다. 그들을 알게 된 건 꽤 오래되었지만, 2005년에 발행된

<패션 디자이너 서바이벌 가이드>를 한국어로 번역하면서 그들에 대한 리서치를 했었다.

그때 지금껏 그들이 발표한 옷들을 살펴볼 기회가 있었다. 특히 미국 패션 디자이너

협회에서 전략적으로 후원하고 인큐베이터를 통해 키워주는 브랜드였기에

어떤 요소들이 많은 기업가들에게 '매혹'을 느끼게 하는지도

궁금했다. 이런 요소를 잘 알아야 마케팅을 하니까.

 

 

프로엔자 스쿨러의 옷은 장인의식과 디테일에 천착하되, 두 요소가

현대적인 감각과 잘 어울릴 수 있도록 시각적 균형을 맞추는 힘에 장점이 있다.

무엇보다 정교한 테일러링을 유지하면서도 세련된 편안함을 착용자들에게 부여하는 옷이다.

자신들의 패션의 영감과 이미지를 위해, 항상 스스로 소재와 직물을 개발하고 직접

염색을 해서 한벌 씩 꼼꼼하게 만든다. 현대와 청년문화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재해석하는데 심혈을 기울였던 그들이 이번 시즌엔 멕시코의 전통

문화 중 시각적으로 아름다운 담요, 세라프를 들고 나왔다.

 

 

멕시코 전통담요인 세라프는 그들의 다양한 색채만큼이나

풍성한 역사적 근거를 자랑한다. 흔히 세라프, 자라페, 사틸로라고도

불리는 이 세라프는 수백년에 걸쳐 멕시코와 과테말라 지역의 가난한 노동자 계급의

장방형의 필수 의류였다. 추위를 막고 노동에 지친 이들이 땀을 식히며 보온을 할 수 있도록 전통

직기로 하나씩 아름답게 빚어냈다. 오리지널 세라프는 실제 형태로 보면 거의 멕시코 산

폰쵸같이 생겼다. 머리 부분에 구멍을 내고, 어깨 위로 걸쳐 입는 형태다.

 

 

이 세라프는 멕시코 북동부 지역의 꼬아윌라 지역에

거주하는 치치맥 사람들에게서 기원을 찾는다. 꼬아윌라 지역

사람들은 현지에서 다색상의 우븐 담요들을 잘 만드는 것으로 명성이 높았다.

오늘날도 여전히 이 전통은 이어져, 멕시코 여행 중, 세라프를 사는 사람들의 손길은

계속 이어져오고 있다. 나 또한 멕시코 여행 때 이 세라프를 몇 개 샀는데

지금도 갖고 있다. 겨울에 덮으면 여행의 기억이 되살아난다.

 

 

오늘날의 멕시코산 세라프는 더욱 다양한 디자인으로

진화 중이다. 전통에 기인하되 그 전통기법과 빛깔을 오늘날의

감각에 맞추어 실내 인테리어 소품인 의자를 만드는 데 사용하기도 한다.

무엇보다 스트라이프 무늬와 밴드 형태의 기본 디자인을 보색들로 병치시켜 시각적인

현란하고 아름다움 느낌을 자아낸다. 조금 어두운 기본 색에 밝은 황색과 오렌지

빨강, 파랑, 초록, 자주, 이외에도 시각적으로 활발한 느낌의 색상들을

질서감있게 배열한 세라프는 그 자체로 따스한 느낌을 준다.

 

 

이 세라프는 단순하게 노동자의 복식을 넘어

인테리어를 더욱 환하게 만들어주는 소품으로도 사용된다.

세탁하기도 편리하고, 언제든 아웃도어용 소품으로 쓰기에 여러모로 좋다.

현재 이 세라프는 멕시코 정부의 보호아래, 공정무역 품목으로 지정, 개별적으로

핸드 메이드로 만들어진다. 직물 자체의 아름다움 때문에 일종의

예술작품으로 대접받는 지경에 이르렀다.

 

 

전통을 되살리자는 말을 참 많이 듣는다. 한국의 디자이너들

특히 파리를 비롯한 유럽을 침공 하고자 했던 1세대와 1.5 세대 디자이너들은

한국적인 요소를 찾으려고 부단히 노력을 했다. 문제는 그 노력이 항상 한정된 상상력에

스스로 갖혀 있었다는 점이다. 문화관광부의 패션 관련 프로젝트들은 바로 이런 그릇된 사고들의

정확한 예다. 툭하면 오방색이 어떻고 한국적 쉬크가 어떻고를 이야기 하지만 실제로 한국 패션의 제다움에

대해선 제대로 된 논의를 한적도, 혹은 상품화에 옮겼다고 하지만 판에 박은 듯한 것들만 양산해왔다.

왜 이런 지경에 도달했을까? 우리 스스로 전통을 이야기 하면서, 스스로 전통이란 단어의

맥락을 협소하게 풀어낸 탓이다. 역사적인 상상력의 빈곤 탓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너무나도 대표적이지만, 간과되어 왔던

멕시코의 세라프를 이용, 런웨이를 화려하게 장식한 프로엔자 스쿨러의

의상들은 눈에 띤다. 특히 미국 시장에서 메스티조 그룹이 인종 비율의 상당 수를

차지하는 것을 고려해 본다면, 마케팅적으로도 그들의 무늬와 패턴 이용은 상당히 매력적인

요소를 쥐고 있다. 전통과 시장의 역동적인 상황, 고객 프로파일을 묶어 사유할 수 있는

디자이너들의 능력이 부럽다. 우리도 배워가야 할 요소가 아닐 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