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1 당신의 몸은 당신의 것이 아니다
라디오 방송에서 <책 읽어주는 남자> 코너의 고정을 맡으며 많은 책을 소개했다. 시사 프로그램 특성상 내가 좋아하는 예술/문화 분야에만 천착하긴 어렵다. 신자유주의를 테마로 한 책을 골라봤다. 사회운동가인 엄기호씨의 <아무도 남을 돌보지 마라>와 신자유주의 체제 아래 몰락의 기로에 선 미국의 거대 미디어 산업을 다룬 <미디어 모노폴리>를 소개했다. 특히 미디어 모노폴리는 현 미디어법을 둘러싼 정국의 해법이 될 사례들이 담겨 있어 블로그에서도 따로 포스팅을 할 생각이다. 신자유주의는 단순히 경제담론이 아니다.
일상에 파고들면서 궁극적으로는 삶의 태도를 바꾸고 세계관에 영향을 미친다. 바로 '두려움을 두려워하는 세대' '경찰력이 군대화 되고 폭력이 자행되는 시대'에 침묵을 요구받는 기계적 인간으로 다시 태어난다는 거다. 이뿐이랴 누구도 돌보지 말고 누구의 말도 믿지 말라고 부추기는 사회가 되어 버렸다. 그저 믿을 건 내 몸 하나일 뿐. 신체를 가혹하게 훈련하고 계발해서 경쟁에서 살아남는 법을 가르치는 사회다.
그런데 과연 우리는 자신의 신체를 주권적으로 소유하고 있다고 말할수 있을까? 신자유주의 스타일로 대답한다면 '아니올시다'이다. 국가의 경계를 허물며 의료와 초국적 자본이 결탁해 인간의 신체를 엔지니어링의 대상으로 삼고 심지어는 사고 파는 수준까지 온 지금.
1932년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는 우리 시대에 자행되는 생체기술의 현 수준을 작가의 상상력을 통해 예언했다. 책에서 그는 포드기원이란 표현을 쓴다. 포드기원은 미국의 자동차왕 헨리 포드T형 자동차 생산을 위한 컨베이어 시스템을 도입한 1913년을 말하며, 대량생산시대가 열린 해를 의미한다. 포드기원 632년(서기 2545년) 지구는 세계국가에 의해 통치된다. 단일정부의 시작이다. 인종 및 민족갈등을 겪은 인류가 세계국가건설을 위해 자행한 것은 다름아닌 생명복제다. 모든 인간은 공장에서 부화된다. 정자와 난자를 인공수정시킨 수정란은 배양과정을 거쳐 최고 96명의 일란성 쌍둥이(클론)를 만드는데. 이 인간부화공장은 인구를 조절과 인간의 동일성을 이뤄내는 세계국가의 핵심시설이다. 놀랍지 않은가? 이미 1930년대 생물학의 이해가 깊었던 작가의 상상력 속에 그려진 세계가 말이다. 포디즘은 현대 경영의 원칙이다. 결국 포디즘은 자본에 의한 인간노동의 억압을 핵심으로 한다.
자본의 억압은 이제 노동자의 신체를 넘어 우리들의 몸을 식민지로 만든다. 앤드류 캠브렐의 <휴먼 보디숍>은 인간의 몸이 잘개 조각되어 팔리는 '상품'으로 변환된 현실을 고발한다. 사람은 상품이 아니지만, 사람의 기관과 그 생산물은 상품으로 판매가능한 세상이다. 피부질환이나 홍역, 간염과 같은 병력을 가진 이들을 병원이 모집해 면역성분이 있는 혈역생산품을 얻기 위해 혈장을 추출한다. 자본주의의 가장 하층에 있는 잉여인간들은 이제 자신의 신체를 파는 실험용 쥐가 되고 있다. 희생되는 인간은 이들만이 아니다.
우리는 병원에서 의료 서비스를 구매하지만 이 과정에서 우리가 갖고 있는 데이터를 제공한다. 병원은 이 데이터를 이용해 각종 실험을 하고 신약과 기술을 개발한다. 이 과정에서 데이터를 제공한 환자들은 무보수로 병원 및 제약회사의 자본축적에 기여한다. 그들은 한푼도 환자들에게 돌려주지 않는다. 지적재산권과 특허권을 공고히하며, 그들에게 우리들의 신체에 대한 소유권을 넘겨버렸다.
각종 병원과 기관, 제도, 법률은 하나로 뭉쳐 '군산복합체'를 능가하는 '생명공학복합체'를 탄생시킨다. 존 무어란 사람의 사례는 바로 더이상 우리가 '자신의 신체를 소유한 사람'이 아님을 보여준다. 희귀암에 걸린 존 무어는 캘리포니아 대학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다. 치료과정에서 그의 비장에서 암세포와 대항하는 특수 단백질이 나온다는 사실이 발견되었다. 의사와 병원측은 이런 사실을 고지하지 않고 그의 세포를 추출, 상품화하는데 성공하여 30억달러를 벌어들였다. 이후 존 무어는 병원측에 재산권을 주장하지만 법원은 그에게 패소판결을 내렸다.
<프랑켄슈타인의 일상>은 여기서 나아가 의료 및 보건이 어떻게 시장논리에 의해 재개발 되는지를 보여준다. 태아감별과 보조생식기술을 통해 '태어나서 환영받는 아이'와 그렇지 못한 아이를 구분케 한다. 인도에서 카스트 제도를 더욱 공고히 하는데 이런 의료기술이 사용된다는 점이다. 정기건강검진은 우리시대의 새로운 계급의 아이콘이 되었다. 건강은 일종의 상품 패키지가 되어, 다양한 옵션을 거느리며 이것을 구매할 수 있는 사람과 할수 없는 사람간의 '넘어설수 없는' 계층적 차이를 드러낸다.
최근 제약회사에서 신약 테스트를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는 사람들을 방송에서 다뤄주었다. 놀라운 건 아르바이트 자격요건이 깐깐하다는 것. 선진국 국민들일 수록 약을 많이 먹어서 내성이 강한 탓에, 정확한 결과치를 알수가 없어서, 약을 많이 먹지 않은 젊은 층을 대상으로 한다는 말이 놀랍기만 했다. 의료보험은 철저하게 선택적인 접근이 되도록 만들려 하는 신자유주의 정부와 초국적 자본들. 그 속에서 생명공학은 점차 그 예전 나치의 우생학을 닮아간다. 살아있는 자의 아픔을 위해, 눈물을 닦아주겠다고 발언하는 생명기술이 다시 한번 유전학적 우성을 갖고자 하는 인간의 개인주의와 결합하고 있다. 어떻게 해야 하나? 탈출구가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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