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Holic/영화에 홀리다

나는'쿨'한 인간이 싫다-영화 '타인의 섹스를 비웃지 말라'

패션 큐레이터 2008. 10. 15. 22:11

 

S#1-성장에 관한 따스하고 건조한 보고서

 

하루 종일 농무낀 하늘을 바라보며 지냈다. 2번째 책을 만드는 일이 생각보다 쉽지 않지만, 원고를 정리하고 작가들에게 전화를 걸어, 이미지 저작권에 관련된 문제들을 해결했다.

 

사람들이 요즘 '제 2의 직업'으로 작가가 되고 있느냐고 종종 묻는다. 그럴때마다 나는 '쿨'하게 대답한다. "저는 장사가 좋아요"라고 말한다. 나는 경영학을 참 행복하게 공부했던 사람이다.

 

나는 원래 '쿨'한 인간이 아니다. 작은 상처의 말도 왜 그렇게 앙금으로 오래남는지, 누추한 몸을 이끌고 슬하의 자식과 같은 그 기억의 무늬들을 이제는 해방시키고 싶다.

 

요즘 워낙 '쿨'하다는 표현이 능사로 통하고 사람을 규정할 때 인간이란 명사에 이 쿨하다란 형용사가 붙게 될 경우, 말라붙은 추상명사에도 화사한 꽃이 피는 듯 하게, 사람들은 받아들인다.

 

처음 이 영화의 제목을 언뜻 들었을때, 나는 음험한 상상을 했다. <하나와 엘리스>에서 본 아오이 유우의 청순함이 이제 성인물을 찍었나 보다 라고 생각했을 정도이니 말이다.

 

영화를 볼때, 항상 문학을 기반으로 하는 작품의 경우 텍스트를 꼭 겸해 보는 습관이 배어있는 나로서는, 영화를 보고 소설을 함께 읽어보았다. 언제부터인가 매우 얇은 두께의 일본소설들이 우리 출판시장을 잠식하기 시작했다.

 

영화제목만 보고 이 영화를 본 이들은 '낚였다'라는 표현을 서슴지 않고 쓸 것이다. 섹스는 온데간데 없고, 밋밋한 감성 라인의 전개, 쓸쓸한 후회만 남기는 성장이 느껴질 뿐이다. 야마자키 나오코라의 2004년 문예상 작품이라는데, 요즘 일본도 한국만큼이나 문장이 감각적이고, 가볍다.

 

 

에이컵 사이즈 밖에 안되는 가슴살을 도려내

찌르고 있을 지 모를 한 여자의 마음은, 살이 도려진 남자의 마음과는

다른 가보다. 영화는 밋밋하게 감성의 무늬를 토해내다, 그저 작은 깨달음으로 치솟는다.

영화의 줄거리는 간단하다. 미술 전문학교에서 우연하게 만난 19살의 순정품같은 남자아이가, 39살의 판화를 가르치는

선생님을 만나 사랑에 빠진다. 그 1년 반 동안의 시간적 흐름은 영화적으로 매우 축약되어 있다.

 

주변에 판화를 전공한 작가들이 많아서 그런가, 유리를 보면서

알고 있는 지인들의 모습이 오버랩되곤 했다. (물론 그들의 생활이 그렇다는 건 아니고)

 

 

인간의 피가 따스한 이유는, 원래부터 차갑게 설계된

인간의 숲을 거닐고, 자신의 혈액의 온도로 세상을 만들라는 뜻일 거다.

결국 인간은 언제까지 '쿨'하기만 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모든 것에 경계선을 잘 짓고, 구분하고

힘든 일이 있을때, 씩 웃어버리며 대범해 보이는 그 '쿨'함엔

왠지 서글프게도, 젖은 구두처럼, 친구에게 보이기 싫은 상처의 편린이 담겨있다.

깨져버린 청춘의 거울에 아로새겨진 마음의 흔적은 진경 산수의 선처럼,

때로는 굵고 직선을 견지하다 인간의 개입과 더불어

기운생동의 미를 되찾게 된다.

 

 

영화 속 주인공들에게 '소통'은 참 어려운 숙제다

하긴 이 정권에도 소통은 여전히 바늘귀로 소가 통과하는 것만큼

어려운 일이 아니었던가. 괴펠스처럼 라디오를 비주얼을 들이대지 않고

목소리로 승부하고 싶은 이 땅의 대통령의 의지와는 달리, 원성의 목소리만 높은 걸 보면

'참 힘드시죠"란 말에 사람들이 퉁퉁 불어터진 분노만 나오는 걸 거다.

 

다시 영화로 돌아가서, 최근 일본 문학에서 보여주는

참을수 있는 가벼움은 문체에서 명징하게 드러난다.

소설속에 드러나는 깔스런 감정의 변화, 날씨와 주변의 사물에 대입해 풀어낸

19세 남자의 가슴앓이가 영화속에선 일본의 전통적 노와 카부키의 세계처럼

고요하게 그려진 탓인지, 영화는 한편의 <멜로단편극장>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이다.

 

 

누군가를 만지고 싶었던 적이 있었나 싶다.......

분명히 있었던 것 같은데, 영화 속 아오이 유우는 19세의 동급생을

사랑한다. 그녀의 사랑은 외로움을 껴안은 짝사랑이다. 일본 배우들의 연기를 보다보면

예전 나를 참 많이도 아껴주었던 일본친구 유미코의 몇가지 행동들이

스쳐지나간다. 아래로 두팔을 쭉 뻗은채, 입술을 내밀거나

약간 구부정한 자세와 표정, 흠칫 놀라는 모습이며

많은 것들이 떠오른다.

 

나는 사실 이 영화에 본 후의 기분이 참 좋다.

따뜻한 성장영화처럼 다가온다. 19세 남자아이가 20년 연상의

여자에게 그렇게 대담할 수 있다는 것도, 그렇게 투명할 수 있다는 것도

그 나이의 특권인가 싶을 정도로. (이제 나는 그런 사랑을 하기엔 너무 늦었지 싶다)

아오이 유우의 가슴앓이도 예쁘고, 그를 좋아하는 제3의 친구도 보기 좋다.

 

쿨하다는 말이 가지고 있는 이중성에 대해

눈을 뜨고, 사람은 그저 아플때 아프더라도, 진중하고

솔직해야 하고, 허세를 부리지 않아야 함을 조금은 배운 나이라고 생각한다.

 

 

혹시나 연상의 여인을 좋아하고 있을지 모를

이 땅의 순정품과 같은 남자아이들에게 보라 말하고 싶은영화.

한번쯤은 자신보다 오랜 인생을 산 여인과 대등해지고 싶다는

욕망도 있을 거고, 그 과정에서 내가 빨리 성장하고 있다는

생각을 가져보았을 이 땅의 남자아이들에게

이 영화를 권한다.

 

당신들의 순수의 시대가 곧 저물지 모르니 말이다......

 

나의 삶이란 누군가에게 / 뿌리까지 깊숙하게 박혀 뺄 수가 없는
뾰족한 쇠못이라는 것 /  삶이란 누군가에게 / 뿌리까지 온통 뽑혀나가
기억 속에서 지워진 무덤가 잡초라는 것 / 경계의 금을 긋거나 / 철조망을 치거나

말뚝을 박거나 / 너의 마음이 나의 마음을 앞게 찔러대고 있다.

보라 발기한 겨울 나무가 / 알몸을 드러내서는 / 사정없이 하늘을 찔러대고 있다.

보라, 바다가 몸을 열고 / 곧추 세운 섬을 받아들이고 있다

보라, 돌로 높게 세운 다리가 / 강물 속으로 들어가 영원히 박혀 있는 것을

너의 가랑이를 벌려라 / 너의 비무장 지대를 해체하라

내 정신으로 만든 / 가장 순수한 눈물 한 방울을
무기처럼 세워서 찔러 넣을테니 / 너희들의 중심에서 일제히 각혈 같은
비명을 질러대라 / 아아, 이 세상 아프다고 소리를 질러라
뇌리에 박히는 날카로운 사랑처럼 / 눈이 내린다

얼음이 언다 / 발기한 나의 마음이 / 네 영혼의 몸을 열고 뿌리까지 가 닿았나 보다
나는 바다에서 섬을 뽑아들고 / 너의  중심에 박아 넣으며 하염없이 울었다

 

김종제 시인의 <순수> 전편

 

                                           

 

                                                                                   

(포스트 내용이 마음에 드셨다면 구독버튼을 눌러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