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Holic/청바지 클래식

그녀의 발이 일그러진 이유-강수진의 '발레갈라' 리뷰

패션 큐레이터 2010. 4. 10. 07:00

 

 

발레리나 강수진의 특별한 외출

 

예술의 전당 오페라 극장으로 향하는 길, 연두빛 봄 기운이 완연한 거리를 걸었다. 발걸음이 가벼운건 눈이 빠지게 기다렸던 한 편의 공연 때문이다. 발레리나 강수진이 2년만에 한국으로 돌아와 보여줄 레퍼토리 부터가 심상치 않다. 고전발레 작품만 득세해온 지난 한국의 무용계를 생각해 볼때, 그녀가 보여줄 네오 클래식 작품들, 흔히 모던 발레작품을 눈에 가득 담고 싶었다.

 

예전 인터넷에 한국인 최초로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의 수석 무용수가 된 강수진의 발 사진이 올랐다. 무대 위 화려한 조명 속, 발끝으로 서는 균형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발레리나의 발은 '환상을 깨려는 듯' 관절 마디마디가 일그러지고 부어있는 형상이었다. 평생을 휴가 한번 제대로 즐기지 못한 채, 연습에 매진한 결과의 산물이었다. 무용수의 발은 혹독한 압력을 견뎌야 한다. 중력의 힘에 저항하는 인간의 욕망이 만든 발레. 발끝으로 서는 쉬르아 포앵은 그렇게 탄생한다. 우아한 무용수의 몸이 관객들의 망막에 맺힐 때, 그녀의 발은 갖은 고통을 감내해야만 한다.

 

 

발레 갈라, 쏠리고 들끓다

오랜 세월 발레를 비롯 무용 공연을 빼놓지 않고 봐왔지만, 한국 무용계의 큰 단점은 역시 레퍼토리의 부재다. 고전작품에 매몰된 나머지, 동시대적 고뇌와 도전, 현대성을 담은 작품을 선보이지 못했다. 이번 그녀의 발레 갈라에서 출연한 4편의 소품 및 다른 작품들 모두가 네오 클래식 계열의 모던 발레 작품들이다. 유럽에서 발원된 드라마 발레의 산실이자 존 노이마이어, 지리 킬리언, 윌리엄 포사이드 등 세계적인 안무가를 잉태한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에서, 강수진의 위상은 기대 이상이었다. 그녀는 작품해석과 미세한 디테일 모두를 자신의 것으로 소화할 수 있는 무용수다.

 

 

관객들의 반응은 뜨겁다. 한 마디로 충격이다. 극단적 우아함과 강건한 신체미를 바탕으로 했던 기존의 무용개념에, 현대적 특성이 아로새겨진 '극적 즐거움'과 '유모어'가 돋보인 작품들이 무대위에 하나씩 올라왔다. <에피>란 작품에선 상체를 벗은 남성 무용수의 뒷 모습에서 '육체를 통해 소통하는' 무용의 본질적 힘이 느껴졌다. 무용수가 토해내는 괴성과 더불어 격란 리듬의 팝송과 느린 자장가의 리듬을 결합, 독특한 작품을 완성했다. 두 남자의 우정을 그린 <마이웨이>도 인상깊었다. 발레하면 고전 클래식 음악이 배경으로 삽입되는 것이란 기대와 달리, 프랭크 시나트라의 <마이웨이>가 무대위에 울려퍼진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 작품이 유독 기억에 남았다. 평론가들은 이 작품을 '두 남자의 우정'을 다룬 것이라고 해석한다. 내 관점에선 두 남자가 아닌 한 남자의 내면과 외면이 갈라져서 '하나로 화해될 때'를 표현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안무가 에릭 고티에의 작품인 <발레 101>은 작품 제목처럼 발레의 기초동작인 101가지를 다양하게 변주, 웃음을 주는 독특한 작품이었다. 영어표현에서도 101은 지식의 입문과정, 혹은 원론수업을 뜻한다. 탄탄한 기초를 위해 수천번의 숙련 반복을 지속하는 발레동작들, 그 동작들이 변주되며 잉태하는 신체의 무브번트엔 무한한 변화의 가능성이 숨어 있다. 무용수의 몸은 가역성의 세계 그 자체다. 국내 초연작인 라흐마니노프의 <스위트 NO2>는 서호주 발레단과 함께 출연,  모리스 베자르, 피나 바우쉬와 더불어 유럽의 3대 천재 안무가로 불리는 우베 슐츠의 작품이다. 두 명의 피아니스트가 무대에서 함께 연주하는 왈츠에 맞춰 춤을 추는 집단무엔 역동성과 단순히 힘만으론 토해내기 어려운 감성이 스며들어 있다. 특히 칸딘스키의 '컴퍼지션' 시리즈 그림을 후면 배경에 사용한 점이 눈에 와 닿았다. 무대 위의 무용수들은 마치 캔버스 위에 점을 찍듯, 그림 속 점과 선, 면의 움직임을 체화해냈다. 칸딘스키의 "점은 침묵과 언어를 잇는 연결'이라는 말처럼, 무용수의 몸은 침묵 속에서 소통의 언어를 발화한다. 강력한 힘이 느껴졌다.

 

강수진, 이슬이 되어 승화하다

 

강수진이 연기한 <Vapour Plains>는 제목처럼 응결된 이슬이 되어 날아가는 듯 했다. 바닥과 천장을 연결하는 백색 천은 구름을 상징하는 듯 했고, 강수진은 한번도 땅에 발을 닿지 않은채 남자 무용수에게 들려, 공중에 뜬 상태로 연기했다. 몸이 응결된 사물의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매개체로 변화하는 순간이었다. 지리 킬리언 안무의 <구름>에서도 강수진은 탈각한 육체를 가진 무용수로 변신한다.

 

 

<까멜리아 레이디에서 강수진의 파드되>

 

공연의 마지막을 장식한 <까멜리아 레이디>는 강수진의 부드럽고 섬세한 내면을 그대로 보여주는 작품이다. 이번 발레 갈라는 43살의 무용수가 가진 모든 걸 토해낸 무대다. 아름다움은 나이를 먹지 않는다는 건 그녀를 두고 한 말임을 인정한다. 세월의 흐름과 더불어 작품을 자신의 것으로 소화하고 섬세하게 조율하는 지혜의 몫이 커진 탓이리라. 함께 한 남성 무용수들과의 호흡은 경이에 가깝다. 타인의 숨결이 내 것이 되지 않는 한 불가능한 문제다. 일그러진 그녀의 발이 떠올리고선, 눈물이 맺혔다. 한마디로 놀랍다. 그리고 고맙다. 대한민국에 이런 발레리나가 있다는 것이. 그녀에게 경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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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달은 공연 리뷰 쓰느라 다 지나가는 듯 합니다. 그만큼 볼 공연들이 많다는 이야기이기도 하고, 저로서는 매일 글을 쓰면서 지금까지 쏟아내기만 하다가 공연들을 통해 채워나갈 수 있는 부분이 있으니, 큰 유혹이 되는 것도 사실입니다. 소프라노 신영옥씨가 나오는 오페라 <루치아>와 연출가 한태숙 선생님의 <대학살의 신> 테네시 윌리엄스의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국립 발레단의 <코펠리아>의 리뷰도 곧 올라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