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Holic/영화에 홀리다

삶은 국수다(?)-영화 <누들>을 보고나서

패션 큐레이터 2008. 8. 15. 02:21

 

 

S#1-Life is Noodle, 삶은 국수다

 

나는 개인적으로 국수를 무척 좋아한다. 국수를 좋아하는 건 집안 내력이다.

나는 냉/온면 다 즐기지만, 특히 좋아하는 건 중국식 튀김국수와 특면을 즐겨 먹는다.

뉴질랜드에 있던 시절, 친구들이 놀러오면, 딱히 요리가 떠오르지 않을때, (중국식 면)이 없어도

한국라면을 이용해, 냉장고에 넣어둔 브로콜리와 갈은 고기, 세이프웨이 슈퍼에 가면 참 싸게 구입하던

게맛살과 껍질 벗긴 새우(카나페용)를 이용해 볶음 국수를 자주 만들어 주었다.

 

처음에 광동식 굴소스를 알기 전이라, 스테이크 소스에

케첩과 벌꿀을 약간 섞어서 볶아보았는데 우연하게도 맛이 괜찮았다.

 

영화를 보고나서 영화에 등장하는 요리를 빼먹지 않고 먹는 습관이 있다. 나는 음식을 소재로 한 영화를 좋아하고, 음식이 가진 상징성을 이용한 영화들을 즐겨본 편이다.

 

웨인 왕의 <딤섬>을 보고 나선 홍콩에서 갖은 딤섬을 챙겨 먹다 3킬로가 불었던 적도 있고, 알폰소 아라우 감독의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을 보고 나서 초콜릿 먹기에 빠져들어 치과에 들락날락하기도 했다.

 

이안 감독의 <음식남녀>에선 음식을 통해 화해하는 가족의 모습에 반했고, <바베트의 만찬>이란 영화에선 요리가 바베트가 복권에 당첨된 금액 전액을 교회 내에 갈등하는 사람들을 위해 요리를 만드는 데 사용하는 걸 보면서, 먹는 것이 사람을 치유할 수 있다는 메세지를 익혔다.

 

최근에 본 <쿵푸팬더>에서는 최고의 국수를 마는 방법을 아버지에게 전수 받으려 했던 주인공의 모습을 보면서, 중국식 특면과 하얀 굴짬뽕을 친구와 후루룩 먹기도 했다.

 

이렇게 영화 속 소재로 사용되는 음식들은 주인공과 주변을 엮어주기도 하고 주요한 행동의 모티브를 제공하기도 한다. 물론 내겐 영화를 기억하는 방식 중의 하나다.

 

오늘 본 영화 <누들>은 어떤가? 아쉽게 국수 먹는 장면이 자주 나오는 영화는 아니다. 유럽에 가면 가장 싸게 먹을 수 있는 중국식 볶음 국수가 종이팩에 담겨 한번 나오고, 끝 장면에서 함께 음식을 먹는 장면이 나올 뿐이다.

 

이 영화에는 인생이 얄굿게 꼬인 사람들이 많이 나온다. 전쟁으로 두번이나 남편을 잃어야 했던 스튜어디스 미리, 그녀의 언니는 이혼의 위기에 시달린다. 남편은 자신보다 처제 미리의 말을 더 잘들어서 속을 긁는다(남편은 미리와 함께 항공사 직원이다), 미리의 도우미로 일하던 중국 가정부는 한시간만 아이를 봐달라며 떠나서는 감감 무소식이고, 알고 봤더니 강제출국을 당했다.

 

아이만 덩그라니 남겨 진것이다. 이만하면 상당히 꼬인 셈이다. 국수의 라틴어원이 노두스(Nodus :매듭)에서 온 걸 이해할 만하다. 삶의 매듭이 풀어지지 않은 채, 그들을 괴롭힌다. 엄마를 기다리던 아이는 탁자에 놓인 누들을 후루룩 감쪽같이 해치워 ‘누들’이란 애칭이 생기고, 프로급 젓가락질과 비밀암호 같은 말로 미리 가족의 귀여움을 독차지 한다. 언어를 초월한 교감을 나누며 어느덧 서로에게 특별한 존재가 돼가는 미리와 누들. 마침내 미리는 가정부의 메시지를 추적하며 누들을 위해 베이징으로 떠난다.(모험담까지는 이야기 하지 못하겠다)

 

 

이 영화에서 누들, 국수는 그들의 삶의 타래가 어떻게 풀리고

어떻게 화합하는 지, 그 매개를 상징하는 일종의 사물이다. 여기엔 상처받은 이들의 관계가

회복되고, 장수를 기원하는 동양식 국수의 상징처럼, 새롭게 시작되는 관계가

지속되기를 바라는 희망이 녹아 있는 셈이다.

 

 

사실 영화 누들을 본 이유는 전날 본 영화의 충격이

너무 커서 마음이 계속 찜찜했기 때문이다 (영화 다크나이트를 보고 마음이 불편했다)

스토리 전반을 알고 있었기에 따스한 영화일거라 생각하긴 했지만

예상을 뛰어넘어, 감동과 재미를 선사한 영화이지 싶다.

 

엄마를 찾아 떠난 베이징의 레스토랑, 이름이 이중의 행복이란다.

더블 해피니스......영화가 해피엔딩인건, 국수의 타래가 풀리고 후루룩 삼켜지듯

각자 인물들의 상처가 치유되고, 새로운 길을 찾는 것, 그것이 두겹의 행복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리라.

 

 

오늘 리뷰에서 많은 부분을 스토리에 할당한 것은

영화적 재미를 반감시키지 않는다. 이 영화는 오히려 영화 속 인물들의

감정의 교류나, 섬세하고 미려하게 말려 들어가는 대사들의 치고받음에 있다.

몬트리올 영화제의 심사위원들이 전원일치로 상을 부여한 것은, 꼭 스토리에만 있지 않은 듯 하다

 

여기에 꼬마 주인공의 놀라운 연기까지

의외로 볼거리가 많다. 그리고 대사들이 상당히 웃긴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이

사실은 나 자신을 더욱 사랑하게 되는 계기를 만들기도 한다

이 영화의 가장 중심적인 메세지는 바로 여기에 있지 싶다. 타인을 통해

내 안에 숨겨진 사랑의 코드를 찾는 것. 사랑에 빚지고 사는 일은, 다른 것과 달리

우리를 구속하지 않고, 더욱 해방시킨다는 점, 영화를 보는 내내 머리속에 떠올랐던 생각이다.

 

 

 사실 영화를 보기 전, 하루종일 외근을 다니다

더위를 먹어서인지, 아무것도 먹지 못한 상태였다. 영화를 보고 나서

왜 그렇게도 따스한 차우멘과 기스면이 떠오르던지......

 

Life is Noodle......삶은 국수다.

국수는 삶아 먹어야 한다. (내일 점심은 무조건 삶은 국수인 거다*^^*) 생으로 먹으면 탈이 난다.

국수매듭이 풀려 국물속 시원하게 녹아나듯, 우리 내 생도 장수의 꿈을 꿀수 있도록

후루룩 짭짭 맛나게 국수를 먹고 싶게 한 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