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1-영혼을 어루만지는 주먹밥(?)
난 영화에 등장하는 음식에 관심이 많다. 이전에도 밝혔듯, 영화을 본 후 영화의 모티브가 되거나 자주 등장하는 음식을 꼭 먹는 버릇이 있다. 이것은 영화를 오랜동안 기억하기 위한 내 나름대로의 방식이다.
영화 <첨밀밀>을 보고 나선 만두가 한없이 그리웠고, <스위니 토드>를 보고 나선 잉글리쉬 고기파이를 먹고 싶었다. <그린 파파야 향기>를 보고 나선 말갛게 우려낸 고기 육수에 말은 쌀국수를 먹었다. 내 기억 속엔 음식과 관련된 영화들이 참 많다. <영웅본색>에서 주윤발이 발을 다친 후 먹던 길거리표(?) 도시락이 너무 먹고 싶어, 홍콩 여행에서 시도한 첫번째 미션이 그 도시락집을 찾는 거였다.
오늘 소개할 <카모메 식당>에선 어떤 음식이 나올까? 바로 오니기리, 주먹밥이다. 혼자서 짐을 꾸려 가볍게 여행을 갈때, 종종 만들어 먹곤 하는 주먹밥. 일본인들의 소울푸드라고 주인공이 소개하는 주먹밥이 매우 먹음직하다.
많은 분들에게 생소한 한편의 영화가 있다. 고인이 된 일본 감독 이타미 주조가 만든 <담포포>란 작품이다 (한국에선 상영을 안했다 영화광들 사이에서 문화학교에서 자주 상영했던 영화다) 이 영화는 라면에 대해 다룬 영화 인데, 영화 속 주먹밥을 보니 <담포포>속 라면국물과 함께 먹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영화의 배경은 핀랜드다. 북유럽의 천국, 세계 최고의 사회복지와 삶의 조건이 보장된 나라다. 주인공 사치에는 <카모메 식당>을 운영하는 주인이다. 식당을 연 계기는 확실치 않다. 중요한 것은 그녀는 핀랜드에서 본 뚱뚱한 갈매기가 특이했던지 식당 이름을 카모메(갈매기)식당이라고 지었다.
손님이 들어오지 않아도, 조바심을 내지 않는다.
천성적으로 여유가 많은 사람일까? 사치에는 언젠가는 사람들이
식당에 가득하리란 생각을 하며, 처음 식당을 찾아온 일본 만화광인 청년에게
무료로 커피를 내어준다.
첫 만남에 토미는 사치에에게 <독수리오형제>의 노래 가사를
아느냐고 물어본다. 물론 앞 부분만 희미하게 기억하는 그녀. 그녀는 거리를
걸을때도, 서점에 가서도 가사를 기억하려 하지만 여전히 떠오르지 않는다.
서점에서 우연히 만난 다른 여인, 미도리에서 가사를 물어보는 사치에
놀랍게도 미도리는 그녀에게 노래를 알려준다.
"위대한 하얀 날개의 독수리 오형제, 하얀 날개의 힘으로 힘차게 날아올라라
하늘을 날아라. 하나뿐인 지구를 위하여 독수리 오형제"
우연한 계기로 만나 사치에의 집에 머물게 된 미도리는
그녀와 함께 식당을 꾸려간다. 점점 그녀의 식당에는 사람들이 몰려든다.
갓 구워낸 계피롤, 시나몬빵의 향기가 너무 좋았던 탓이다. 영화 전반에 걸친 호흡이랄까
속도는 매우 느리고 유연하다. 사람들은 핀란드에 대한 환상들이 많나 보다.
사실 나만 해도, 가장 닮고 싶은 국가가 바로 이 나라니까.
그런데 이 영화는 바로 이런 핀란드에도 여전히 슬픔은 존재하고
아프고 상처받은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음을 각인시킨다.
"야 별거 아니잖아.....여기도 똑같잖아" 류의 냉소적인 시선은 아니다.
오히려 아침마다 연어를 즐겨먹는 다는 핀란드인들의 식성과 일본인의 식성이
닮았다며, 음식을 통해, 손님들의 사연을 듣고 치유한다.
결국 그녀는 여자 독수리 오형제의 일원인 셈이다.
요리는 잘 하지만 커피 맛 만큼은 썩 뛰어나지 않았는지
어느 날 식당을 물끄러미 쳐다보다 들어온 손님은 그녀를 직접 부엌으로 데려가
최고의 커피를 끓여내는 방법을 알려준다. 그라인드 커피를 한잔씩 내며
갈은 원두에 손을 넣고 <코피루왁>이라고 말하란다.
그러면 "누군가 당신만을 위해 끓여준 커피의 향처럼 강렬한 맛이 난다"며 말이다.
말이 나온김에 그 유명하다는 코피 루왁이란 커피에 대해 한마디
이바구를 떨고 가야겠다. 코피 루왁이란 세계 최고의 명품 커피는 영화에 종종 등장한다.
<버킷 리스트>란 영화에서 잭 니콜슨 아저씨가 이 커피향만 맡으면 난리를 피우던 모습이 떠오른다.
인도네시아 말로 커피를 뜻하는 코피와 야생 사향고양이, 루왁을 합친 말이다.
이 고양이는 커피열매를 즐겨 먹는데, 열매가 속에서 소화가 안되고
똥으로 나오는거다. 코피루왁은 바로 고양이 똥커피다. 위액을 통해 커피열매에
화학작용을 하는지 향이 강렬하다. 동경에서 딱 한번 마셔봤는데,
한잔에 4만원 정도 한다. 당시 커피에 대해 지식이 없을 때라,
그저 다른 음식 2번을 더 먹을 수 있는 돈을 날렸다는 생각만 했었다.
어찌되었든 길 지나가던 손님에게 최고의 커피를 끓이는 방법을
배운 사치에, 이후 식당엔 계피롤 빵과 함께 커피를 찾는 손님들이 점점 늘어난다.
재미있는 건, 영화 속에 주인공이 매일 수영장에서 유영하는 모습이 나오는데
초기 손님이 없을 때는 혼자서 수영을 하더니 손님이 늘면서
수영장에 사람의 숫자가 늘어나는 거다.
이 영화의 감독 오기가미 나오코는 삶의 속도에서
배제된 인간의 모습, 그 속에서 상처받은 사람을 따스한 시선으로 쳐다본다.
영화 후반에 공항에서 짐을 잃어버렸다며 식당에 들어오는 마사코도 그렇고,
마사코는 저번 소개한 <안경>에서 팥빙수를 만들던 할머니다.
잔잔하게 사람을 껴안는 영화, 그러나 그 영화 속 인물들의
지친 영혼을 달래주는 건 바로 일본식 주먹밥이다.
왜냐하면 주먹밥은 일본인의 소울푸드이기 때문이다.
영혼을 달래주는 음식, 소울푸드......
여러분의 소울푸드는 어떤 것이 있나. 영혼을 위무하며 자신의 인생에
특별한 의미를 주었던 그런 음식이 있다면 기억해보라. 나에겐 어떤 음식이 있을까?
12년전 오디션을 본적이 있다. 떨어진 후 우연하게
허름한 식당에 들어가 이북식 만두를 먹었는데, 그 맛이 아직까지 기억난다.
음식도 어떤 일면에선 미술품 수집과 다르지 않은 것 같다.
나는 그림을 살때, 그 그림이 내게 주는 추억의 대가를 치룬다고 표현한다.
음식도 그렇다. 분명 기억을 되집어가면, 삶의 실타래가
음식과 결합되며, 따스하게 풀렸거나, 위로를 받은 적이 있을거다.
지치고 힘들 때, 그런 음식을 찾아 먹을 수 있는 것도
작은 지혜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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