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를 기억하며
한 장의 그림을 바칩니다
하와이 해변에 좌초된 한 척의 배가 있습니다. 오랜 해풍에 녹이 슬었고, 표면에는 미세한 금이 생겼습니다. 거리벽화를 그리던 션 요로란 작가가, 서핑보드를 타고 이 배에 다가가, 표면에 한 여인의 그림을 그렸습니다. 여인의 얼굴은 파도의 흐름에 따라 나왔다 사라졌다를 반복합니다. 여인은 간절히 누군가를 목놓아 부르는 것 같습니다. 이 작품을 보았을 때 저는 세월호의 아이들을 떠올렸습니다.
아 이 작품의 제목을 말하지 않았군요. 작품의 제목은 '돌아오라 Come Back' 입니다. 세월호가 1000일을 훌쩍 넘어서 이제 우리 곁으로 돌아옵니다. 한 시대, 한 사회에 메울 수 없는 금을 만든 세월호. 트라우마란 단어로는 사건이 남긴 파장의 깊이를 설명할 수가 없겠지요. 도대체 3년이 넘는 시간동안 왜 세월호는 인양될 수 없었을까요? 1073일, 하루하루를 세어보는 것이 불가능했던 팽목항의 시간들. 팽목항은 우리사회 내부에 실재하지만, 아득한 현실너머의 저편이 되었습니다. 기억이 날카로운 칼날처럼, 우리의 내면을 찟어내느라 부산했던 그 시간들을 이제는 다시 긁어모아야 합니다. 우리 안의 분노를, 세월호를 둘러싼 관련자들의 그 역겨운 얼굴도 기억해내야 합니다. 소환해야지요. 그래야 다시 저 세월호 속에 우리 국민의 염원으로 모은 눈물의 평형수를 채워 넣을 수 있습니다.
수평선이 기울어지는 것은 바다 때문에 아니다. 바닷속으로 가라앉아가는 당신 때문이다. 팽목항의 갈매기들이 부두로 돌아가지 못하고 밤새도록 파도에 나부끼며 흐느끼는 것은 기울어지는 수평선 때문이 아니다. 평형을 이루지 못하고 가라앉아간 바로 당신 때문이다. 지구가 지구 밖으로 곤구박질치지 않고 찬란히 별빛으로 우리를 빛나게 하는 것은 별과 별이 서로 평형을 이루기 때문인 것을 텅 빈 가슴을 부여안고 기우뚱 수평선 밖으로 이울어진 당신은 이제 노란 종이배의 가슴에도 평형수를 채워 기울어지는 눈물의 망망대해를 바로 세워 그리운 우리를 영원히 다시 만나게 하라.
정호승의 <나는 희망을 거절한다> 중 '평형수' 전문
세월호는 우리의 첫 사랑이어야 합니다. 지금껏 삼켜야 했던 상처의 밥그릇에, 이제 봄 꽃의 찬연함을 담아야 합니다. 잔혹한 시간을 견디며, 지금껏 걸어온 이들의 발 아래, 내 사랑을 탁발하여 보냅니다. 나의 시종 드릴 것이 이 사랑 밖에는 없습니다. 우리의 마음 속 금 사이로, 봄빛이 반드시 스며들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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