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중앙박물관에 다녀왔다. 소강당을 가득 메운 분들을 보니 이제 또 이렇게 한 해가 저무나하는 회환도 들었다. 올해 많은 기관과 대학, 기업을 상대로 강의를 다녔다. 국립중앙박물관은 내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장소이기도 하다. 항상 해외 특별전이 있을 때마다 전시 소개를 하기도 했고, 많은 리뷰를 쓰기도 했다. 이곳에 가면 미술사 연구자들을 위한 도서관에 하루종일 틀어박혀 묵직한 글들을 읽거나 주변을 산책하며 머리를 식힌다. 오죽하면 이곳이 좋아서 지금의 청담동을 떠나게 되면 꼭 이촌동으로 이사를 가야지 하는 생각을 해보기도 했다. 패션 이야기를 할 때면 매번 설레고 기분이 좋다.
나는 항상 사람들에게 옷이란 사물을 통해 삶을 이야기하는 이로 기억되고 싶다. 삶의 시작과 마무리를 해온 저 옷의 세계, 그 옷이 담긴 기억의 아카이브인 옷장 속을 주유하며 나는 오늘도 사유한다. 이렇게 글쓰고 강의하고, 방송하고, 분야의 꿈을 키우고 만들어가는 이들을 만나고, 그들에게 오히려 용기를 얻는 삶. 올 2017년도 이러한 행위들의 딱 1년치 누적의 모음이다. 되돌아보면 내게 영감을 준 이들은 대단한 학자나 세상이 말하는 패셔니스타들이 아니었다. 일상에서 만나서 자신의 일을 오랜 동안 열심히 하고, 또한 살아내는 이들의 작은 기적들이 옷과 살을 입고 내 앞에 현현한 이들이었다. 한 해의 마지막, 들판에서 만나는 작은 들풀의 움직임에 더 설레고 살아있음의 찬연함을 느끼게 되는 이유이리라.
특히 오늘 강의는 국립중앙박물관의 각 분야에서 자원봉사를 하는 분들이 많았다. 유적 보존과 번역작업, 전문전시해설에 이르기까지, 노년 분들이 많지만 실제로는 과거에 깊은 연구나 공부들을 해오셨던 분들인데다, 기초적인 소양이 워낙 탄탄해서 무슨 이야기를 해도 잘 통어된다. 이런 분들 만나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인지 강의하면서 에너지도 많이 쓰지 않으면서도 효과를 커진다. 이런 만남은 참 귀하다. 강연 후 국악연주가 감미롭다. 해금과 대금, 가야금 소리가 오늘따라 가슴에 와닿는다. 글을 쓰면서도 지금 해금연주를 듣는다. 가슴 한켠, 저미어가는 음결의 무늬들이 곱다. 오늘 강의에 함께 해주신 분들에게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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