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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고의 디바 휘트니 휴스턴을 보내며-찬란한 슬픔의 날

패션 큐레이터 2012. 2. 12. 13:54

 

 

사랑하는 디바, 휘트니 휴스턴의 죽음이 여전히 믿겨지지 않는 오후. 갖고 있던 그녀가 남긴 앨범을 하나씩 듣고 있다. 고등학교 시절, 디제이 김광한 아저씨가 라디오에서 그녀를 처음 소개할 때, '노래를 이렇게 부를 수도 있구나'라고 생각했었다. 노래에 대한 기존의 생각을 바꿨다고 할까. 보컬의 힘이란 이런 것이구나를 어렴풋하게 인지하게 된 것도 그녀의 덕이리라. 2009년 그래미상 수상식에 I didn't know my strength 를 불렀을 때를 떠올렸다. 문자 중심적인 인간도 아니건만, 노래의 제목이 눈길을 끌었다. 세상은 그녀의 장점을 잘 알고 있었다. 그녀의 가창은 일종의 오마주란 형태로 가수를 꿈꾸는 이들의 전형이 되었으니.

 

그녀의 죽음을 목도하고, 가수 머라이어 캐리는 Thanks for gracing the World 라고 썼다. 그레이스, 참 오랜만에 적어보는 단어다. 은혜. 사전으로 은혜란 단어를 찾아보면 별별 뜻이 다 있다는 걸 알게 된다. 노래 속 음을 꾸미는 버금딸림음을 그레이스 노트라고 하고, 채무자의 빚을 탕감할 기회를 연장시켜주는 걸 그레이스 피리어드라고 한다. 휘트니 휴스턴이 부른 노래, 그 음의 알갱이 하나하나가 그녀를 생각하는 지금, 마음 속을 여미는 건, 한곡의 노래를 절창할 때도 혼을 다해 부른 가수의 혼이 버금딸림으로 젖어들기 때문이겠지. 그러니 은혜가 아닐 수 없는 것일거다.

 

노래를 포함 모든 예술장르의 산물이 그렇다. 그냥 스쳐지나 갔던 것들이 특정 순간에, 마음밭에 균열을 내며 스며든다. 그림이, 한 벌의 옷이, 디자인이, 노래가, 작곡가의 삶이 그랬다. 나이를 먹으면 당연히 내 자신의 장점과 단점을 파악할 수 있으리라 믿었고, 누군가를 위한 소중한 사랑 한편은 가슴에 간직하고 살 줄 알았다. 하지만 어디 삶이 그 뜻대로 되던가. 회사가 힘들던 2009년, 그녀가 부른 one moment in time을 참 많이도 들었다. 삶은 항상 상처와 환희, 두 가지 힘이 균형잡힌 대칭을 이루며 우리를 이끈다는 걸, 지금 당장 한쪽에 기울어져 있다손 불평하지 말자고 되뇌었다. 그녀의 노래가 내게 주는 작은 힘이었다. 결국 모든 답은 내 안에 있었다. 내가 풀어야 할 조직과 외부환경의 문제였으니. 예술에는 이렇게 삶과 우리 자신을 동조화시키는 힘이 있다.

 

그녀의 죽음을 둘러싸고도 이런저런 말이 돌것 같긴 하다. 사인이 완벽하게 규정되지 않은 터라 예단하기도 힘들다. 그녀의 노래를 통해 배운 것. 이 세상 모두는 어느 누군가의 적자다라는 말. 자신들은 그저 지금의 삶이, 지식이, 권력이, 행복이 그저 주어진 것인줄 안다. 글빚을 지고, 사랑의 빚을 지고, 관계의 빚을 지고, 행복의 빚을 진다. 우리는 그녀에게 노래의 빚을 졌다. 내 인생의 한 순간을 기다려야겠다. 아니 순간은 오는 것이 아니라, 바로 지금 여기에 있는 것이겠지. 주저흔의 미로를 통과한 후 여전히 생은 그래도 살아볼 만한 것이라며, 내 안의 상처를 바루며 사는 시간. 그래 내 인생의 순간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사랑하는 나의 디바, 휘트니 휴스턴을 보내고 잊는 시간이 녹록치 않겠지만 그래도 버텨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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