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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드레스메이커-패션에 숨겨진 추한 인간의 본질

패션 큐레이터 2016. 1. 27. 17:07





어제 신촌 CGV 아트레온에서 영화 <드레스메이커>의 시네마 토크를 마쳤다. 샤넬과 디오르, 생 로랑에 이르기까지 최근들어 패션을 소재로 한 세미다큐에서 극영화까지 다양한 영역의 작품들이 극장에 올랐다. 그때마다 매번 시네마 토크를 통해 패션에 담긴 의미의 층위들을 관객들과 나누었다. 하지만 이번 영화는 유독 만만치가 않았다. 1950년대 오트쿠튀르의 황금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말 그대로 옷은 관객들의 시선을 끄는 요소로만 존재하는 게 아니었다. 이야기를 풀어가는 과정 면면에 옷이라는 거대한 은유가 발화하는 인간의 모순, 인간사회 내부의 비가시적인 폭력, 편견, 무지 등 다양한 면을 만날 때마다 몸서리 쳤다. 


그래서 소설을 읽었다. 원작이 된 로잘리 햄의 동명소설 <드레스 메이커>는 영화와는 달리 더 풍성한 패션세계에 대한 묘사와 인물 면면의 소개에 많은 지면을 할여했다. 극 제작의 초기 소설가가 직접 영화의 각색을 맡았다가 감독인 조슬린 무어하우스가 다시 각색을 한 데는 이유가 있겠다 싶다. 소설 텍스트와 영상은 엄연히 다른 세계이며 2시간이란 짧은 시간동안 각 인간들의 특색과 욕망, 은폐된 동기를 드러내야 하기에, 큰 줄기만 살리고 많은 부분을 잘라냈다. 그래서 저 절제된 느낌도 든다. 원작 소설은 정말 정교한 패션의 묘사로 가득해서, 패션을 좋아하는 나 조차도 조금 지칠 정도였다. 


어느 사회나, 집단과 개인의 문제, 특히 상대에 대해 너무나 잘 알게 될 수 밖에 없는 소집단의 경우, 이 안에서 펼쳐지는 편협함과 편견, 무지, 이 모든 것들이 결합해 만들어내는 희생양들, 사실 이 영화와 소설은 이런 문제를 다루는 것 같다. 1950년대의 패션의 황금시대는 그들의 무지가 '너무나 찬연하고 화려하다'는 것을 은유하는 것 밖엔 안될 정도로. 여주인공 틸리가 파리에서 마담 비오네에게 재단을 배웠다고 나온다. 관능적으로 여자들의 몸을 감싸는 정교한 재단으로 만든 극 중의 옷들은 1950년대 디올과 발렌시아가, 발맹 등의 컬렉션을 연구하면서 꼼꼼하게 만들어졌다. 영화 의상을 맡은 마리온 보이스는 <미스 피셔 살인 미스터리> 시리즈 등으로 인기가 높다. 의복의 역사적 고증을 잘 해내는 디자이너다. 


패션이 그저 한 시대를 풍미한 디자이너들의 사물로 남지 않고 인간 사회를 반추할 수 있게 하는 거울로 등장하는 것. 한 벌의 옷이 그만큼 문화적 레퍼런스와 더불어 인간의 심리적 불안과 다양한 스펙트럼의 감정을 담아내는 그릇임을 이 영화는 우리에게 말해준다. 시네마토크를 하느라고 이렇게 공을 들여 책을 읽고 공부해 본 적이 언제인가 싶다. 그만큼 읽고 공부할수록, 소설 속 텍스트의 묘사들을 입 속에서 몽글몽글 녹여갈수록, 그 재미는 더한다. 1950년대가 왜 패션의 황금시대였는지, 오트쿠튀르의 본질과 의미 그 역사들을 짧은 시간을 통해서나마 꼼꼼하게 살펴보았다. 200여명 넘는 관객들과 함께 한 것 같다. 함께 해준 분들에게 고마움을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