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Holic/청바지 클래식

사랑에 미치다-신영옥의 오페라<루치아>리뷰

패션 큐레이터 2010. 4. 24. 19:10

 

S#1 오페라로 만나는 로미오와 줄리엣

 

오페라 <루치아>를 봤습니다. 세계적인 소프라노 신영옥이 주인공 루치아를 맡았습니다. 루치아는 루씨의 이탈리아식 이름이죠. 작곡가 도니제티는 영국 스코틀랜드를 배경으로 한 <람메르무어의 루치아>을 오페라로 만들었습니다. 원래 이야기 속 배경은 18세기 초 복잡한 정치적 환경을 밑그림으로 하고 있죠. 람메르 무어는 루치아가 살고 있는 장원의 이름입니다. 그녀의 오빠 엔리코가 숙적이었던 에드가르도의 집안을 분쟁을 통해 강탈한 영지가 바로 람메르무어지요. 오페라 <루치아>는 정치적 혼란 속에서 가족과 가문을 위해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가족들이 선택한 남자와의 결혼을 강요당한 한 여인의 이야기입니다. 괴로움을 견디다 못해 남편을 죽이고 광기에 휩싸인채 자기 스스로 자결하게 되는 '슬픈' 사랑 이야기입니다.

 

연출가 마리오 코라디는 <루치아>1910 년경의 영국의 상류사회를 배경으로 각색해 냅니다. 겉으론 점잖지만 속으로는 갖가지 상상을 초월하는 정욕과 치정으로 얽혀있던 영국의 구 귀족과 상류사회를 배경으로 깔아둠으로써, 극의 이야기를 더욱 살려냅니다. 시간은 흘렀어도 기본적인 인간과 인간의 관계에는 변화가 없더라는 연출자만의 시각이 녹아있는 것이겠지요. 놀라운 것은 무대가 열리면 녹색의 시원한 장원이 보이고 말을 탄 기수가 등장하는가 하면 사냥개를 대동한 관리인들이 등장한다는 점입니다. 승마를 하거나 혹은 사냥터에 갈 때는 헌팅캡이란 걸 썼지요. 노래하는 남자의 모자와 관리인의 모자가 다른이유 아시겠죠?

 

 

신영옥과 슬픈 사랑의 아리아를 부르는 이 남자. 바로 에드가르도 입니다. 원작 속 에드가르도는 땅 많고 권세있는 가문의 외동아들이었죠. 그러나 루치아의 오빠, 한 마디로 탐욕으로 똘똘뭉친 엔리코에 의해 모든 걸 잃는 신세가 되고 부모또한 이로 인해 죽음에 이릅니다. 철천지 원수가 되는 것이죠. 오페라에는 루치아와 에드가르도가 처음 만나게 되는 장면이 빠져 있습니다. 어머니의 무덤가를 걷다가 시커먼 들소를 만납니다(좀 인위적이죠?)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탕' 한방의 총소리로 소를 죽이고 그녀를 구한 남자가 바로 에드가르도입니다. 이렇게 멋진 남자 또 없습니다. 한방에 훅간 우리의 루치아 누나, 에드가르도와 사랑에 빠집니다.

 

 

그런데 이게 왠일입니까. 모든 인간관계를 탐욕과 돈, 정치적 배경을 얻기 위한 토대 정도로 하는, 오빠 엔리코가 그녀를 찾아와 설득합니다. 왕이 바뀌었고 현재의 질서가 무너질 지경이다. 나와 너, 우리집안을 살릴 수 있는 길은 왕과 끈이 닿는 귀족 아르투로(영어식 아서)와 결혼하는 것 밖에 없다고요. 에드가르도는 이미 분수대 앞에서 그녀에게 사랑을 고백하며 반지를 끼워줍니다. 비록 지금은 집안의 반대로 결혼할 수 없지만, 후일을 기약하자는 거겠죠. 그리고 프랑스로 떠납니다. 그러나 그가 보내온 모든 편지를 엔리코가 뺐습니다. 이도 모자라 거짓편지까지 써서 성직자인 라이몬드를 통해 그녀에게 전달하죠. 그 내용이야 뭐 뻔한거 아니겠습니까? 연인들을 갈라놓는 가장 전형적인 수법. '이미 다른 사람이 생겼다' 뭐 이거지요. 상심에 빠진 루치아를 향해 엔리코는 갖은 협잡과 압력을 행사합니다. 결국 아르투로와 결혼한 그녀. 이때 에드가르도가 등장합니다. '지금껏 당신을 사랑해온 그 시간들을 저주한다'며 눈물의 아리아를 부르지요. 괴로움의 극에 달한 루치아의 비참한 심정이 목소리의 떨림에 담겨 무대를 전율로 사로잡습니다.

 

 

장원을 배경으로 융숭한 결혼파티가 열리는 날, 루치아는 사랑하는 이를 잊지 못한 채, 남편 아르투로를 죽입니다. 미쳐 돌아버린 그녀, 이제 무대를 향해 내려옵니다. 영국귀족사회를 배경으로 한 오페라 답게 옷차림들이 하나하나 볼 만 했습니다. 물론 정확한 고증이 이뤄진건 아니었지만요. 1910-20년대 유행한 클로슈 모자를 쓰고 있는 여자들이 눈에 들어오더군요. 파티가 무르익을 때, 드디어 광기에 사로잡힌 '루치아'가 등장합니다.

 

 

탐스런 붉은 장미는 가증과 위선으로 가득했던 자신의 사랑을 정리한 핏빛 흔적의 은유입니다. 장미를 한 아름안고 들어오는 그녀. 신영옥의 아름다운 연기가 펼쳐집니다. 오페라 역사상 리골레토 4중창과 함께 최고의 중창이라 불리는 부분이 연주됩니다. 각자 자신의 내면을 노래로 표현하고 합창단은 장엄하게 마무리를 지어줍니다. 목소리가 하나로 수렴될 때의 그 끈적끈적한 강렬함은 설명하기 어렵군요.

 

 

이제 신영옥의 본격적인 무대 훔치기 작업이 시작됩니다. 흔히 극 속에서 배우가 너무 연기를 잘 할 때, 드라마보다 배우가 눈에 들어올 때, 영어로는 Steal the Show란 표현을 쓰죠, 그만큼 무대 자체를 흔들고 강탈했다는 뜻일 겝니다. 솔직하게 고백하자면, 신영옥의 벨칸도 창법으로 부르는 광란의 아리아는 섬세하고 아름다와서 극의 실제 풍경과는 '저 만치' 떨어져 있습니다. 목소리의 절대적 아름다움과 실제 현상의 거리감. 바로 루치아의 비극성이 탄생하는 이유지요. 너무나 아름다와서 눈물이 나는 겁니다.

 

 

솔직히 신영옥 선생님을 매체를 통해서만 봤지, 오페라를 통해 본 건 이번이 처음이었습니다. 그녀가 가진 명성이 괜한 것이 아니었음을 확실하게 배웁니다. 절제된 목소리, 무대의 대기를 메우는 사랑의 절규는 아름다운 목소리의 선율과 떨림을 통해, 미세한 감정의 파장과 균열을 일으킵니다. 마치 나비의 작은 날개짓처럼 말이죠. 날개짓으로 인해 후방에 있는 우리 모두에겐 큰 파도가 일듯, 그녀의 아리아는 광기의 시대, 폭력과 전쟁으로 점절된 영국 사회에서, 사랑의 자기결정권을 지키려는 여인의 단아한 결단을 보여줍니다.

 

 

한 마디로 놀랍습니다. 신영옥은 귀신입니다. 정말이지. 그녀의 아리아는 광기의 시대를 고발하는 '모든것을 빼앗긴'자들의 절규입니다. 오페라를 볼 때마다 저는 항상 한국의 가수들이 노래의 수준은 높지만, 왠지 양식화된 연기를 보여주는 면모로 인해, 거부감이 들었답니다. 오페라를 전공하는 친구들을 만나보면, 스타니슬랍스키도 공부하고, 감정의 기억이나 배우의 행동수준에 대해 공부를 했다고 하는데, 정작 공연 무대에서 보여주는 모습은 이상하리 만치 '쪼'가 있는 연기들이 대부분이었지요. 기계적인 연기란 뜻입니다. 혼이 담기지 않은 행동이란 말이지요.

 

 

물론 오페라는 목소리로 하는 연기라고 한다지만, 극이란 형태는 목소리와 더불어 행동의 일치가 이뤄질때 관객의 교감을 이뤄냅니다. 그런 점에서 한국의 오페라는 이 부분의 취약점을 매번 드러냈죠. 그러나 신영옥은 다릅니다. 그녀의 연기는 철저하게 캐릭터를 몸으로 해석한 결과를 보여줍니다. 강력합니다. 그러나 절제되어 있습니다. 놀랍기도 하고 그녀에게 감사합니다. 한국이 이런 소프라노를 갖고 있다는 점이 말이지요. 이런 분과 동시대를 살 수 있다는 게 행복하네요.

 

 

 

에드가르도는 엔리코에게 결투를 신청하고 자신의 부모님이 묻힌 무덤가에서 그를 기다립니다. 그 와중에 그녀의 소식을 듣게 되죠. 이제 또 다른 절망을 향해 갈 시간, 이제 사랑하는 이가 죽은 세상은, 에드가르도에겐 의미가 없습니다. 이제 그는 절규합니다. 그녀를 따라 권총자결하는 에드가르도. 그를 지켰던 건 다름아닌 사랑이었죠. 에드가르도는 권력과 돈, 모든 세상적 관점에서 성공을 의미하는 것들을 박탈당한 '대지의 버림받은 자'입니다. 17세기 말에서 18세기 초, 낭만주의의 바람이 불던 그때를 문학사가들은 '광기로 인한 실성'이 일상에 퍼져있던 시대라고 하지요. 그때나 지금이나 가진자들은 배부르고, 없는 자들은 작은 '사랑의 희망'마져 빼앗겨야 하나 봅니다. 그의 눈물에서, 씁쓸한 이 시대의 광기를 발견하게 되는 건, 마음 아픈 일입니다.

 

이 남자의 마지막 절규를 들어보세요. 루치아노 파파로티의 목소리로 올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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