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2011년 패션 디자이너 헬무트 랑의 S/S 컬렉션 제품이
백화점에 입고되었다. 항상 그렇듯 그의 디자인은 참 단순한 실루엣이 토해내는
우아함과 깔끔한 멋이 있다. 어쩜 이리 변하지 않아도 지속적인 사랑을 받는데는 이유가 있을터다.
헬무트 랑은 오스트리아 출신의 패션 디자이너다.
이번 비엔나 여행 때, 그의 흔적을 조금은 되집어 가봤다. 여행에서
만나는 패션 디자이너들. 통일성있게 편집만 할 수 있다면 한 권의 책 소재로 그리
나빠보이지 않았다. 1986년 자신의 브랜드 헬무트랑을 세웠던 그는 2005년 자신만의 예술
세계를 지키고 싶은 욕심에 회사를 떠났다. 이후 회사는 프라다에게, 뒤에 일본의
링크 씨어리 지주회사에 인수되었으나 그가 패션계에 남긴 영향은 만만치 않다.
크레이프 소재로 만든 블레이저에
크롭팬츠가 간결하면서도 봄/여름 시즌 상품으로 깔끔하게 빠졌다.
불규칙 테이프로 성글게 디자인한 탁한 베이지 빛깔의
스웨터와 저지 소재의 스커트도 좋다. 여기에 발그레한 점토색 상의를
겹쳐 입어도 좋을 듯. 믹스 앤 매치가 비교적 자유로운 품목으로만 구성을 한 듯 하다.
어린시절 조부모 밑에서 시골에서 자란 탓일까
그의 디자인은 자신이 어린시절을 보낸 비엔나 외곽의 근린지역에서
찾아볼 수 있는 자연의 빛깔들을 담는다. 대학에서도 금융을 전공했던 그가 패션으로
전향을 하게 된 건 놀랍다. 파리 퐁피두센터에서 열린 <비엔나 1880-1993>전에 자신의 옷을 출품했던
그는 이곳에서 평론가들의 극찬을 받으며 파리에 안착, 이후 자신의 이름으로 브랜드를 런칭하며
단순하면서도 세련된 디자인의 디자인을 발표했다. 특히 흑백의 날씬한 수트와 데님
작품들은 1980년대 미니멀리즘 예술의 전성기와 더불어 사랑을 받았다.
올 상품 중에서 사입하고 싶은 상품이다.
칼칼한 느낌의 린넨 트윌 소재를 이용한 블레이저와
시폰 소재의 탑, 여기에 트윌소재의 팬츠까지 정갈하면서도 도시적인
느낌이 물씬 베어난다.
최근 복식사가 엘리사 디먼트가 쓴 <미니멀리즘과 패션>을 읽고 있다.
올 겨울 시작한 한예종 자유예술캠프의 복식사 수업 강의는 바로크와 로코코다.
너무나 극단적인 대조를 이룬다. 항상 궁금하다. 왜 인간은 이런 극단의 시소 위에 서게 될
패션들을 만들게 된 것일까? 그것을 가능케 하는 사회/문화적 조건을 밝히는 것.
어찌보면 그것이 내가 해야 할 일이 아니겠나 싶다.
미니멀리즘이란 것이 결국 디자인 전 분야와 건축에 이르러
만개하게 된 것은 의외로 일본이란 나라의 영향이 크다. 여기에 데 스틸이라
불리는 미술사조도 한 몫을 했다. 인간의 이념이 선과 평면과 같은 기초적인 요소만으로
표현될 수 있다는 믿음이 바로 그것이다. 건축가 루드비히 미스 반 데어 로에는 "적은 것이 많은 것이다"란
자신의 모토를 완성하기 위해 최소한의 구성요소들을 재구성하는데 총력을 기울였다. 하긴 이런
철학도 1920년대 샤넬의 의복구성철학과 물려들어간다. 새로울 것도 없다.
이번 헬무트 랑 컬렉션에서 마음에 들어 찜해둔
스프레이 줄무늬 시폰 드레스. 어깨선을 위해 배색의 가죽을 덧대었다.
옅은 오렌지와 갈색이 중첩된 빛깔도 곱다.
너무 극단적인 미니멀리즘도 싫지만
요즘처럼 사회적 네트워크를 강조하며 끊임없이
자신의 인적 관계망을 덧붙이라고 강조하는, 거의 폭력에 가까운
이 광기의 바로크적 사회가 싫다. 하긴 인간의 시지각은 매우 변덕스러워서
더하기의 사회가 더 이상 받아들여지지 않을 때, 다시 한번 고전적인 기풍의 사물의
질서 속으로 돌아가지 않는가 말이다. 헬무트랑의 디자인은 우리시대의
내핍하나 단정하게 가지를 뻗은 나무의 형상이다. 겨울 나무에서
봄 나무에로, 변화하는 살이오르지 않은 나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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