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Holic/영화에 홀리다

고백에 서툰 연인들을 위한 영화-도쿄 마블 초콜릿

패션 큐레이터 2009. 2. 19. 13:15

 

 S#1-그 남자의 사정 VS 그 여자의 사정

 

어제 들어오는 길에 한편의 영화를 봤습니다.『도쿄 마블 초콜릿』공각기동대란 불후의 명작을 만들었던 IG 프로덕션의 작품이라고 하더군요. 27분짜리 단편 작품 두 개를 묶어 하나의 이야기로 완성한 작품입니다.

 

2월 14일 발렌타인 데이도 이제 끝났고, 또 얼마 있으면 3월 14일 화이트 데이가 다가오겠군요. 두 주인공 유다이는 평범한 직장입니다. 여자 앞에서는 수줍음을 너무 타고 우유부단하고 용기도 없어서 헤어지기가 몇번인지요. 반면 여 주인공 치즈루는 활달하지만 항상 모든 남자와 끝이 좋지 않았다고 고백하는 걸 보면 사랑에 서툴고 실수투성이인 아가씨입니다.

 

데보라 테넌의 <남자를 토라지게 하는 말, 여자를 화나게 하는 말>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 등과 같은 책들이 공전의 히트를 친 적이 있습니다. 남자와 여자는 생득적으로 문화적 코드가 다르기 때문에 이를 고치지 보다 이해하고 넘어가는 쪽을 배우는 것이 현명하다는 것이죠.

 

남자의 선의를 여자가 이해하지 못하고, 여자의 배려를 남자가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렇게 두 사람 사이의 소통에는 설명하기 어려운 벽이 생깁니다. 공감을 원하는 여자와 확증을 원하는 남자, 과정을 중요시 여기는 여자와 결과를 중요시 여기는 남자. 그러나 속살을 들여다 보면, 결국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두 요소는 서로 상충하기 보다는 화합을 하고, 절충점을 찾아내는 것이 더 필요하다는 걸 알게 되지요.

 

개인적으로 이 영화에 대해서는 약간 실망감이 앞섭니다. 여자의 사정과 남자의 사정을 교차로 대비해 보여주는 방식도 조금 진부하기 까지 합니다. 솔직히 저는 이 영화를 보면서 남자가 너무 답답하다는 느낌까지 받더군요. 미래에 이런 남자가 제 딸과 결혼하겠다고 찾아오면 '난 이 결혼 반댈세'라고 말할수 밖에요. 여자친구가 키우는 개가 무서워서 사랑고백을 못한다는 건 좀 심하지 않나 싶습니다. 소심남에 약간 찌질이 기운이 있는 이 남자. 왠일인지 이번에는 용기를

 

 

냅니다. 연인도 아닌 친구도 아닌 사이처럼 지속되는 걸 두고

볼수 없었는지 이번에는 사랑을 고백하기 위해 큰 선물도 마련하지요. 문제는 그 선물의 내용이 바뀌면서

사태는 180도 달라집니다. 토끼 대신 성질이 사나운 미니 당나귀가 들어있을 줄이야......

정말 용기를 내어 고백하려 했던 이 남자의 선의는 하루 아침에 깨져버리고

 

 

핸드폰을 잃어버려 연락도 할수 없는 여자친구에게

단숨에 달려가 사과 하려 하지만 뜻 모를 오해까지 합니다.

너무 진부하지요? 지상 333미터의 도쿄 타워를 홍보 문구에 넣을 때는

저는 이 타워를 중심으로 뭔가 문제의 실마리가 잡히고 해결될 줄 알았는데

그런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여자친구는 도툐 타워 전망대에 있는 카페에서

일을 합니다. 매일 아침 남자친구가 있는 아파트를 큰 망원경으로 살펴봅니다.

어리버리한 남자친구가 출근길에 넘어져서 무릎을 다치는 일도 알수가 있죠.

 

 

도쿄란 거대한 도시의 한 점으로 살아가는 도쿄진들의 사랑엔

첫 마디를 건내기 어려워 하는 그들만의 문화적 코드가 녹아 있습니다.

어디에나 사랑에 서툰 이들은 있는 법이고, 처음부터 사랑에 능숙한 이는 없지만

속내를 들어내 보이는 일 조차도 힘들어 하는 우리(cage) 속의 우리(we)의 모습. 보면서

불편함을 느끼는 건, 오히려 두 주인공의 모습 속에서 예전 제 모습을 봐서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영화의 전개는 전체적으로 참 밋밋합니다. 이야기 구조도 그리 탄탄하지 못하고

'공각기동대'를 마케팅을 위해 팔아먹은 영화같다는 느낌도 지울수 없지요.

단 캐릭터 작업은 인정할 만 합니다. 미니 당나귀의 모습은 엽기적이면서도 두 사람의

사랑을 연결하는 독특한 큐피드의 모습을 하고 있지요.

 

 

진부한 사랑이야기가 지겹다고 하면서도 중독적으로 그 사랑 이야기를

들으려 하는 우리들의 모습이 있습니다. 시대가 변해도, 연애의 문법이 그리 바뀔수 없습니다.

상처받기 전에 먼저 애매한 관계를 깨뜨리려는 여 주인공과, 이번만큼은 고백을 해야겠다고

마음먹는 두 사람. 그 사랑의 엇갈림과 기다림, 혼돈스러움은 예전 에쿠니 가오리의

<사랑과 열정사이>에서 보여준 두 사람의 시선과 동일합니다.

영화가 왜 이렇게 익숙한가 했더니 소설의 문법을 그대로 따랐더군요.

 

 

수채화 풍으로 그려낸 인물들의 모습이 좋았습니다.

물빛 머금은 투명한 느낌의 그림들, 그 속에서 여전히 불투명의 상태로

용해되지 않은 채, 응어리져 있는 사람들의 본심. 소통불가의 상황

두 편의 이야기를 결합해 본편으로 구성한 애니메이션 답게

두 이야기는 서로의 이음새를 연결하고 간극을 매꾸며 사랑의 진정성과

불가능성을 이기는 수채화풍의 방법론을 늘어놓습니다.

 

 

우유부단한 남자와 실수 투성이의 여자

그 둘의 사랑은 결국 어떻게 될까요? 결말에 대한 유추는 결국

우리 속에 있는 각자의 경험의 몫으로 모자이크된 풍경으로 남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이를 만나면 꼭 붓글씨를 함께 배우고 싶다는 생각을

한적이 있습니다. 좀 답답하지 않겠나 하는 말을 하는 분도 있지만, 이 서도의 법을

따르다 보면 사랑과 관계에 대한 좋은 답을 얻을 수 있을것 같아 그렇습니다.

 

한 획의 실수를 다음 획으로 감싸고 보완하고, 한 행의 결함을 이어지는 행의 배려로

용인하고 수정하는 이 어울림의 미학이 '관계중독"과 해결불능의 시대에 대한

답이 되리라 믿는 까닭입니다. 다사다난했던 한해.....란 표현을 올 해도 사용하게 되겠지요?

여러분의 삶은 또 얼마나 다사다난함으로 가득하게 될까요. 그때에도 결국

우리를 희망으로 이끄는 건, 소망과 믿음, 배려와 감싸안음이 될것입니다.

 

사랑과 고백에 서툰 저 예쁜 도쿄진들의 머리 위에,

하얀 눈이 내리게 되겠지요. 철근 콘크리트로 장식된 무기질의 도시 위에,

따스한 사랑의 눈이 내리길 그저 바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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