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컴한 사진 박스 안에 들어온 지도 꽤 시간이 지났다. 조그만 회전의자를 적당한 높이로 맞추고는 공연히 서둘러서 기계에 동전을 넣지는 않았다. 사색을 하기에 적당한 조건이 갖춰진 것 같았다. 몇 분 전, 나는 탐조등 불빛 안으로 떨어지는 빗방울을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탐조등 광선이 비추는 공간은 매우 정확히 한계가 그어진 폐쇄 공간이지만 동시에 로트코의 외곽선 만큼이나 물질적 경계선이 없는 유동적이고 개방된 공간이었다.
이 세계의 바로 이 지점에 떨어지는 비, 휘몰아치는 바람을 타고 원추형의 밝은 공간에서 바로 그 옆 암흑의 공간으로, 그러나 빛과 어둠 사이에 손으로 감지할 수 있는 한계를 정하는 게 불가능한 이 두 공간...... 밝은 공간에서 어둠으로 지나가는 이 비를 상상하다가 나는, 한순간 밝음 속에 있다간 순식간에 사라지고 다른 것이 그 뒤를 잇는 이 비가 사고의 흐름을 나타내는 이미지와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다. 왜냐하면...... 사고한다는 것이 이와 다를 게 있는가?
아름다운 것은 바로 흐름, 바로 그거다. 흐름, 이 소란한 세계 밖으로 향하는 중얼거림. 사고를 멈추고 대명천지에 그 내용을 표현하고자 한다면 어떠할까? 말하자면, 유지하기 위해 오히려 말을 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아무것도 얻지 못하고, 손가락 사이에 물, 광선의 불타는 듯한 매력이 사라져 버린 물방울 몇 개만을 얻으리라. 이제 내 머릿속은 밤이고 나는 밖에서 느낀 혼란이 진정되어 칸막이의 어둠 속에 홀로 있다.
실로 사고하기에 가장 부드러운 조건, 사고가 마음껏 요리조리 꾸불꾸불 규칙적인 길을 따라 흘러가는 순간은 바로 파악이 불가능한 현실과 대결하기를 포기하여 우리를 위협하는 온갖 상처로부터 자기를 지키다가 생긴 긴장이 점차 감소되기 시작하는 그 순간이다. 또한 폐쇄된 공간 속에서 홀로 마음속에서 일기 시작하는 안도감을 느끼며 사고의 흐름을 따라가다 보면, 점진적으로 산다는 게 어렵다는 생각에서 존재에 대한 절망으로 생각이 바뀐다.
Jean-Philippe Toussaint, <L'APPAREIL PHOTO>, p87 ~ 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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