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1 그들은 왜 잠들지 못하는가
21세기의 열쇠는 동북아시아에 있다고 한다. 흔히 베세토(BESETO)라 불리는 베이징과 서울, 도쿄 이 세 수도의 나라 중국과 한국, 일본이 그 주인공이다. 천안함 사태에서도 알 수 있듯, 세 나라의 정치사회적 풍경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중국의 위안화 결정과 일본의 증시는 실시간으로 한국시장에 반영된다. 그들의 외교적 의사결정, 미국이란 거대담론을 바라보는 시각은 이 3인 4각 경기의 중간에 초라하게 끼어있는 한국의 정치환경에 그대로 영향을 미친다. 결국 한 나라의 정서적 풍경은 그 나라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다른 나라의 과거이자 미래이며 동시에 현재진행형이다. 연극을 통해 세 나라의 정서적 구조와 현대의 조건을 살펴볼 수 있다면 어떨까? 두산아트센터의 <인인인>시리즈는 현대연극 중 중국작품으로 <코뿔소의 사랑>을 일본작품으로 <잠 못드는 밤은 없다>를 한국 작품으로는 <인어도시>를 통해 3국의 내면의 속살을 관통하는 동일한 빛깔의 혈흔을 그린다.
중국은 1978년 개혁개방화 정책 이후, 급속한 경제성장의 기적을 이뤘지만, 과거 한국의 70년대와 동일한 사회적 트라우마를 경험하고 있다. 심각한 빈부격차, 지역간 개발 불균형, 사회적 급변이 낳는 문화지체현상 등이 그것이다. 연극 <코뿔소는 없다>가 현대 중국의 젊은이들의 사랑과 그 방식을 통해, 내면의 풍경을 그린다면, 오늘 본 <잠못드는 밤은 없다>는 일본 사회의 병리현상과 인간의 고독에 대해서 이야기 한다.
2차 세계 대전 이후 '경제동물'이란 불쾌한 사회적 명칭을 감수하면서까지 완성한 경제성장. 그 배후에는 히키코모리(은둔형 외톨이)와 이지메(집단 따돌림) 문화 등, 속도의 정치학에 패배한 인간의 이면들이 등장한다. 오늘 본 <잠 못드는 밤은 없다>는 일본의 거대한 성장과 속도에 억눌린 채, 자신의 내면을 돌아볼 기회가 없었던 '경제동물'의 정서적 패배감, 나아가 사회 전체에 퍼지고 있는 병리적인 상처를 드러낸다.
이 연극에서 처음 등장하는 부부는 은퇴이민을 결정한 일본인의 전형이다. 그들은 필리핀 마닐라나, 타이의 치앙마이, 말레이시아의 쿠알라룸푸르 근교에 자리를 잡고 산다. 제2차 세계 대전 직후 베이비 붐 세대로 일본의 경제성장을 주도했던 '단카이세대'가 정년퇴직하면서 만든 문화적 코드다.
'소토코모리'란 표현이 있다. 해외에서 히키코모리처럼 생활하는 것을 일컷는 말이다. 바깥이란 뜻의 소토(外)와 '히키코모리'의 합성어다. 일본에서 몇 달 동안 일을 해서 번 돈으로 동남아시아 같이 물가가 싼 나라에 가서 아무런 활동도 하지 않고 지낸다. 주요 원인은 사회생활의 스트레스와 가족과의 관계단절이다.
이 연극은 은퇴 후 말레이시아로 이주한 일본인들이 보내는 소토코모리의 시간을 그린다. 다테마에의 문화를 내면화 한 이들. 절대로 타인에게 결례를 범하거나 프라이버시를 침해하지 않는 그들의 모습은 연극 전체에도 그대로 반복된다.
연극에선 극적 긴장이나 갈등을 발산하는 사건은 등장하지 않는다. 철저하게 인간의 조락을 즐기는 리조트의 풍경, 그들은 일본 음식을 먹고 일본 DVD를 보며 산다. 여전히 머리 속엔 떠오르는 태양의 나라 일본이 자리한다. 쾌적함 뒤에 숨은 헛헛한 슬픔만이 아련하게 그려진다. 병에 걸렸지만 두 딸에게 말하지 않는 아버지, 태평양 전쟁에서 아버지를 잃은 남자는 딸에게 "고향으로 가고 싶지 않다'며 은둔한다.
그들의 머리 속은 일본인 병사의 유골이 묻혀 있는 땅에 대한 집착, 가난 속에서도 꿈이 있던 시절에 대한 추억으로 채워진다. 바로 전쟁을 경험한 노년 세대의 굴절된 생각들이 드러난다. 비록 말레이시아를 무대로 하고 있지만, 이곳은 바로 일본의 정신성을 집약한 소우주다. 고령화와 질환, 빈부격차의 문제, 히키코모리 등 다양한 스펙트럼의 사회적 문제로 찌들린 곳. 외부의 풍경과 내면의 후패는 대칭적 관계다. 그래서 더 슬픈가보다. 극작가 히라타 오리자의 작품은 항상 그랬다. 청년연극단에서 시작, 이제 중년을 넘은 그는, 비로소 중년의 삶의 코드 속에 침윤된 일본의 '쇠망코드'를 절망적으로 찾아낸다.
왜 그들은 잠들지 못할까? 이혼여행을 와서 찐한 육체관계를 선보이는 부부, 학창시절 이지메에 괴롭힘을 당해 그 괴로움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려는 찰라, 그 친구의 방문으로 힘든 여자, 아버지에 대한 증오로 히키코모리로 살아가는 리조트의 심부름꾼, 시집에는 관심이 없고 혼자만의 삶을 즐기려는 딸과 그녀를 말리는 아버지, 그들은 말레이시아의 아름다운 노을과 해변가의 풍경을 보면서도 잠들지 못한다. 왜 그들은 고국으로 돌아가지 못하는가? 그들은 왜 본국에서 점점 더 지워지는 사회적 존재가 될 수 밖에 없었을까? 연극은 답하지 않는다. 그저 묵묵하게 일본이 경험하고 있는 지금 그대로의 모습을 그려갈 뿐.
이 연극을 보면서 계속 씁쓸한 담즙이 혈관 속으로 쏟아지는 느낌이 든다. 일본의 모습이 한국의 '베이비붐'세대의 은퇴 문제와 고령화 사회의 모순과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타인의 상처가 타자의 것으로 끝나지 않고, 우리의 상처로 부메랑이 되어 돌아온다. "다른건 몰라도 왜놈들이 인사성은 밝다"라는 말 속에 담긴, 존경과 폄하란 이중의 태도 속에서 여전히 정신적 갈무리를 끝내지 못한 우리에겐, 이 연극이 너무나 낮설지 않았다. 슬프다......일본은 없다 란 말은 곧 '우리 한국도 없어질 것이다'란 말과 동일선상에 놓여질게 될까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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