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Holic/청바지 클래식

숨그네를 타는 시간-스펠바운드 무용단 공연 리뷰

패션 큐레이터 2011. 10. 8. 16:50

 

 

지난 금요일 호암아트홀에서 이탈리아 스펠바운드

무용단의 두 작품을 봤습니다. <다운쉬프팅>과 <숨>이란 작품입니다.

단적으로 표현한다면, 지금껏 본 작품 중에서 가장 깊은 인상을 심어준 작품입니다.

깊어가는 가을, 계절의 변화양상은 예전과는 호흡이 조금씩 달라진 탓인지, 흐름을 가늠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계절은 인간의 호흡에 영향을 미칩니다. 잔뜩 얼어붙었던 겨우내 긴장을

풀고 연두빛으로 토해내는 봄의 호흡은 날숨은 끊어서 조금씩 여러번, 들숨은

길게 가져가, 몸의 쌓인 것들을 토해내고 대기의 기운을 받아들이는데

착목하지요. 그만큼 호흡을 뜻하는 '숨'이란 단어는 각

나라에 따라 다른 의미를 지니기도 합니다.

 

 

인도에선 이 '호흡'을 나파스라고 부르는데

수피교에서는 호흡이란 명사 자체 내부에, 자유란 뜻이

내재되어 있습니다. 아랍 문화권에서는 대체로 인간이 태어날 때

들이마시는 역동적인 힘을 의미하지요. 어제 본 두 개의 작품 <다운 쉬프팅>과

<숨>은 다양한 호흡의 양상을 육체의 언어를 통해 빚어내려는 시도입니다.

 

 

다운 쉬프팅이란 개인이 강박적인 사회 구조 속에서

스트레스와 심리적 억압으로 부터 벗어나기 위해 탈출하려는

시도를 뜻하는 말입니다. 최근 들어 기업 조직에서 금요일날은 정장을 입지

않는 체계가 느는 것도 이런 일환의 변주일 뿐입니다. 그만큼 몸에 걸치는 다양한 정체성을

벗어버리고 순수하게 원초적이고 본질적인 몸의 움직임 만으로 작품을 구성합니다.

미술로 치면 순수주의, 퓨리즘의 영역에 가깝습니다. 즉 의상이나 무대

고전적인 스타일의 조명, 모든 것을 거절하고 오로지 몸의 움직임

에 주목하고, 그것이 빚어내는 침묵의 언어에 주목합니다.

 

 

9 명의 무용수가 번갈아 극 안에 5개의 작은 소품을

연출합니다. 그 세계는 자체로 무중력의 세계라 할 수 있습니다.

마치 연체동물처럼 흐느적거리지만, 답답하지 않은 떠다니는 발의 움직임은

중력에 대한 인간의 저항이란 무용의 본원적 기본기에 충실하면서도, 대지에 무게를

지탱하며 서 있으라 폐허가 될 수 밖에 없는 발에 쉼과 부유를 줌으로써

오종오종 무대 위를 걸어가는 무용수에게 자유를 부여합니다.  

 

 

두 번째로 진행된 <숨>은 3개의 작은 테이블이

놓여 있는데, 그 사이에 무용수들이 병치되어 있습니다.

3이란 숫자는 여기에서 중요한 의미를 띱니다. 생의 단계를 뜻하지요.

적요한 어미의 자궁 속에서 미만한 어둠의 세계속에 격절된 채 놓여진 아이가

세상에 나와 처음으로 맞닿드리는 호흡의 세계를 표현하는 도구입니다. 작품이 시작되면

가슴 속 깊숙이 울리는 북 소리와 함께 어우러진 첼로의 현이 어우러지고, 그 속에서

자신들을 가둔 3 개의 테이블에서 함께 발의 호흡을 맞추는 무용수들이

보입니다. 서로의 발은 엉키거나 어루만지며 농밀한 순간을

기억해내려는 태내의 아이를 연상케 합니다.

 

 

무용에 대해 글을 쓰는 게 쉽지는 않습니다. 몸의 언어이기에

무용수의 몸에서 발산되는 기운을 느껴야 하고 그것이 선험적으로 내게

와닿을 때 비로소 의미가 완성되는 세계이기에 그렇지요. 하지만 지난 3년 여간

열심히 무용공연들을 따라다니며 조금씩 그 언어를 익혀가는 시간이 즐겁습니다. 시대가

악할 수록, 타자에 대한 통제가 강화되고, 삶의 근거가 퍽퍽해질수록 인간의 호흡은 거칠어질 수

밖에 없습니다. 정치적 불신이 극에 달한 사회, 타인에 대한 신뢰는 나락으로 떨어지고

만인 대 만인의 투쟁으로 변모하는 사회에서, 인간이 가져야 할 호흡의 수준은

어떤 것일까요? 작품 <숨>은 생의 단계별 호흡의 수준을 보여주며

우리에게 말을 건내는 것 같습니다. 요람 속 세계를 넘어

 

사회 속에서 사람들과 엉키며 내뱉은 호흡은 단순히 생명을

연장하는 호흡을 넘어 사회에 대한 책임과 부채의식, 곧 영혼의 짐임을

관객들에게 기억시킨다는 것이죠. 그러나 이 짐을 짊어져야 하는 이들의 운명이

마냥 처참하지 만은 않은 것은, 단순히 어두운 그림자 속에서 상실의 슬픈 기억들을 쓸어담기

보다 어울려 손을 잡고 연대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줄 수 있는 육체의 소유자로서의

인간에 대한 희망을 말하기 때문입니다. 마지막 장면에서 조명으로 만든

어찌보면 빛이 조형해놓은 사각형의 틀, 그 경계선을 따라 발을

움직이는 자들의 세계는 위험해 보이지만, '마침내'

그 세계의 속과 외부를 넘어 인간의 손을

잡는 자들의 표정은 밝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