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덕 감독의 '비몽'을 봤다. 난 김기덕의 모든 필모그라피를 사랑한다.
헤이리에 갈때마다, 간혹 나를 스쳐 지나가는 그의 모습을
보거나 오프닝에 종종 놀러온 감독의 모습을 살포시 살펴보기도 한다.
물론 그는 참 어려운(?) 영화를 만드는 감독이다.
대학시절 작가주의 영화란 개념을 배웠지만, 데릭 자만이나 난니 모레티처럼
정치적인 영화를 만들지도 않는다. 그는 그저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감독이다. 그 내면의
푸른바다를 동경하는 감독이다. 그래서인지 그의 영화에는
항상 푸른톤의 화면들이 자주 등장한다.
악어에서도 그랬고, 파란대문은 말할 것도 없었고, 이번 영화에도
남자 주인공이 일하는 도장공방의 출입구엔 관음상의 머리가 손잡이로 달려 있고
그 속은 온통 저온의 푸른색이 가득하다. 죽음과 생명을 상징하는
푸른색은 항상 이원적인 색상이다. 종교화에서 푸른색은
마리아나 예수의 몸에 휘감겨있다. 죽음과 동시에
부활을 의미하는 일종의 관습이기 때문이다.
몽유병에 시달리는 여인 란
그녀는 옷을 만든다.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릴 것 같은
천의 질감들을 통해, 여주인공의 마음 속 풍경은 대웅전 앞 목어와 풍경처럼
서로 부딪치며 딸그랑 소리를 낸다. 여인은 옷을 만들기 위해 가위질을 하고, 뜨개를 하고
장식을 붙이거나, 원단을 조율할 것이다. 그렇게 만드는 과정 속에서 지우고 싶은
마음의 주형물을 새로 뜨고 기워보고 싶었을지 모르겠다.
이 영화는 꿈을 꾸는 남자와
그 꿈을 몽유상태에서 현실로 이뤄내는 여자의 슬픈 사랑 이야기다.
도장을 새기는 이 남자, 그는 매일 나무에 자신의 혼을 각인한다.
잊혀져야 할 사랑의 무게가 강했을까. 기억 저편에 놓고 와야 할 기억은
현실의 표피를 뚫고 음험하고 잔혹하게 나온다. 그 욕망은 여전히 눈물로 얼룩져있고
또 다른 사랑으로 인해 힘겨웠던 여인의 몸에 새겨진다. 도장처럼......
김기덕의 영화를 보다가 내가 좋아하는 장석주 시인의
시 한편을 떠올렸다. 꽤나 오래된 한편의 시다. 1979년에 발표된
「날아라, 시간의 포충망에 붙잡힌 우울한 몽상」이라는 긴 제목의 시다.
시의 일부를 소개한다. 이 시의 구성과 내용이 영화의 질감과 너무 닮아 있어서다.
"햇빛 그친 낡은 문짝에 쇠못들이 박혀 녹슬고 있다/
잊혀져 가는 누군가의 이름들/ 바람은 오늘의 풀을 흔들며 지나가지만/
흙 속에 숨은 풀의 흰뿌리는 다치지 못한다/ 통제구역 팻말이 꽂혀 있다/
끝없이 거부하며 어둠으로 쓰러지고 풀뿌리 밑에서 피투성이가 되어 잠들곤 했다/
팻말 뒤에서 펄럭이는 막막한 어둠/ 어두운 창 너머 벌판에는 비가 뿌리고
잠자면서도 절벽을 보았다, 밤마다, 시간, 오오 가혹한 희망과 다정한 공포여
소멸의 이마를 스치는 푸른 번개/ 서치라이트의 섬광만 미친 짐승처럼
이빨을 번득이고/ 나는 꿈속에서도 필사적인 질주를 하여 땀을 흘리고 울었다/
아 1975년 여름, 절벽에 부딛쳐 산산히 튀어 오는 파도조각처럼 부서지고 싶었다. 그때"
놀랍다. 어쩜 시적 배경과 화자의 목소리가 이렇게도
영화 속 진과 란, 두 주인공의 횡보와 맞물려 있을까. 이 영화를 통해
감독은 소통의 길을 찾아보겠다고 했단다. 그만큼 노력을 기울였다는 걸 나도
영화 텍스트를 꼼꼼히 읽으며, 프레임과 프레임 사이에 새겨진
청록빛 기억들의 상처를 통해 이해할 수 있었다.
사랑에 진저리 쳐본 사람은 안다. 누군가를 떠나야 했고
누군가를 한없이 그리워해 본 적이 있는 이들은, 영화 속 자기 모멸과 학대에
시달리는 인간에게 한없는 연민의 정을 느끼게 될 거다.
지금 영화에 대한 작은 리뷰나 쓰려 했던 글쓰기가
기억의 촉매가 되어 지난날 잃어버린 사랑의 물매, 그 잔혹한 기억을
자꾸 복원시킨다. 1999년 그해는 참 내겐 잔혹했던 한 해다. 가난했고, 바늘로
기워내기엔 육체와 영혼이 푸른 강물 속으로 나락처럼 떨어지던 해.
'인터페이스'란 생소한 이름의 분야를 디자인 하는 한 사람을 만났다.
말 그대로 풍경과 나, 주변과 중앙이 결합되어야
통일성 있는 인터페이스가 된다며, 인터페이스란 곧 소통의 열쇠임을
가르쳐준 친구가 있었다. 사랑에 빠졌었다. 그때 난 너무 가난했다. 가진게 없었다.
열정과 능력은 있지만, 받쳐줄 형편이 되지 못했던 여자를 껴안기엔
나 또한 지지리 궁상을 떨며 비루한 일상을 소화하고 있었다.
그렇게 끝을 맞이하고 만 옛 사랑의 추억은
종종 영화를 볼때, 혹은 음식을 먹다가, 소설을 읽거나, 거리를 거닐때
문득 꽁꽁 말아둔 기억의 갑옷을 찢고 수면위로 떠오른다. 김기덕의 마음을 알것 같다.
잊혀진다고 잊혀지는게 아니라는 말. 평생의 트라우마가, 상처가 되기도 하는게
사랑이다. 하지만 동일한 상처를 가진 잎파리가 모이면
하나의 꽃이 되고, 그 꽃이 발화하는 순간은 바로 사랑이 된다.
그 사랑은 꽃의 향기를 따라, 자유롭게 세상을 유영하는 나비로 환생하게 된다.
김기덕은 참 좋은 감독이다. 적어도 난 그렇게 생각한다.
그는 우리가 감추고 싶어하는 어둠의 단면, 그 격자무늬 속에 아로새겨진
슬프고도 푸른 멍울진 상처들을 영화속에 철저하게 녹여낸다.
네 명이 모여서 서로의 상처를 이야기하는 마치 액자구성식의
연극장면이 보이는 씬은 혼란스럽지만, 이것이 인생의 모습임을 담아낸다.
영화를 본 많은 이들이 장자의 호접몽을 생각했단다.
뭐 장자의 사연을 따라 사유하면, 그런 논리의 글쓰기가 가능해질거다.
하지만 난 생각이 조금 다르다. 내겐 끝장면에 등장하는 나비가 마치 상처를
치유하며 소산을 만들어내는 진주조개와 같은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꿈은 현실과 맞닿아 있고 그 접면에서 실체가 된다.
나비는 그 경계선 위에 피어난 기억의 꽃이다. 그 속에 담긴
따스하고도 달콤한 수액을 먹기 위해 잠시 앉은 것이다. 그리움에
찌들어 사는 요즘, 그 나비의 날개짓에서 나를 발견한다.
김기덕의 영화는 항상 날 꿈꾸게 하고
기억의 단면들을 다시 잘라서, 그 시절의 아픔을 다시 보게 한다.
뭔가를 끄집어 내야 하는 상황은 불편하지만, 그 시간을 통해, 나는 다시
희망을 배우고, 확신하게 된다. 지금의 내가 있음에 관하여.......
오늘같은 날은 왜 이렇게 신효범의 노래가 떠오를까.....
'사랑하게 될줄 알았어.....'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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