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Holic/청바지 클래식

불멸의 사랑을 믿는 당신에게-발레'백조의 호수' 리뷰

패션 큐레이터 2010. 3. 31. 06:30

 

 S#1 봄이 오는 시간을 기다리며

 

오랜만에 발레 공연을 봤습니다. 유니버설 발레단에서 올 봄 기획으로 내놓은 '백조의 호수' 공연입니다. 발레를 비롯 무용의 문외한이라도 '백조의 호수'를 모르는 분들은 거의 없을 듯 합니다.

 

백조의 호수를 고른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발레 '백조의 호수'를 10번 이상 봤던 것 같습니다. 뉴욕 발레단과 볼쇼이 발레단, 베자르의 현대적인 느낌의 '백조의 호수'에 이르기까지, 여기에 국내 유니버설과 국립발레단이 매년 올릴 때마다 빼놓지 않고 봤습니다. 개인적으로 가장 잊을 수 없는 공연은 3년전 러시아 성 페테르부르크의 마린스키 극장에서 본 '백조의 호수'입니다. 압도적인 무대디자인과 더불어, 환상적인 몸의 연기가 한치도 어긋남이 없이 연결된 무대였죠.

 

우리는 흔히 고전을 가리켜 클래식이라고 하죠. 이 클래식이란 단어의 의미를 찾아보면 그리스 시대, 7척의 전투함으로 구성된 편대를 의미하는 말이었다고 해요. 더 나아가 이 정도의 배를 국가를 위해 구매, 기부할 수 있는 정도의 재력을 가진 계층을 뜻하기도 했죠.

 

국가가 재난 상태에 빠질 때,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 자신에게 주어진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챙기는 계급, 이들을 가리켜 클래식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에서 클래식은 '우리를 둘러싼 정신의 풍경'이 흐려지고 위기에 닥칠 때, 현명한 지혜를 나눠주는 작품이란 뜻을 파생하게 되죠. 고전을 읽는 즐거움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백조의 호수는 초현실적인 배경으로 이뤄지는 사랑의 불멸을 노래합니다. 사랑이 조건화 되고, 후기 자본주의 시대의 '교환 가능한 감정의 교류'가 되는 시대, 사람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이란 낭만의 감정을 기억하고 복원하려고 노력하지요.

 

발레를 배운 게 제 나이 서른살이 되던 봄이었습니다. 8년이란 세월이 훌쩍 흐른 지금, 여전히 몸 속에는 춤을 추고 싶다는 욕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오늘도 공연을 보러 간 극장에서 '성인발레 클래스'가 새롭게 열렸다는 정보를 얻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이런 저런 생각에 빠졌네요. 문제는 이런 클래스에 가면 남자는 저 한명 밖에 없을 테고, 대부분 여자분들일겁니다. 그러니 항상 남자로서 무용을 배운다는 것은 꽤나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이 되어버렸죠.

 

 

공연시작 전, 문훈숙 단장님이 나와서 간단하게 '백조의 호수'를 보는 6가지 포인트에 대해서 설명합니다. '해설이 있는 발레'로 인기를 끌더니 계속 이 포맷을 유지하시더라구요. 발레를 처음 보는 분들은 발레가 드라마이긴 하지만, 신체언어를 읽어내기가 쉽지 않아서 항상 줄거리를 읽고 가야 이해가 쉽죠. 그런데 이 부분도 대표적인 발레 마임 몇 가지만 알면 꽤 쉽게 접근이 가능하거든요. 발레도 결국은 '이야기가 있는 액션'입니다. 군무를 추던 혹은 2인무를 추건, 화려한 독무를 선 보이건, 결국은 모든 행동은 드라마의 전개와 연결되어 있지요.

 

 

사람들이 묻습니다. 도대체 수 많은 발레 작품 중에 왜 '백조의 호수'가 인기를 끄느냐구요. 고전발레의 형태를 유지하는 다른 작품들 가령 '지젤'이나 '잠자는 미녀' 혹은 '코펠리아'에 비해 유독 백조의 호수가 인기가 더 좋은 이유. 그것은 아마도 낭만적이고 비극적인 스토리와 더불어 차이코프스키의 음악이 차지하는 비중이 있지 않을까 싶네요.

 

 

백조의 호수는 총 4막으로 구성된 발레작품입니다. 1막과 3막은 궁정에서의 연희장면이 주를 이루고 2막과 4막은 호수가를 배경으로 환상적인 무대를 보여주죠. 저는 최근 무대의상에 관심을 가지면서, 중세풍의 의상을 입은 여왕과 하인들, 특히 어릿광대의 의상을 눈여겨 봤습니다. 작품 속 의상에 대해서는 다음 기회에 자세히 설명하도록 하지요. 1877년 3월 4일 모스크바 볼쇼이 극장에서 초연된 이후로 1세기 동안 최고의 발레작품으로 자리잡습니다.

 

막이 오르면 왕궁의 정원이 나타나고 여기서 지그프리드 왕자는 시골 소녀들과 장난을 치죠. 이때 여왕이 나타나 21살이 된 왕자의 생일날, 왕자의 태평스런 태도를 혼내며, 앞으로 결혼하게 될 신부감을 골라야 한다고 압력아닌 압력을 넣습니다. 2막이 되면 호숫가로 여행을 떠난 지그프리드는 반은 여자요 반은 백조인 존재를 만나게 됩니다. 그녀는 자신이 오데트 공주이며, 사악한 마법사 폰 로트발트의 마법에 걸려 백조로 변해, 오직 한반중과 새벽 사이에만 사람의 모습으로 돌아온다고 알려주죠. 마치 개와 늑대의 시간처럼, 서양중세시대의 감성은 항상 달빛과 새벽이 교차하는 시간에, 인간과 백조 사이에서 변모합니다.

 

 

호수에는 수십마리의 백조가 함께 유영합니다. 이 호수는 오데트를 잃은 어미가 흘린 눈물로 만들어진 것이죠. 오데트는 오로지 한 남자가 나타나 자신을 사랑해 결혼하고 다른 여자들을 거부할 때, 영원한 마법에서 풀려난다고 전해줍니다. 오데트와 사랑에 빠진 왕자는 결혼을 약속합니다.. 오데트에게 무도회에 참석해 줄것을 요청하지만 자신이 갈수 없음을 한탄하며, 마법사의 책략에 넘어가지 말라고 전해주죠.  2막에선 백조의 왈츠와 오데트와 지크프리드의 이인무 '아다주'를 선보입니다. 네 마리 백조의 춤도 잊을 수 없지요.

 

 

3막이 시작되면 6명의 처녀들이 왕자를 위한 춤을 추지만 왕자는 눈꼽만큼도 관심을 주지 않죠. 저는 이상하리만치 부채를 들고 추는 춤 동작이 좋습니다. 발끝으로 서는 자세에서 활짝 펼친 부채가 동세의 우아함을 크게 살려주는 것 같습니다. 왕자는 여왕의 뜻에 어긋나게 신부 후보들과 춤을 추는 둥 마는 둥하죠. 이때 한 기사가 자신의 딸과 나타납니다. 오데트와 동일한 얼굴을 한 오딜르를 보고, 오데트라고 확신, 그녀와 춤을 춥니다. 바로 흑조(black swan)라 불리는 이 춤에서 무용수들의 기교는 최절정에 도달합니다. 발레리나가 그 유명한 32회의 푸에테를 선보이는 곳이 3막이죠.

 

'푸에테' 의 원래 의미는 '채찍질하다'라는 뜻으로 무용수가 한 다리로는 발끝으로 몸을 지탱하고 다른 다리는 마치 말 채찍을 휘두르듯이 지탱한 다리 주위를 휘저으며 32회전을 하는 동작을 말합니다. 여성무용수가 보여줄 수 있는 최고의 테크닉인 이 동작은 지금부터 약 200년전인 19세기에 이탤리 무용수 피에리나 레냐니가 <백조의 호수>에서 처음으로 선보였다고 전해지는데요. 이와 더불어 등장하는 것이 세계의 민속춤들입니다. 스페인 스타일의 춤과 헝가리 풍의 차르다스, 폴란드의 마주르카 등 화려한 춤을 선보입니다. 각 나라의 정서가 배어나온다고 할까요? 강렬한 스페인 춤의 손동작이 눈에 걸리더군요.

 

 

백조의 호수는 안무가의 버전에 따라 조금씩 결말 부분이나 중간 내용이 첨삭되고 있는데요. 오데트가 호수에 빠져 죽고, 지그프리드 역시 오데트를 따라 호수에 몸을 던지는게 원래의 내용이죠. 그렇게 영원한 사랑을 꿈꾼 연인들의 힘에 의해, 마법은 풀리고 로트 발트 또한 죽음에 이르게 됩니다. 그가 죽고 백조들은 마술에서 풀려 인간 처녀가 되죠. 호수 위로 미끄러지는 배 위로 신세계를 향해 가는 오데트와 지그프리드의 모습이 보입니다. 이게 원작의 내용입니다.

 

 

오랜만에 본 차이코프스키의 '백조의 호수'는 완벽한 연기는 아니었지만, 최선을 다하는 무용수들을 보는 것으로 어느 정도 갈증을 채웠네요. 4월에는 많은 공연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Burn the Floor란 남미 무용 공연도 있고, 체코 대통령이었던 희곡작가 바츨라프 하벨의 연극 <리빙> 정치적 풍자가 돋보이는 <비언소>, 그리고 몇개의 현대무용 작품을 골라 볼 생각입니다. 6월에 안무가 호페쉬 쉑터의 현대무용도 눈빠지게 기다리고 있어요. 무엇보다 기대되는 것은 황지우 선생님이 강의하시는 '중세 기사도 문학' 강의입니다. 하고 싶은 건 많은데, 시간은 많지 않고, 여건이 주어지는 대로 최선을 다해 보고 즐기고 맛보고, 그렇게 하루하루 살아갑니다. 그렇게 봄이 오는 걸 기다려야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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