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Holic/청바지 클래식

파블로 카잘스의 '새의 노래'를 들으며

패션 큐레이터 2009. 7. 11. 09:36

 

49제가 끝나고 이제 일상으로 돌아옵니다. 오늘은 노무현 대통령의 49제를 맞아 저 멀리 독일 하노버에서 첼리스트로 활동하고 있는 독자 망고첼리님께서 영상편지를 보내왔습니다. 제가 어메이징 그레이스를 부탁드렸는데 이 곡은 반주가 있거나 혹은 4중주 실내악으로 편성되지 않으면 곡의 효과가 크질 않고, 시험기간 중에 다른 이들에게 부탁하기가 어려워 독주로 가능한 곡 중 파블로 카잘스의  <새의 노래>를 골라 연주해 보내주셨습니다.

 

하노버시엔 2차 대전 때 무너진 중세교회가 있습니다. 전쟁의 참상을 기억하기 위해 복구하지 않고 그대로 보존한 건물인데 이곳에서 멋지게 연주를 해주셨네요. 연주한 날 강한 바람과 동반한 비로 인해, 악기에 악영향도 있었을텐데, 이 모든 것 감수하고, 블로그 주인장의 부탁을 선뜻 들어주신 망고첼리님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2004년 겨울 UBC에서 떠나던 날, 친구 크리스가 내게 찍어 준 예쁜 한장의 사진을 올립니다. 짧은 시간동안 사람들을 만나며 많은 걸 배웠습니다. 유독 편미분을 제대로 못풀었던 저를 위해 경영과학 문제를 척척 잘도 풀어준 친구가 그립군요.

 

세상은 신자유주의의 폭력으로 소란스럽기만 합니다. 경찰은 어느샌가 군대와 같은 역할을 하고, 경제적 약자와 소외된 자들은 이제 어디 숨쉴곳 조차 없이 사그러갑니다. 사람사는 세상을 꿈꾸었던 힘없는 서민들의 대통령도 이제 하늘로 간지 49일을 맞았습니다. 며칠 전 몰아친 폭우와 강풍으로 눈물에 젖은 이들이 더욱 늘었습니다. 름의 폭염과 강렬한 대비를 이룬 폭우는 지금,

 

우리가 서 있는 존재론의 캔버스를 구성하는 한편의 그림입니다. 강한 햇살아래 서 피부에 와 닿는 뜨거운 기운을 느낍니다. 시간의 흔적은 태양의 기운아래 거무 튀튀해진 영혼의 표피를 남기겠지요. 요즘 들어 사람사는 세상의 멋들어짐이 너무나도 줄어든 탓에, 어디에서 인간적인 맛을 느끼게 하는 생의 요소들을 찾기가 참으로 어렵습니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일은 마치 벽돌 하나하나를 정성스레 구워 집을 짓는 일과 같습니다. 인간의 삶이 깊어가는 건 세월의 두께가 그 깊이를 대신하고, 그 속에 살아 숨쉬는 작은 올들의 결이 따스한 스웨터처럼, 우리를 감싸기 때문이지요. 칠 째 을씨년스러운 날씨덕분에 약간 우울하기도 합니다. 이런 날엔 인간의 목소리를 가장 많이 닮았다는 첼로 연주를 듣고 싶습니다. 지난 한가람 미술관에서 했던 인물사진의 거장, 유섭카쉬의 사진 중 유독 눈길을 끌었던 작품이 바로 세계적인 첼리스트 파블로 카잘스의 의자에 앉아있는 뒷모습이었습니다.

 

현악기중 유독 첼로의 소리는 제 마음에 와 닿습니다. 부박한 세상에 그나마 현의 울림만으로라도 위로와 더불어 현명함의 지혜를 알려준다고 할까요? 카잘스는 자신의 고향인 카탈루냐 지역의 민요를 편곡한 <새의 노래>란 곳을 발표합니다. 카탈루냐의 새들은 창공을 비상하며 피스 피스(Peace Peace)하면서 운다고 말했던 그의 목소리를 기억합니다. 새가 하늘의 속살을 관통하는 저 멋진 비상을 할 수 있는 건 다름아닌 자유에 대한 학습이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자유를 위해 날고, 자유를 위해 나는 법을 압니다.  새는 자유롭게 그러나 일정한 법칙에 따라 생의 궤적을 그려갑니다.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고 했다지만, 결국 추락하는 것은 자유와 방종을 구분하지 못하고, 자유를 위한 법칙을 무시했기 때문이지요. 카잘스는 히틀러의 지원을 받은 프랑코 정권이 7만명의 무고한 시민을 학살하고 정권을 잡자 연주를 포기합니다. 망명자들을 위해 자신의 재산을 헌납합니다. 정치가들의 협박에도 예술가로서 지고의 신념으로 저항했습니다. "명성을 얻은 사람일수록 악과 불의에 치열하게 저항해야 하며, 옳은 일과 그른 일에 대해, 자기의 생각을 분명하게 말하고 또 써야한다"고 주장했던 첼리스트.

 

그가 연주하는 새의 노래는 자신의 고향, 정치적 억압의 현장에서 신음하는 국민들의 자유와 해방을 위한 연주였습니다.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날아야 하지만, 지금 이 땅에는 좌의 날개를 잘린 새들의 사체가 대지에 가득합니다. 우의 날개를 가진 새들이 자유를 위해 날수 있을까요? 그들이 말하는 비상은 이미 애초부터 틀린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나는 법을 여전히 모르는 그들에게 카잘스가 들려주는 새의 노래는 엄정한 메세지로 남습니다. 비상하기 위해선 '서로 사랑하는 것'만이 답임을. 그렇게 알려주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망고첼리님께 다시 한번 고마움의 인사를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