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 Healing/내 영혼의 갤러리

짜장면 배달부가 된 로보트 태권브이

패션 큐레이터 2007. 6. 28. 00:27



성태진_나의 일그러진 영웅_라인에칭, 아콰틴트_25×15cm_2005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이었을 것이다.

부산 시내의 극장에서 누나와 함께 손을 잡고 보았던 <로보트 태권브이>

당시 태권브이는 소년들의 로망이었고 꿈이었다. 지구를 지키는 수많은 영웅들이 그 후에도

우리앞에 나타났지만 사실 태권브이만큼 정신의 무늬를 강하게 새겨넣은 아이콘은 없지싶다.

 

요즘 Daum 만화칸에서 우연하게 <브이>라는 만화를 발견했다

예전 보았던 태권브이의 30년 후를 그린 만화였다. 예전 부모님에게 왜 내 이름을

훈이와 같은 멋진 이름으로 안 지어주었냐며 질질 짜던 아이는 이제

써티썸띵의 나이가 되고 <브이> 만화 속 훈이는 40대 중반의 만년과장이 되어 있었다




성태진_자력갱생_목판에 양각후 채색_80×100cm_2006

 

더 이상 지구를 지킬 필요가 없는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언제부터인가 로보트 태권브이는 지워지고 있었다. 유년기의 로망이었던 상징은

이제 덧없이 사람들의 기억속에서, 한꺼풀씩 자신의 멍울진 존재들을 지워가며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조차 하나씩 멀어지기 시작한다. 작가 성태진은 바로 이러한 존재감을

태권브이를 통해 미술로 다시 보여준다. 일그러진 영웅이 되어버린 시대

세상은 평화의 이름으로, 예전 몸을 바쳐 세상을 위해 싸웠던 사람들을 말소시킨다.

 

 

윤기원_SUPERMAN_캔버스에 아크릴 채색_100F_2006

 

아마 비슷한 시기였을 것이다.

LP판이 넘실거리던 당시, 우리집엔 파이오니어란 브랜드의 전축이 있었다.

흔히 말하는 턴테이블도 있고, 벨벳으로 만든 레코드판 닦기도 있었다. 형은 음반을 모으는걸

좋아했고, 스모키와 퀸, 핑크 플로이드, 키스, 블랙 사바스 같은 그룹들의 이름이

우리집에선 회자되고 있었다. 그때였을 것이다. 이 소년의 눈에 들어온

또 다른 영웅 <슈퍼맨> 형을 괴롭혀 보러간 이 영화에서 주인공은

빛의 속도로 지구를 돌아 사랑하는 연인을 구하고, 무너지는 다리를 원상복구시키고

악당들을 물리쳤다. 게다가 색감이 좋은 레드와 블루의 의상을 입어서인지

눈에 더욱 튀었던 시절이다.

 

 



윤기원_STORM-SUPERMAN_캔버스에 아크릴 채색_50F_2006

 

작가 윤기원은 팝아트를 한다. 그는 잡지 속 영화의 주인공들을 차용하여

우리 시대의 영웅들을 그리기도 하고, 그 속에 자신의 모습을 동질적으로 집어 넣기도 한다.

 



신기운_아톰_Full-HD 영상설치_00:02:12

 

어린시절 영웅들의 리스트에서 꼭 빠지지 않는 멤버들이 있다

바로 일본에서 건너온 아톰이다. 태권브이처럼 거대하지 않고, 내 친구처럼 자그마한 체구를

가졌지만 힘은 결코 못지 않은, 우리들의 친구 아톰. 난 그 아톰의 인터페이스를 좋아했다

무엇보다도 시선의 눈높이가 내 눈높이와 맞아서 아주 편했고 그의 불을 품는 다리를

좋아했다.....그 또한 지구를 구했다.

 



김재남_drift heroes_디지털 프린트_40×26cm_2006

 

중학교에 들어가면서 나를 가장 괴롭힌 것은

교회 중등부 예배시간과 <은하철도 999>의 시간이 겹친다는 것이었다

내게는 시험이었다. 어른들은 이제 중학생이 무슨 만화냐며 야단을 쳤지만 좋은 걸 어찌하랴

특히 금발의 메텔 아줌마는 향후 소년의 이상형이 되어 한동안을 괴롭혔다.

은하철도 999는 참 특이한 만화였지 싶다. 더구나 사이보그와 인간 사이의 공존과

지구의 파별, 결국 우리가 가야할, 선택해야 할 생의 기로를 보여준 만화였기 때문이다

 

어린나이에도 상당히 깊은 생각을 요하게 만든 만만치 않은 만화.

당시 지구를 지키는 영웅을 사랑했던 소년은 이제 그저 평범한 회사인이 되고

그 영웅들은 디지털의 옷을 입고 다시 한번 부활을 꿈꾸긴 하지만

<브이> 만화 속 주인공의 모습은 현재의 나를 너무나도 닮았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이 되어 버린 태권브이...그리고 훈. 난 그래도 그들을 사랑한다

 

교통 방송이던가?
영웅을 만드는 라디오 프로가 있다
「나는 영웅이다!」
핏대를 올리며 의기양양 외쳐댄다
프로그램의 진행자는, 누구나 영웅이 될 수 있다고
부추기고 있다

앞차가 정지하자 도로는 삽시간에 주차장이 된다
한 영웅이 삿대질하고
또 한 영웅 뛰쳐나와 눈을 부릅뜬다
두 주먹 불끈 쥐고 길길이 악을 쓴다
길가의 민들레 꽃들도 일어나
깔깔거리며 손뼉을 친다

<영웅부재>의 시대란 허구의 수사
자꾸 소란스러워지기만 하는 세상에서
우리들 모두는 영웅이다

 

김지헌의 <영웅시대> 전편


영웅이 부재하는 시대일수록 내 마음 속엔 예전 지구를 지키던

로봇 태권브이가 더욱 그립고, 빨강색 반바지를 입은 슈퍼맨이 그립다.......

하긴 영웅이 뭐 별거이겠는가. 내겐 여러분 모두가 영웅이고 태권브이다

 

27013
 


영화 <슈퍼맨>의 러브테마 올립니다.....여러분 모두를 제 등에 업고

한번 날랐으면 좋겠네요. 그런 능력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행복한 하루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