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밤 의정부에 있는 예술의 전당에 갔습니다. 퇴근 후 가기가 오히려 좋더군요. 제가 강북에 살다보니 돌아오는 데 20분 밖에 안걸리거든요. 뉴에이지 피아니스트 유키 구라모토의 연주회가 열렸습니다. 그의 음악을 좋아합니다. 오랜 세월 그의 음악은 항상 힘이 되었죠. 캐나다에서 유학하던 시절, 록키 밴프지역을 자주 다녔습니다.
이 지역을 필두로 주변 국립공원의 풍광이 아주 눈부시거든요. 엄청난 숙제와 하드 트레이닝으로 점철된 각각의 MBA 트랙이 끝나고 주어지는 짧은 휴가시간엔 이곳을 자주 갔습니다. 그때 항상 MP3에 담아갔던 레이크 루이즈를 들으며 4계절의 시간성을 함께 맞았더랬습니다. 투명한 루이즈 호수 아래 나를 비추고, 그 위에서 배도 젓고, 때로는 눈빛 가득한 그곳에서 차갑게 내 몸과 영혼을 벼루던 시간이지요.
연주회가 열린다는 소식에 후배들과 함께 삼삼오오 짝을 지어 갔습니다. 옅은 초록빛 조명으로 벽면을 비추었군요. 오늘 연주는 디토 챔버 오케스트라와의 협연으로 이루어졌습니다. 개인적으로 2부에서 보여준 트리오 공연도 마음에 들었습니다.
오랜만에 현의 소리를 들으니 마음 한구석이 가득 메워집니다. 첼로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물씬 들정도로, 피아노와 어울리는 남성적인 느낌의 현은 유키 구라모토의 여성적 감수성을 감싸고 메워주는 힘이 있지요.
한국어 스크립트를 항상 종이에 적어 관객들에게 친절하게 한국어로 인사를 합니다. 어제도 항상 그렇듯, 자신의 곡명과 더불어 가벼운 인사를 꼭 건내더군요. 한국에서 연주를 하신지도 10년이 되셨다고 하네요. 마이크를 잡고 이렇게 말씀하시더군요. 그때 학생이었던 분들은 아이들과 함께 왔겠다고요.
공손함이 몸에 배어 있는 연주자인듯 합니다. 매번 곡이 연주될때마다 자세한 설명과 더불어 인사를 하더군요. 공연사진은 프로그램의 제일 마지막에 인사와 더불어 이야기를 나눌 때, 망원렌즈를 가지고 간 후배가 힘들게 찍어서 보내준 것입니다.
레이크 루이즈가 있는 밴프 지역은 케네디언의 휴식처입니다. 여름이면 크리스털 처럼 맑은 호수에서 카누를 타고, 주변경관을 바라보면 승마를 하기도 하죠. 물론 시간과 돈이 허락되면 파라세일링을 하기도 합니다. 저는 카누를 저으며 유유자적하게 호수의 잔잔함을 느끼는 것이 좋더군요. 봄이면 지천에 온갖 종류의 꽃들이 피어납니다. 겨우 내 언 속살을 내보이며 옅은 햇살의 잔량을 흡수하려 옷을 벗는 꽃들의 운명이 결코 가볍지 않다는 것을 배웁니다.
연주를 듣고 있으면 먼 추억 속 풍광의 입자들이 대기를 타고 어느샌가 내 눈 앞에 다가온듯한 환상에 빠집니다. Forest를 들으니 예전 이 지역에서 일주일을 머물며 트랙킹을 하던 기억이 났고, Meditaion 을 들으면 로그 하우스에서 밤새 불을 피우며 외국인 친구들과 와인과 더불어 이야기 하던 시절의 앙금이 기억의 표면위로 올라옵니다.
겨울 록키여행에서 레이크 루이즈를 처음 만났습니다. MBA 과정을 시작한지 4 달이 채 못될 때였지요. 외로운 이방인의 입장이 되어 떠난 여행이었습니다. 얼어붙은 레이크 루이즈를 걸어 심장부까지 걸어갔지요 여행은 즐거웠고 함께한 멕시칸 아가씨와의 대화도 즐거웠고 준비해간 유키 쿠라모토의 음악을 들으며 숙박을 했습니다. 산과 호수의 풍경은 동일하지만 계절의 옷을 입는 시간에는 설명하기 어려운 미묘한 색감이 발색하는 루이즈. 겨울이 되면 동결된 호수에서 썰매를 타도 된답니다. 작은 보폭으로 걸으며 주변을 둘러싼 세가지 빛깔의 산허리를 안아보는 일도 행복했습니다. Cottage for the Rabbit 이란 곡을 오늘 올려놓았는데. 이곡을 듣다보면 야영을 하며 만났던 풀벌레 소리와 동물들이 떠오른답니다.
S#-2 레이크 루이즈에서
날이 밝았으니 이제 여행을 떠나야 하리 시간은 과거의 상념 속으로 사라지고 영원의 틈새를 바라본 새처럼 그대 길 떠나야 하리 다시는 돌아오지 않으리라 그냥 저 세상 밖으로 걸어가리라 한때는 불꽃 같은 삶과 바람 같은 죽음을 원했으니 새벽의 문 열고 여행길 나서는 자는 행복하여라.
아직 잠들지 않은 별 하나가 그대의 창백한 얼굴을 비추고 그대는 잠이 덜 깬 나무들 밑을 지나 지금 막 눈을 뜬 어린 뱀처럼 홀로 미명 속을 헤쳐가야 하리 이제 삶의 몽상을 끝낼 시간 순간 속에 자신을 유폐시키던 일도 이제 그만 종이꽃처럼 부서지는 환영에 자신을 묶는 일도 이제는 그만 날이 밝았으니, 불면의 베개를 머리맡에서 빼내야 하리
오, 아침이여 거짓에 잠든 세상 등 뒤로 하고 깃발 펄럭이는 영원의 땅으로 홀로 길 떠나는 아침이여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은 자 혹은 충분히 사랑하기 위해 길 떠나는 자는 행복하여라.
그대의 영혼은 아직 투명하고 사랑함으로써 그것 때문에 상처입기를 두려워하지 않으리 그대가 살아온 삶은 그대가 살지 않은 삶이니 이제 자기의 문에 이르기 위해 그대는 수많은 열리지 않는 문들을 두드려야 하리
자기 자신과 만나기 위해 모든 이정표에게 길을 물어야 하리 길은 또다른 길을 가리키고 세상의 나무 밑이 그대의 여인숙이 되리라 별들이 구멍 뚫린 담요 속으로 그대를 들여다보리라 그대는 잠들고 낯선 나라에서 모국어로 꿈을 꾸리라
류시화의 '여행자를 위한 서시' 를 읽다가 적어보았습니다. 여행은 제게 많은 책을 읽고 생각할 시간을 주었습니다. 사람들이 여행을 통해 배운다는 것은 이런것이 아닐까 생각했지요. 대학 캠퍼스에서는 미처 사유하지 못한 것들이 실타래처럼 풀려나옴을 경험하는 것. 저는 이런 시간이 좋습니다. 물론 이 시간을 유키가 있어 더욱 좋지요.
루이즈를 찍은 사진을 보면서, 문득 들었던 생각은 "어찌된게 그냥 셔터를 눌러도 이런 풍경이 나오나"라는 거였고. 이 하늘과 바람과 물은 왜 이렇게도 맑을까라는 생각. 그 속을 잠영할 수 있다면 하는 생각을 했지요.
S#3-지나치는 풍경들의 흔적
요호국립공원 내의 내추럴 브리지를 넘어 골든과 기차역의 도시 필드를 통과하여 꿈꾸던 레이크 루이즈에 도착하는 날. 유키 쿠라모토의 피아노 소품으로 잘 알려진 '레이크 루이즈'를 들었습니다. 하늘 호수 아래 서서 광막한 자연을 바라봅니다. 너무나도 정처없이 처연한 모습으로 인해 실망하기도 합니다. 온통 타인들의 사진속 레이크 루이즈는 여름의 풍경이 주를 이루는 터라, 시간의 방부제처럼 얼어버린 겨울의 레이크 루이즈에서 사진을 찍고 싶었죠.
투명한 겨울호수. 하늘과 맞닿은 곳, 빅토리아 빙하와 속살을 통음하는 호수의 적요한 풍경속에서 지난 4개월동안 정신없이 지나쳐 버린 모든 시간의 침소를 다시 돌릴 기회였죠.
부산한 일상의 그물에 갖혀 진부해질대로 진부해진 제 눈의 비늘을 벗어내고 유학 첫마음의 각오와 신념의 방식을 되내어 보이고 싶었습니다.
하늘호수아래 서면 뭔가 다시 이루어질것 같은 가느다란 희망의 선들이, 나를 다시 한번 죄어줄수 있을 것 같은 생각들이 들었어요.
봄과 여름, 가을과 겨울의 록키가 다 나름대로의 빛깔과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다고 이야기 하지만 저는 항상 겨울의 록키를 소중하게 생각합니다.
모든 것이 얼어붙은 표면으로 구성된 시간. 대지와 사물의 표피위에 앉은 눈송이들로 인해 모든 사물의 외곽선이 단순하게 드러나는 침잠의 시간. 겨울은 우리에게 모든 것으로 부터 단순해 질것을 요구합니다. 단순해지고 싶습니다. 삶의 하중이 행복한 짐이 되길 바랍니다. 단순함 속에 베어있는 위대함을 익히고 싶습니다. 레이크 루이즈는 제게 그 동면의 시간을 일깨웁니다. 오늘 출판사와 이야기를 끝내고 인사동을 잠시 돌아다녔는데 날씨가 온연한 봄이더군요. 이제 겨울은 잊어야 겠습니다. 우선 Adieu란 곡부터 시작합니다. 7개의 곡을 연속해서 올렸어요. 마지막 Flying Merry Go round가 연주회에서 마지막 연주되었는데요. 정말 경쾌할거에요. 들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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