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Holic/영화에 홀리다

맹인안내견, 인간의 길을 안내하다-영화 '퀼' 리뷰

패션 큐레이터 2010. 2. 8. 21:09

 

 S#1 개보다 못한 것들의 사회

 

어린시절 누구나 한번쯤은 강아지를 키우며 교감을 나누는 경험을 한다. 어른이 되서도 반려견을 옆에 두고 얻는 것이 많다는 걸 배운다. 나도 지금까지 4마리의 강아지를 키웠고 2마리는 자연사, 또 두 마리는 초기에 실수로, 사고로 그렇게 잃었다. 아끼던 강아지가 죽었던 날이 내 생일이어서 잊을수도 없다.

 

2008년 1월 시베리아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자, 엄마는 대뜸 강아지가 하늘에 갔다는 말을 던졌다. 마음 한구석이 허전했다. 17년이란 세월을 같이 했는데, 마음이 아팠다. 죽을 때 옆에 있어주지 못해서 마음 한구석이 더 쓰렸다.

 

예전에 보았던 연극 <맹인안내견>이 떠올랐다. 1991년 한국에서 열린 세계 연극제대 발표된 신주꾸 극단의 <맹인안내견>은 지하철 역 안에서 생활하는 노숙자들의 삶을 다룬다. 제일교포 2세였던 김수진씨가 연출을 맡아 더욱 주목을 받았던 작품이다. 대학 2학년때 이 작품을 보면서 약간 초현실주의 적인 느낌의 연극을 처음 봤던 터라, 신기하기도 했다.

 

작품은 60년대 혼란의 도시 동경을 중심으로 좌익과 우익의 다툼, 그 속에서도 여전히 정신적 교감을 놓치지 않는 맹인 파리오와 안내견 파킬이 펼치는 따뜻한 애정을 놓치지 않았다. 오랜 시간이 지나 그 따스한 감성을 영화로 또 만난다.

 

제일교포 감독인 김양일. 난 그에 대한 믿음이 꽤 강한 편이다. 1993년 서울의 자칭 시네필이라 불리는 영화광들이 거의 매일 습관적으로 드나들던 공간이 있었다. '문화학교 서울'이라고. 오늘날의 구 피카디리 극장 자리에 있는 아트 시네마다. 이곳에 가면 하루에 3편씩, 지금과 달리 풍성하게 예술영화를 볼수 없던 시절, 다양한 제3국의 작품에서 부터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을 볼수 있던 곳이었다.

 

그때 <달은 어디로 뜨는가>란 작품으로 그를 만났다. 작가주의적 관점을 구지 들이대자면 그의 작품들은 오늘 소개할 '퀼'과는 완전 딴판인 세상을 그린다. 방향을 잃은 일본사회의 단면들을 씁쓸하고 신랄하게 파헤쳤다. 탐욕에 가득찬 채, 속도전을 방불케 하는 일본경제의 속살 속, 사회적으로 소외당한 이들에 대해 연민의 시선을 보여주었다. 단 코미디란 장르로. 그랬던 그가 돌아왔다. 원래 이 작품이 만들어진건 2004년인데 꽤 시간이 지나서야 한국에서 개봉이 된 셈이다.

 

 

영화 <퀼>은 맹인안내견의 일생을 다룬 영화다. 소설로 70만부 이상이 팔렸던 베스트 셀러였는데 영화로 만들어진 것이다. 한 마디로 영화 보다가 나도 모르게 울어버린 영화기도 해서, 꼭 포스팅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인공 퀼은 도쿄의 한 주택에서 5마리의 리트리버 중 한 마리로 태어난다. 이후 퍼피 워커라 불리는 제 2의 부모에게 맡겨져 1살이 될때까지 사람과 교류하며 사랑을 받고 주는 법을 배운다. 이후 그는 맹인안내견 훈련센터로 보내어져 훈련을 받는다. 다른 개들보다 유독 한 템포 느린 구부정한 느낌의 이 강아지가 최종 맹인안내견으로 선택된다. 감정표현이 빠르고 격한 성격을 소유한 강아지는 맹인안내견이 될수 없기 때문이란다.

 

 

훈련을 마치고 퀼은 첫번째 고객이자 동반자를 만난다. 시각장애인 와타나베는 어찌된일인지 고집도 세고, 도통 마음의 문을 열지 않는다. 그러나 결국 개인훈련을 위해 길을 나갔다가 '퀼'의 배려하는 마음을 알게 되고, 서로는 친구가 된다. 이 영화를 본 후 자료를 찾아보니 맹인 안내견은 '지적불복종'이란 훈련을 엄청나게 감내하게 된단다. 원래 개는 주인의 말에 복종하게 되어 있으나, 주인이 위험에 처하게 될 경우, 혹은 그런 가능성이 있는 명령에 대해서 불복종하는 것이다.

 

 

안타깝게 주인과 보낸 짧은 시간을 뒤로 하고 지병으로 병원신세를 지게 된 와타나베. 그 동안 다른 시각장애인을 위한 안내견으로 활동하는 줄 알았더니, 그게 아니다. 원래 맹인 안내견은 오로지 한 사람을 위해서 훈련을 받는단다. 이 부분을 보면서 어찌나 숙연해지던지. 결국 와타나베는 병으로 죽고 이후 퀼은 자신의 두번째 엄마인 퍼피 워커에게 돌아와 나머지 일생을 보낸다.

 

 

무엇보다 오늘 이 글을 쓰게 된 것은 며칠 전 신호등 앞에서 본 맹인안내견 때문이다. 어떤 아주머니가 맹도견을 보더니 귀엽다고 자꾸 먹을 걸 권하신다. 신호등이 바뀌기를 기다리는 맹도견에게 이런 행동들이 얼마나 취약한 것인지, 그 분은 몰랐던 거 같다. 시각 장애인을 위험에 빠뜨릴수 있는 행동이란 거다. 그 분을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그만큼 우리가 맹인안내견을 대할 줄 모른다는 거다. 이와 더불어 시각 장애인들을 어떻게 돕고 배려해야 하는지, 사실 제대로 고지도, 배우지도 못한게 사실이다.  그걸 배우지 못한 상태에서 나온 행동에 대해 비난하면 안된다.

 

 

요즘은 많이 나아지긴 했지만, 여전히 맹인안내견이 입장할 수 없는 곳이 너무 많다. 맹인안내견에 관한 법률 고시를 보면 "누구든지 보조견표지를 부착한 장애인보조견을 동반한 장애인이 대중교통수단에 탑승하거나 공공장소 및 숙박시설, 식품접객업소 등 여러 사람이 다니거나 모이는 곳에 출입하고자 하는 때에는 정당한 사유가 없는 한 이를 거부하여서는 아니된다"고 되어있으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하긴 장애인 시설이 들어서면 집값이 떨어진다며 집단 항의와 데모를 일삼던 강남의 한 아파트 부녀회가 떠오르는 부분이다. 어디 이뿐인가? 장애인의 날에만 '장애우'를 들먹이며 사회적 약자를 위한 배려를 이야기 하지만, 항상 방송과 일상의 모습은 판이하게 달랐다.

 

영화를 보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 우리가 배워야 할 것들이 너무 많다는 생각. 인간의 부족한 면을 옆에서 채워가며 평생을 보내는 안내견의 삶엔 '개보다 때로는 못한'못난 우리들의 자화상이 녹아 있었다. 욕망을 참는 훈련을 받고 평생을 그렇게 살아가는 통에, 다른 종에 비해 평균수명도 짧다고 들었다. 인간이든 동물이든, 자신이 하고 싶은 것들, 채우고 싶은 것들, 먹고 싶은 것들, 참고 사는게 어디 그리 쉬운 일이겠는가. 그저 자신이 하고 싶은데로, 누리고 싶은 데로 타자의 삶을 뭉게면서도 얻고자 하는 욕망을 가진 못난 인간에게, 맹인 안내견 한 마리가 전해주는 따스함이 너무나도 깊고 크다. 미안하다......정말 '퀼' 행복해야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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