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 Healing/내 영혼의 갤러리

고양이가 뿔났다-그 이유를 들어보니

패션 큐레이터 2008. 5. 5. 04:15

 
임상돈_어느 곳에서 앉아있는 고양이_혼합재료_37×30×43cm_2008

 

난 개인적으로 조각가 임상돈을 좋아한다.

그는 항상 인내심의 한계에 부딛힌 존재들을 다룬다.

예전 그는 고양이를 다루었고, 지금도 그렇다. 정치적인 메세지냐교?

뭐 굳이 그렇게 묻는다면 풍자의 의미가 전혀 없다고

말하지 못하겠다.



임상돈_어느 곳에서 앉아있는 강아지_혼합재료_34×30×43cm_2008

 

청계천의 부활과 더불어 나타난 쥐새끼 한마리가

온 국민들의 피부에 상처를 내고 생채기를 내는 지금

임상돈이 만들어낸 고양이엔 신경질적인 마음의 상태가 찬연하게 표현되어 있다.

세상은 우리에게 포용력을 가지라고 조언한다.

그러나 그 포용력도 한계가 있는 법이다.

고양이가 뿔났다. 착하디 착한 옆집 강아지도 뿔났다




임상돈_어느 곳에서 앉아있는 고양이와 강아지_혼합재료_37×30×43cm, 34×30×43cm_2008

 

작가는 이 작품을 가리켜 도시 속에 살아가는 우리들이

가지고 있는 자기 방어에 대한 개념을 형상화 한 작품이라고 이야기 했다.

그렇다. 우리는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서 뿔이 나기도 하고

마음 속에서 가시가 돋힌 말을 하기도 한다.

 

말 그대로 자기방어를 위해 뿔이났다.

국민건강을 위해 첨병에 서야할 정부가 검역주권을 버리고,

일부 보수단체의 목소리를 담아 그저 화난 민심만 잠재우려고 하는 것을 사람들은 다 안다.

일관성없이 정권에 따라 태도가 바뀌는 종이언론을 어떻게 믿고 공신력을 주란 말인가.

그들 또한 2007년 광우병에 대해 동일한 분노와 태도를 보여주었으면서

설겆이 운운하니, 사람들은 자기몸을,  자기의 영혼을 지키기 위해

자기방어 기제를 작동시킨 것이다.

 



성유진_Save yourself_다이마루에 콩테_130.3×162.2cm_2008
 
성유진이 그려내는 고양이는 여기에서 한발 더 나간다.
인내심의 한계도 잃었고, 쥐새끼들의 출몰로 인해 자기 정체성에 대한 회의마저
느낀다. 성유진의 그림 속에는 이미 대한민국 백성들이 처한 정신적 공황상태가 잘 그려져 있다.
불안과 우울함, 의심, 그러나 아무리 연구해도 결과를 알수 없는 상처들
사회 속에서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내면의 공황상태가 고양이를 통해 표현된다.
 


권소리_그 고양이는 잠수했다_아크릴, 유토, 필름지, 종이, 연필_36×17×17cm_2004
 
잠시 눈이 멀어서
내 속살을 파고드는 상처를 피해하기 위해
혹은 그저 세상을 등지고 싶어서, 깊은 거품 아래로 잠수해 들어갔던
우리 안의 고양이가 부활하고 있다. 국민들은 촛불로 그 부활의 조짐을 보여주고 있다.



임상돈_어느 곳을 향해 발차는 여인_혼합재료_35×20×55cm_2008
 
이제 고양이의 슬픔은 그와 함께하는 여인에게로 퍼져간다.
어느 곳을 향해서 발을 차는 지는 정확히 모르겠다.
중요한 것은 표피를 뚫고 나오는 분노의 바늘이다. 차내는 힘과
더불어 이곳에 찔리면 그 어떤 것도 성치 못할 듯 하다.

국민들의 염원, 건강권과 검역주권에 대한 꿈이
그렇게도 얻기 어려운 것인지, 최근 들어 새롭게 배우고 있다.
잠이 오지 않는다. 어떻게 잠이 올수 있겠는가?
이것도 전라도 좌파의 선동인가?
 
내 고향은 부산이라네......! 이사람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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