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은아트스페이스에 다녀왔다. 바로 집 근처임에도 오랜만에 들렀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 리경의 개인전이 9월 하순부터 있었다는 사실을 오늘에서야 안 것이다. 예전에는 네오룩을 비롯해 다양한 미술 데이터베이스 사이트를 뒤지며, 작가들의 전시를 챙기던 나였는데, 어쩌다 이렇게 되어가고 있는지 모르겠다. 청담동에서 점심약속이 있어 나갔다가 시간이 남아 들렀다. 스페이스의 파사드 포스터에는 빛의 방향을 형상화한 전시알림판이 걸려있었다. 리경 작가님의 빛 설치 작업에 관심이 많았다.
처음엔 단순히 빛의 작용이나 혹은 빛의 파장 형식을 이용한 메세지들이려니 했다. 결국 우리가 사물을 볼 수 있는 것은 빛 때문이니, 빛을 소재로 삼는다는 것은 사물과 인간의 관계에 대한 질문의 방식이라고 봐도 무방하겠다. 이번 전시의 제목은 More Light 향유고래 회로도 이다. 송은아트스페이스의 입면도가 향유고래의 머리모양을 닮은데서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한다.
물론 향유고래는 허만 멜빌의 <모비 딕>에서 영감의 일부를 따왔다고 한다. 설치미술의 어휘가 그 어느 때보다 풍성해지고, 특정한 장소의 심리적 위상과 만나 새로운 의미들을 만들어내는 방식도 깊어지는 느낌이다. 뫼딕이 고래와 인간의 사투를 통해 인간의 조건을 묻는 작품이기에, 그 어떤 작업보다도 레이저로 연출한 빛을 통해 명상적 분위기는 한층 더 깊어진다. 작가는 항상 빛에 관심을 가지고 작업을 해왔다. 빛은 만물의 표면 위에서, 그 본질의 뿌리를 비추는 힘이다. 인간은 때로는 그 힘을 이용하기도 하고, 그 힘에 자신을 맡기기도 하면서 자신을 둘러싼 환경과 자신과의 관계를 조율하고 디자인한다.
어두운 전시장 안으로 들어가면, 마치 하늘에서 쏟아지는 두 개의 빛의 기둥과 조우한다. 두 개의 빛의 기둥은 교차하며 꺼지고 켜진다. 마치 심전도계의 그래프처럼, 우리는 빛을 통해 생명의 유지와 연장을 시각적으로 읽게 되는데, 이 빛은 마치 생성과 소멸이라는 인간한계의 연속되는 띠를 보여주는 것 같다. 마치 출애굽의 두 불기둥을 떠올리기도 했다. 빛은 터널의 끝에서 인간의 욕망을 사그러뜨리지 않고, 결코 희망을 버리지 않게 만드는 힘이기도 하다.
향유고래의 아이디어에 따라, 바닥에는 향이 나는 오일을 어느 정도 뿌렸다. 바닥이 미끄러워서 조심하라는 도슨트의 말에 따라 조심스레 발걸음을 옮겼다. 빛과 사운드가 어루어지는 풍경 속에서, 나도 모르게 내 자신에 대한 묵상에 빠졌다. 빛이 주는 또 다른 힘이리라. 사진기에 담을 때마다 빛에 투영된 내 그림자가 보였다. 내 자신의 이면을 보는 느낌이랄까? 묵중하지만 선연하게 내 자신에게 질문을 던지게 된다. 저 빛의 흐름 앞에서. 인간은 빛에 반응하는 존재다. 사회 내부의 빛, 인간 내부의 빛이 만날 때 인간사회의 균형과 질서, 도덕성은 그 명분을 유지하게 된다. 우리는 자라면서 타인의 내면에 담긴 빛을 통해 길을 인도받고, 앞으로 나아간다. 그들이 지금의 삶 속에서 그 무게를 다하고 사라질 때, 옅은 새벽 안개 속으로 명멸할 때도 우리는 그 빛이 다시 우리에게 돌아올 것임을 믿는다. 우리는 영원히 회귀하는 빛의 아이들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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