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 Healing/내 영혼의 갤러리

일본 미술에서 발견한 영화 <반지의 제왕>의 골룸, 그 상상력의 표절

패션 큐레이터 2007. 8. 15. 17:58

 

피터잭슨이 연출한 3부작 <반지의 제왕>을 기억하는가.

서구를 통털어 선과 악의 구조로 된 판타지 소설 중 이 만큼 강력한 흡인력을 가진 작품도 드물지 싶다.

최근 한국사회가 영화 <디워>로 인해 뜨겁다. 앞에서도 말했듯 정말이지 더워지고 있다.

한국의 전통적 설화인 이무기 이야기를 영화로 차용한 것 자체부터가 새로운 시도이고

도전적이라는 평을 듣고 있다. 여기에 적극 공감한다.

 

오늘 글에서는 이 반지의 제왕에 대한 이야기를 일본 미술, 더 나아가

중국과 한국을 포함한 동북아시아의 상상력 체계를 통해 풀어가 보려고 썼다.

지면상 모든 걸 다룰 순 없고 반지의 제왕에서 많은 인기를 끌었던 캐릭터 <골룸>이 사실은 동양적

상상력의 데이타베이스에 이미 존재해왔던 산물이란 점을 지적하려고 한다.

나아가서 최근 SF 영화의 새로운 시도로서 <디워>를 어떻게 발전시킬수 있을까를

고민해보고 우리 안에 있는 무궁무진한 동북아의 상상력의 원천들을

어떻게 영화로서 게임으로서 재편성할 수 있는가를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이제 <디워>에 대한 생산적인 논의가, 살림의 논의가 이루어져야 할 때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지고쿠 조시(じごくそうし)].
紙本着色.
헤이안시대(12세기). 동경국립박물관 소장.

 

12-13세기 일본의 헤이안 시대, 새로운 혼란과 상처가 온 사회를 뒤덮던 시절

로쿠도 에마키(六道繪倦)란 장르의 작품들이다. 흔히 스님들이 그린 승화를 말하는데, 그 주된 내용은

 인간의 영혼이 각기 업(業)에 따라 천(天)에서 지옥까지 거쳐야 하는 여섯 단계를 풍자하는 것이다.

인간들은 생전의 업에 따라 여섯 가지 중 하나로 태어나게 되는데
여기에는 천상계(天上界), 아수라(阿修羅), 인간, 짐승, 아귀(餓鬼), 지옥(地獄) 등이 있다.

위에 걸어놓은 두 편의 그림  [지고쿠 조시(地獄草紙)]는 말 그대로 지옥에 대한 풍경을 그려낸 작품이고

[가키 조시(餓鬼草紙)]는 굶어죽은 귀신, 아귀를 그린 것이다.

 

 

[가키조시(がきぞうし)]
紙本著色.
헤이안시대(12세기 후반. 교토국립박물관 소장.

 

이런 작품들이 왜 생산되었을까에 대해 궁금하지 않은가?  헤이안 시대는 톨킨이 쓴 반지의 제왕

의 배경이 되던 시대와 많이 닮아있다. 살육이 밥먹듯 일어나던 시대, 절대악이 판을 치고, 민중들이 처절하게 짓�혀 가던

시대의 풍경이, 스님들의 시선을 통해 풍자되고, 나아가 절대반지를 찾아 없애야 하는 과업을 맞았던

원정대처럼, 시장판에서 살육당하는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한 메세지를 담은 그림이었다.

 

지옥에 떨어진 사람들을 괴롭히는 요괴들을 보니 하나같이 골룸을 그대로 빼어박았다.

반지에 대한 탐욕과 인간에 대한 사랑, 이 두가지 이원적 힘 앞에서 항상 얼굴을 바꾸는 그 골룸이

이미 저 옛적 동양미술인 승화(에마키)에서 이미 구현되어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

모델링의 형태가 너무나도 유사하지 않은가?

 

산해경에 삽입된 삽화들. 디자인 DB,

 

나는 사실 최근에 부상하는 영화 <디워>의 가능성을 여러차원에서 보고 있다.

그것은 단순히 "프랑스랑 독일도 못할걸 우리가 한다고 난리냐-진중권"고 말한 어느 미학자의 말을 듣다가

식민지적 지성에 대해 놀랐고, 우리 한국, 나아가 동북아의 상상력의 보고인 다양한 원천들을 소개하고

이를 통해 이번 영화 <디워>를 통해 축적한 컴퓨터 그래픽 기술을 통해

이것을 어떻게 재현해 낼 방법은 없을까를 고민하게 되었다.

 

디워는 무궁한 이 동북아 지역의 상상력 중 하나에 불과하다.

자꾸 디워를 SF라고 하는데, 이것은 적절하지 못하다. 상상력을 빌어오는 원천이 과학이 아닌

환타지와 설화에 근거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영화 디워는 환타지 영화에 분류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대학시절 영화공부를 했지만 SF나 환타지 영화에 어두웠던 이유는 필자가 무식해서가 아니라

그럴 환경이 아니었다고 본다. 도대체가 SF에 관한 꿈을 키울만한 텍스트 하나 없었으니까.

맨날 작가주의나 프랑스의 바르트가 주장한 글쓰기의 영도니 하는 개념이나

수업시간에 들었으니, 이런 꿈을 꿀수 없었던 것은 당연하다.

그래놓고 뻔뻔스레, 우리에겐 환타지가 SF가 맞지 않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책임방기다.

 

 

그러나 정재서 선생님이 번역한 중국의 기서 <산해경>을 읽었다.

그리고 그 속에 담겨 있는 무궁한 동양의 상상력을 보았다. 우리가 환타지를 좋아하지 않는 것이 아니고

우리는 어떤 일면에서 보면 환타지를 즐기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교육 조차도 받질 못했다.

최근 마케팅 개념으로 풀어보자면 소비자 교육을 못받은 세대인 셈이다.

 

물론 이렇게 된데는 '괴상한 힘과 어지러운 귀신 이야기를 입에 올리지 말라

당부한 공자의 힘이 너무나도 크다. 그의 취지가 율법이 되어 상상력을 눌러버린 것이다.

그런 점에서 그는 진중권이 이야기하는 2500년전의 아리스토텔레스와 너무나도 많이 닮아있다.

그러다나 이 나라의 설화인 이무기 이야기를 들고 세상에 나온 그가 놀랍기만 한 것이다.

 

 

 

괴담을 이야기하지 말라 했거늘, 우리 아리스토텔레스께서 말씀하셨건만

어디 천한 개그맨 출신의 영화 감독이 <이무기>처럼 전혀 세계화의 소재와 거리가 먼 이야기를 들고 설친다고

느꼈을지 모를일이다. 하지만 한가지 만큼은 미학자 진중권도 간과하고 있다.

공자가 그렇게도 이념처럼 포장해서 읽지 말라한 그 괴담은 지금까지 연결되어 많은 이들의 상상력의

원천이 되어 왔다. 루쉰이 그렇고 중국 현대문학의 상당부분이 이 <산해경>의 힘을 업고 있다.

 

   

 

심감독의 말처럼 못해서가 아니라 안해서 못하는 상황이 벌어진다.

바로 환타지란 장르에서 우리 한국은 유독 그의말이 잘 맞아떨어진다. 소설도 환타지 소설은 인기가 없다

왜 그럴까? 분명히 이야기 하지만 우리는 환타지를 꿈꾸면 혼이나는 교육을 받았기 때문이다.

<산해경>은 중국의 기서지만 그 안을 살펴보면 동이족, 조선, 맥이족에 대한 설명들이 엄청나다.

일부학자는 아예 <산해경>이 우리 동이계의 고서라고 까지 주장하고 있다.

 

 

이상현, 일러스트, 산해경 본문 중에서

 

진중권은 우리의 이무기 설화를 가리켜 <세계화>하기에 턱없이 어렵다는 식의 논법을 폈다.

그러나 미안하게도 서양은 동양의 상상력을 분석하고 평론하는데 많은 시간을 보내왔다는 사실을 알아주기

바란다는 점이다. 하버드 옌칭 연구소에 가보기나 한걸까? (나는 가봤다)

동양의 전설과 설화, 기담들을 신화학이란 이름으로 오롯하게 연구하고, 그들의 상상력을 자신의 것으로

전유하기 위한 학제간적인 연구는 오늘도 왕성하게 이루어진다.

 

<산해경>만큼 학제간적 텍스트가 없다. 그래서 많은 학자들이 기피해왔고

어려웠던 것이다. 못해서가 아니라 안해서 못했고, 연구하지 못했기에 꽃피우지 못했다.

우리 안에 있는 동북아의 상상력을 영화로 꽃피우지 못했다. 하지만 이제는 가능성들이 보인다.

 

 

무엇보다도 이번 영화 <디워>에서 보여준 컴퓨터 그래픽의 차원은

동양적 상상력을 그림으로 표현할때, 항상 등장하는 원형들, 곡면들, 폐곡선의 형태들을 잘 포착하고

그려냈다는 데 있다. 그 운동성의 미학이 상상력의 원천을 더욱 예민하게 일깨우고

표현으로 토해낸다.

 

 

골룸의 모습을 동북아의 미술에서 찾아보는 것을 <애국주의>라고 비난 받을까 두렵다

아마도 진중권은 그렇게 말하고도 남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나는 주장하고 싶다. 이것이야 말로

우리 안에 동양의 공자가 가두워둔 상상력과 원형이라고, 이것을 키우는 것이야 말로

서구의 상상력에 찬탄만을 해온 우리의 감성을 <탈식민>하는 길이며

달의 뒷면에 잊혀져 있었던 우리 동북아의 무의식을 찾아내서 미적으로 승화시키는 일이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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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영화 디워 마지막에 나오는 우리의 아리랑을 배경으로 준비했습니다.
우리의 아리랑을, 이무기 설화를, 산해경을, 동북아의 상상력을 찾아 <반지의 제왕>을 꺽는 일은
애국주의도 민족주의도 아닙니다. 우리 안에서 우리를 규정해온 거대한 타자
서양이란 담론을 넘어서기 위한 탈식민의 움직임이며, 열망일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저는 그 기대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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