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오의 햇살이 무료하게 손바닥위에 떨어지는 시간
블로그를 통해 알게된 한복 디자이너 박선옥님의 전시를 보기 위해
인사동에 들렀다. 인사아트센터로 가는 길, 후덥지근한 짙은 여름기운에 숨이 턱턱 막혔다.
이런 날은 안동에서 나는 삼베나 모시의 파삭파삭한 질감을 이용해 만든 적삼이나
상의를 입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디자이너 박선옥님을 알게 된
계기는 예전 블로그에 신윤복의 그림 속 한복의 미를 분석한
글을 올리면서 댓글 답방을 하며 알게 되었다.
이후 국립창극단 공연도 같이보고 이야기도 나누며 친해졌다.
<하하미술관>展 때는 먼길을 와서 축하도 해주었다. 선옥님은 나와 동갑이다.
원래 70년대산 아이들의 특징이 또래집단 문화가 강해서 나이가 같다는 것만으로도
통하는 바가 크고(그만큼 문화접변이 강한 사회를 살아야 했던 세대란 뜻이다) 두 사람 모두
연극을 좋아한 터라, 무대의상용 한복을 제작하는 그녀의 옷에 관심을 두고 보고 있다.
오늘 전시의 제목은 『한복에 사로잡힌 공간』이다. 한복 작품들이
지루한 갤러리의 백색 표면 위에 담담하게 서 있다. 작품 모두 일반 한복이 아닌 무대의상용
한복이다 보니, 색채나 실루엣, 형태적으로 강렬한 느낌이 든다. 오늘 전시는 사진 작품을 촬용한
포토그래퍼 배지환의 사진전을 함께 구성, 보는 즐거움이 더욱 컸다. 배우 제시카 고메즈
가 선옥님의 주요 고객이고 모델이다 보니, 사진마다 그녀의 얼굴이 자주 나온다.
옷과 건축은 서로 닮아간다. 공간을 점유한다는 점에서 동일하고
둘다 3차원의 입체공간을 만들어낸다는 점도 같다. 인간이 거주한다는 점도 같다.
평면재단으로 만들어지는 한복과 입체재단기술을 통해 구현되는 서양옷
모두 인체의 여백을 껴안고 돌며, 곳곳에 배어나는 흔적으로
외피의 기운을 매운다. 이것이 옷이 만드는 공간성이다.
개인적으로 마음에 들었던 한복작품이다. 깊게 가슴을 팬 데콜테가
눈길을 끌기도 하지만, 당의를 응용해서 만든 상의 장식은 마치 코르셋을 외부화시켜
보여주는 인프라 의상(속옷의 겉옷화)의 방식을 떠올리게 한다. 한복의 흘림선 아래 페티코트를 입혀
풍성한 느낌이 가득 들도록 한건, 사실 서양복식의 문법이지만, 무대의상의 특성상
무대를 점유하는 연주자나 연기자를 살리기 위해 이런 장치를 했다.
의복은 제2의 피부다. 인체는 옷을 통해 자아와 내면의 확장을 이룬다. 그런 점에서 옷은 철저하게 사회적 산물의 일환이다. 조선 후기 이후 오늘날의 한복의 원형처럼 굳어진 우리의 옷에는 전통미의 본질들이 숨겨져 있다.
디자이너 박선옥은 <여백>이란 옷집을 운영한다. 그녀는 유독 여백이란 단어를 즐겨 사용하고, 자신이 만드는 모든 의상에 여백의 미를 담길 희망한다.
서양이든 동양이든, 여백이란 패션에서 매우 중요한 개념이다. 서양의 복식에서, 통칭 주름이라 불리는 드레이프는 신체의 확장을 위한 여백공간을 만드는 디테일이다. 복식미학에선 흔히 조선 중기 이후에 드러나는 선비들의 복식을 飛의 미학이라 해서, 달빛아래 탈중력의 기운을 표현한다는 주장을 한다.
약간 어려운 설명같아서 풀어쓰자면, 아니 가장 쉽게 설명할수 있는 비유를 들자면 역시 집을 들면 된다. 우리 한옥의 빈 공간이 한복에 들어있다는 점이다.
한복을 조형적으로 분석하다보면, 절대적 미를 재현하는 선의 아름다움과 만난다. 이 선은 철저하게 비례의 측면에서 접근해야 옳다. 하후상박, 상의는 타이트하고 하의는 풍성하게 디자인된 우리의 한복은 철저하게 상의와 하의를 의도적으로 구분하는 허리선의 존재를 지웠다. 쉽게 말해 무게의 중추를 이루는 허리를 지움으로써, 중력에서 자유로운 느낌이 든다. 이러한 감성은 바로 우리가 서양적 개념으로 흔히 말하는 쉬크함, 맵시와 단아라는 시각적 환영의 미와 만나게 된다. 여백이란 말은 바로 이렇게 한복을 통해 점유된 새로운 공간에 대한 해석이다.
우리의 한복을 자세히 본적이 있는가, 여인의 팔뚝은 새의 날개를 상징한다.
팔뚝은 새날개의 깃을 달고 있는 날개뼈를 상징하고, 아름다운 포물선으로 이루어진
옷깃은 깃털의 모양을 상징한다. 여기에 긴 옷고름은 선녀의 너울거리는 옷깃의 형상을 담아낸 것이다.
이번 전시에는 디자이너 박선옥이 평소부터 관심을 갖고 작업한
70년대 생활한복의 재구성이 눈에 확들어왔다. 어머니 세대가 70년대 입었던
옥양목 곱게 다려 만든 저고리가 눈에 띈다.
옷고름 대신 브로우치를 달아
개폐가 쉽고 생활에 편하게 디자인한 제품들이
1960년대 말기부터 본격적으로 쏟아져 나왔으나 대중성을 확보하는데
실패하면서 뒤켠으로 물러나게 되었다. 참 아쉽다.
70년대 초 생활한복을 재현한 작품이다.
모피로 트리밍한 상의 저고리가 눈에 들어온다.
무대의상용 한복을 다른 용도로 어떻게 사용할까 생각해 봤더니
요즘 늘어나는 이브닝 파티에 의상으로 쓰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봤다.
데콜테며 한복의 토씨를 응용한 서양의 긴 장갑형태의 아이템도 그렇고, 저고리를 벗고
동정선의 아취스런 미만 살려 목선을 구성한 위의 작품은 사실 파티용
의상으로 꽤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박선옥은 논어의 군자불기(君子不器)란 말을 철학으로 사용한다.
군자에겐 정해진 틀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뜻인데 그녀에겐 일종의 고집이다.
사실 블로그를 통해 그녀의 작품을 본 사람들은 "이게 한복이냐"고 되물을지도 모르겠다.
한복의 개량화, 혹은 세계화란 화두를 놓고 많은 이들이 고민을 한다. 원형을 깨뜨리지 않고
변주할 수 있는 형태나 디테일, 실루엣의 종류가 그리 크지 않다보니 현대 한복관련 전시를 보면
사실 비슷한 라인의 작품들도 넘쳐나는게 사실이다. 우리가 반드시 넘어가야 하는 산이다.
요즘 미술관에서 패션을 볼수 있는 기회가 점점 늘고 있다.
좋은 기류다. 이런 바람을 타고 한국의 옷이 예의 탈중력의 힘을 안고
달빛 아래 인간의 마을을 나는 새들처럼, 그렇게 환하게 날라다녔음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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