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 Fashion/시네마 패션

영화 '쌍화점'에 드러난 고려시대 패션 읽기

패션 큐레이터 2009. 1. 15. 08:54

 

S#1 쌍화점을 읽는 또 다른 방식

 

최근 가장 인기를 끌고 있다는 한국영화 <쌍화점>을 보았습니다. 우선 탄탄한 이야기 구조가 마음에 들고, 역사적 팩션을 화면에 담아내는 미장센 또한 만족할만한 수준입니다. 무엇보다도 제 마음에 드는 건, 당시 고려 후기 복식을 나름대로 재현하는데, 애를 쓴 흔적이 보여서 좋았습니다.

 

언제부터인가 대한민국의 드라마와 영화에도 동성애 코드가 사스라히 등장하고 있습니다. 예전 <퀴어영화론>을 공부하면서 사회적 소수인 동성애자들의 관점과, 성적 지향성과 같은 용어들, 성 정치학을 둘러싼 보수와 진보의 견해들을 공부한 적이 있습니다.

 

이은주의 안타까운 자살로 다시 한번 보게 된 영화 <주홍글씨>에서 부터, 강한 남성성의 굴레를 벗고, 자신의 성 정체성을 찾아갔던 곱단한 씨름선수의 이야기 <천하장사 마돈나>, 엄격한 유교사회에서 성 정체성의 모호한 경계를 오가며 시대의 질서를 비웃었던 <왕의 남자>. 우리 안에 내재되어 있는 양성성의 양상을 코믹하게 보여준 <서양골동양과자점 앤티크>에 이르기까지, 동성애 코드를 바탕으로 한 영화의 숫자가 꽤 두터워졌습니다.

 

이성애주의가 사회의 정형적인 코드로 자리잡은 사회에서, 역사적인 산물로서의 동성애를 복권시키고, 이를 영화적으로 재현하는 문제는 결코 쉽지 않습니다. 남성이 남성을 바라보는 영화, 성의 주체와 대상이 동일인이 될때의 위험은, 영화 내적으로도 많은 논란의 여지가 된 것이 사실입니다.

 

이것이 역사와 관련될 때는 더욱 힘듭니다. 자칫 역사적 왜곡이란 문제와 부딪히게 되기 때문이죠.

 

<쌍화점>은 고려말, 대외적으로는 원나라로부터 자주성을 회복하고 내부적으로는 권문세족으로부터 왕권강화를 꾀했던 것으로 알려진 공민왕과 그의 제위시절에 존재했다는 특별관청 ‘자제위(子弟衛)’를 그 소재로 삼습니다. 사대부집 아이들 중 아름다운 미소년을 선발, 문무를 겸비한 인재로 키워 왕의 측근 호위집단으로 만들었습니다. 자제위를 자세히 보면 새로울 것도 없는 것이, 그리스나 스파르타에서도 군인들은 동성애를 즐겼고, 어린 미소년을 전쟁터에 데리고 다니면서, 군인의 방식을 가르치고 성욕을 푸는 대상으로 사용했던 서구의 역사 또한 이와 비슷하기 때문입니다. 실제 역사 속 왕의 성 정체성에 대한 논의는 개진하기가 어려운 것이, 가설의 형태로 남아 있는 것이 많고, 역사적으로 논란의 거리가 되기 때문이죠. 영화적 상상력은 이러한 인식의 간극을 뚫고 바로 현대의 동성애 코드를 역사적으로 과거의 기억과 연결하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성에 관한 터부, 섹슈얼리티, 성정체성에 대한 담론들은 항상 고답적인 시대의 시선과 충돌할 수 밖에 없습니다. 유교사회를 지향했던 조선은 고려 시대의 남녀상열지사를 주체로 했던 수많은 가요들을 '속'되다고 폄하했고 매장시키려 했으니까요.

 

 

수많은 담론들을 일일이 살펴보기란 쉽지 않습니다. 제가 아니라도 많은 분들이 영화 속 이야기에 대해서 쓰셨고요.

저는 영화 속 고려후기 복식을 조금씩 서술하기 위해 오늘 포스팅을 하려 합니다. 약간 아쉬운 것은 재현의 밀도에는 상당한 공감이 가지만

장신구를 비롯, 액세서리와 소품의 형태는 너무 현대적인 느낌이 배어나서 약간 눈살을 찌푸렸습니다.

 

 

복식사적으로 고려 시대, 특히 원의 지배를 받던 100년간의 기간은 한국복식의 쇠퇴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원의 관제와 복식을 그대로 받아들여야 했기에, 우리의 주체적 관점의 복식이 발전하기가 그만큼 어려웠다는 것이죠.

하지만 조선시대에 비해, 삼국의 의상들이 그 화려함과 다채로움이 더 했다는 점, 궁중의 소수를 제외하곤

신라출토 복식의 형태를 고스란히 계승하여 나름대로의 단아한 미를 간직한 점은 지켜볼 만 합니다.

 

품계에 따라 4개의 색으로 신하복의 관제를 정한 것도 이때입니다. 왕과 왕비 공히 자색과 청색의 이원색을

바탕으로 한 복식에, 복두를 쓰고, 원래는 상홀이라 해서, 왕의 품계를 드러내는 표지를 듭니다.

무엇보다도 고려 복식에선 한복의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동정선이 등정한다는 점을 주목할 만 합니다.

 

 

금 자수가 화려하지요. 여인들의 귀걸이를 비롯, 장신구에 진주가 등장한 것도 고려시대가

주를 이룹니다. 그럴수 밖에 없는 것이 이 당시 원은 세계의 패권을 다투었던 국가였고, 서구의 물산을 들여와

원사회의 복식을 변형시켰습니다. 지중해 산 진주가 당대 유럽과 원 사회 구성원의 주요한 장식품이 된 것도 이때 입니다

 

 

금색단의 비단의와 탑자포라 해서 금으로 된 비단포를 입었습니다.

하지만 원의 영향답게, 홍색은 상류층 여인과 궁중 복식의 기본적인 색으로 자리잡죠.

 영화에서 왕비의 복식들이 주로 홍색이 많은 것은 그런 이유입니다. 머리 장신구도 두마리의 봉화와 일곱마리의 휘를

주제로 만든 것이 주를 이루는 데, 영화 속 왕비의 머리쓰개는 사뭇, 서양의 티아라를 연상하게 합니다

 

 

자, 단, 비, 녹의 4색 공복을 입은 신하들의 모습이

원대 사신아래 무릎꿇은 고려왕과 신하들이 나오는 장면에서 정확하게 보여지더군요.

 

 

주진모가 입은 왕의 의상들이 눈부시게 아름다왔습니다. 그가 한 귀걸이도 인상적이죠.

귀 볼을 뚥어 작은 고리를 꿰던 이 귀걸이는 상대시대부터 여자와 남자 공히 함께 사용했습니다.

조선조 전반까지 성행했지만, 이 풍습이 오랑캐의 것이라 해서, 선조는 법령을 제정하여 금지시켰죠.

 

이미지가 없어서 붙이지 못했지만, 영화를 보다보면, 왕과 왕비가 측근세력과 함께

봄날의 정취를 만끽하기 위해 야외로 나가 연회를 즐기는 장면이 있습니다. 여기에 왕비가 하고 나온 것이

바로 향갑인데요. 영화에서 왕이 왕비에게 물어보지요. 3년이나 넘은 것을 하고 있냐고요.

원래 향갑에는 사향을 담아, 일련의 최음제로, 혹은 신체를 보호하는 미신적 속성으로

가지고 다니던 것인데, 그만큼 왕비를 3년동안 아예 손하나 까딱하지 않고

외로움속에 남겨둔 걸, 소품으로 표현하는 것이 아주 좋았습니다.

 

그 향갑을 열고, 억눌렸던 여인의 섹슈얼리티의 문을 연 것은 바로 홍림이었습니다.

패션 소품 하나로 이야기의 중요한 모티브를 제공하는 연출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서양도 향갑과 비슷하게 향이나 죽은 사람의 머리칼, 혹은 향수를 담아

목에 걸고 다녔습니다. 앵그르의 그림에 보면 낭만주의 시대의 여성들이 그런 모습을 한 초상화가 많습니다.

 

 

영화를 보면서 조금 아쉬웠던 것은, 영화에서 충격적인 영상이라고 주장했던

섹스신이 그리 새롭다는 느낌을 받지도 못했고, 동성애 코드를 삽입하기 위해선 남자 두 주인공의 시선처리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는데, 이런 부분이 미진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동성애 코드를 다루기 위해서는, 홍림의 성 정체성이 초기에 정확하게 무엇이었나

그것이 어떤 변화를 겪는지의 그 과정에 대한 설명이 너무 부족합니다. 왕비와 잠자리를 하고 나서

하루 아침에 남성성의 눈을 뜬다는 설정이 오히려 감미롭게 동성애의 결을 애무하며

가야할 영상미의 호흡을 방해하는 느낌이 강했거든요.

 

고려 복식에 관해 조금 다루긴 했는데, 자료가 부족해서 설명히 미진합니다.

한국에 나와 있는 한국복식사는 자료의 구득 문제로 조선시대에 초점이 맞추어 있고, 상고시대나

고려 시대는 출토복식이 많지 않은 관계로 자료가 풍성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복식을 재현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겠다는 생각에 눈이 행복했던 건 사실이죠.

다시 한번 찬찬히 뜯어보고 싶은 영화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