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일화_Elles Ⅱ_부분_2007
'여자에게 피부는 권력이다"
언제였나 티비 광고를 보는데
아주 인상적인 카피가 눈에 띄었습니다. 왕후로 분장한 모델이
도도함과 화려함의 기품을 자랑하며, 자신 앞에 고개를 숙인 수많은 남자들을 향해
하얗게 잡티 하나 없는 피부를 내보입니다. 하긴 피부가 성공과 권력을 위한 지표가 되는
세상이 맞긴 한가 봅니다. 남성/여성에 상관없이 취업 면접을 대비한다고
피부 클리닉에 다니는 사람들이 상당하다고 하네요.
홍일화_Codi-Poisson_캔버스에 유채_100×81cm_2007
오늘 소개할 작가 홍일화는 바로 여성의 미, 그 아름다움의 조건에 대해
회화적인 성찰을 보여준 작품을 그렸습니다. 그림 속 여인의 머리위에 놓여진 수많은
생물체들.....이게 뭘 뜻하는 걸까요? 그림 속 여인의 피부를 보십시요.
안티 에이징과 안티링클, 피부노화를 막아주는 획기적인 물질이 생산되는 생물들입니다.
물고기의 부레에서 부터 임산부의 태반에 이르기까지, 고운 피부를 향한
인간의 집착은 굉장했지요.작가는 증명사진과 패션 사진의 형식을 캔버스위에 빌려
우리 시대 정형화된 성형천국의 모습을 그려냅니다.
홍일화_Codi-Oiseau_캔버스에 유채_100×81cm_2007
홍일화가 그린 엘르(elle) 연작은 패션잡지 엘르의 이미지를
차용하여 패션잡지를 포함한 다양한 미디어가 양산하는 여성의 이상적 이미지를
은유적으로 비판합니다. 지나치게 뚜렷한 골격, 푹 들어간 쇄골, 과장된 메이크업으로 포장된
우리 시대의 여성들의 자화상을 드러내지요.
비한_적자생존 No. 3_흑백 디지털 프린트, 싸이텍_60×51cm_2006
1.5 세대 재미교포인 사진작가 데비한의 작품은
바로 성형천국이 되어버린 한국의 현실에 대해 더욱 강도높은 비판의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아름다움이 권력이기에, 피부가 권력이기에
권력의 하층부로 떨어지지 않기 위해서는 다양한 적자생존 방식을 따라야 합니다.
바로 성형이지요. 피부도 성형하고 눈/코/입 모두 바꾸어야 합니다.
문제는 동양인의 신체구조에 서구미인형의 얼굴을 대입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서구의 기준에 맞추어 비너스의 얼굴에 메스를 들어야 합니다.
데비한_적자생존 No. 10_흑백 디지털 프린트, 싸이텍_60×51cm_2006
최근 피부과를 다니고 있습니다. 종종 병원에서 마주치는 이들을 보면서
나도 한번 '보톡스'를 눈가에 맞으면 어떨가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우리 사회가 '동안(babyface) 신드롬'에 빠지고, 성형을 통한 젊음의 획득이란 화두에
매몰된 이유가 뭘까, 거기엔 아직까지도 재정립하지 못한 '노년기'에 대한 잘못된 이해가 있다는 것입니다.
'노년기'를 곧 인생의 은퇴기, 퇴물, 혹은 모든 자신의 자양분을
사회에 다 토해놓은 상태로 규정하는 작금의 멘탈리티가 너무나도 강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보니 젊음은 여전히 권력이고, 특권이며, 경쟁력이 되는 것이죠.
젊음의 가치를 높이 사는 것은 좋습니다. 단 문제는 노년에 대한 두려움, 우아하게 늙어가는 것에
대한 철학조차도 실종되는 지금의 현실이 무서운 것이죠.
세계적인 메이크업 아티스트 바비 브라운이 쓴 책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아무리 아름다운 길이라고 해도 목적지를 잃으면
소용이 없다. 유행은 흘러가지만, 결국 나 자신의 스타일만이 남을 뿐이다' 라고 결론을 내지요.
이순종_미인도_종이에 고추장_20×20cm_2006
그런 의미에서 작가 이순종의 독특한 작업은 흥미롭습니다.
신윤복의 미인도를, 종이에 그저 고추장을 이용해 그려냈지요.
가채로 머리를 꾸미고, 상박하후(상의는 좁게 하의는 넉넉하게)의
전형적인 조선중기의 패션 스타일을 소화해낸 여인의 기품이 눈에 들어옵니다.
오히려 고추장의 붉은 기운이 기품에 열정도 함께 심어주는 것 같고요.
뭔가 눅진하게 배어나오는 매력이 괜찮지 않나요.
신윤복 <미인도> 비단에 채색, 간송박물관 소장
사회심리학 저널에 흥미로운 결과가 나왔더군요.
행복한 노년을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 란 화두에 대해
결론은 '성숙한 방어기제를 갖는 것'이었답니다. 신체적인 젊음이나 경제력이 아닌
자기존중과 관리, 그리고 일상의 다양한 감정들을 긍정적으로
소화해내고 넘길수 있는 심리적 방어기제....라고 말이에요. 쉽게 마음 씀씀이 정도라고 할까요?
이순종_바비의 축복_혼합매체_40×30×30cm_2006
예전 빅토리아 시대의 여인들은 옷무게만 10킬로가 넘었습니다.
고래뼈로 만든 페티코트에 크리놀린에, 거기에 스커트를 두개를 겹쳐 입었죠.
이순종의 작업 속 바비처럼 그녀들이 행복했을까요? 오죽하면 문화사가들이 그때를 가리켜
우아한 노예들의 시대라고 했을까요.
노년을 맞이하는 태도, 혹은 사회가 규정하는 이상적인 미의 기준에 대해서
다시 한번 깊게 생각하고, 나만의 기준으로 꾸며가는 주체적인 우리가 되어보길 소망하게 되네요.
그때가 되어서야 진정한 축복이 어떤 것인지, 작품 속 바비도 알게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주말입니다. 이번 일요일 블로거 컨퍼런스에서 여러분들 뵙겠습니다.
제 세션때 많이 와주세요.
김동률의 목소리로 듣습니다 <잔향>. 메이크업 향기보단
영혼의 잔향이 가득하게 배어나는 삶을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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