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 Healing/내 영혼의 갤러리

'위기의 주부들' 드라마 속 그림을 읽다

패션 큐레이터 2007. 2. 15. 17:04

 

그랜트 우드

'<아메리칸 고딕> 1930, 비버보드에 유채,

74.3*62.4cm, 시카고 아트 인스티튜트

 

요즘 한때 TV에서 절찬리 상영되었던

미국 드라마 <위기의 주부들 : Desperate Wives>를 하나씩 틈틈히

보고 있습니다. DVD로 빌려보는 게 꽤 재미있기도 하고

무엇보다도 설정 자체가 부부들의 삶을 배경으로 하기때문에

아이들을 키우는것, 동네 주민들과 어울리는 법, 학교에 방문해서 선생님과

이야기하는 것 등 사실 소소한 장면 마다 박혀 있는

영어표현들이 아주 재미있고 실제적인 것도 있더

더욱 그 재미를 더하더군요.

 

'위기의 주부들' 속엔 다양한 모습의 주부들이 등장합니다.

완벽한 엄마를 꿈꾸는 브리와 실수투성이에 대책없는 로맨티스트 수잔,

아직도 육체적인 매력이 가득한, 그래서인지 어디에도 매이고 싶어하지 않는 솔리스와

사회적 성공을 뒤로 하고 풀 타임 주부가 된 르넷에 이르기까지

그들의 모습 속에서 왠지 코메디라고 보기엔 어둡고 씁쓸한 일면까지

살펴보게 되는게 사실이었습니다.

 

이 드라마의 오프닝 부분에는 여러개의 서양화 작품들이

등장합니다. 우선 반 다이크의 아르놀피니의 결혼이 등장하고

그 후 등장하는 작품이 바로 오늘 소개드릴 그랜트 우드의 <아메리칸 고딕> 입니다

 

 

돈 마틴(1930-2000)

<아메리칸 고딕>, 1970, 종이에 수채및 잉크, 매드 매거진 표지

 

사실 미술사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이 그림 만큼 많이 패러디 된 작품이

없다고 할 만큼 인기를 끌었고 현재도 수도없이 패러디의 대상이 되고 있는 그림이지요

아마 그래서일까, 위기의 주부들에서도 이 그림을 오프닝 그림으로 넣지 않았나 싶습니다.

 

사실 이 그림을 통해 <아메리칸 고딕>이란 회화 양식이 생길 만큼 그 영향력은

굉장했지요. 이 그림에 대한 이야기를 잠깐 하자면, 이 작품을 그린 그랜트 우드는

1930년 8월, 우연히 자신의 고향 오하이오의 남부시골 마을인 엘던이란 곳에서 운전하다가

뾰족한 지붕과 고딕양식의 창문이 달린 그림 속 집을 보게 된다고 해요.

 

 당시 이 집은 5개의 방이 달린 카펜터 고딕이란 양식으로 지어진 집이었어요.

이 집을 보자마자 화가는 집 앞에 농부와 딸의 모습을 상상하며 작은 스케치를 그렸고

이후 사진으로 찍어 스튜디오에서 작업을 합니다. 

우드는 19세기 빅토리아풍의 초상화와 사진들을

이용해 이 그림을 다시 재작업 합니다. 그래서인지

사실 그림 속 인물들의 모습이 고풍스럽지요

 

 갈퀴를 들게 한 것은 19세기풍의 건초작업을 하는 농부의 모습을

표현하기 위해서가 첫번째, 두번째로는

인물들의 계란형 얼굴을 더욱 돋보이게 하기 위해서였다고 해요

 

 

루 비치(Lou Beach), 미국 현대작가

<여피 고딕> 2002

 

그림 속 주인공은 자신의 여동생과 친구였던 치과의사입니다.

그림 속 그들의 모습은 뭔가 뚫어져라 정면을 바라보고 있고, 어찌보면 좀 겁납니다*^^*

물론 그림 속 딸은 어딘가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구요.

큰 브로우치가 달린 빅토리아 풍의 의상을 입은 그녀의 모습속에서

두 사람 사이의 왠지 모를 벽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특히 갈퀴를 통해 정확하게 갈려진 두 사람의 영역이랄까

이런것들이 느껴지기도 하구요.

 

왜 그림을 <위기의 주부들>에 사용했을까 하는 생각이 계속해서

저를 사로잡았습니다. 드라마 속 부부들은 각자 정해진 삶의 영역을 위해

나름대로는 열심히 노력하며 살아갑니다. 물론 그 결과는 그닥 좋지 않지요.

돈을 잘 버는 남편 뒤에는, 모델로서의 화려한 인생의 따스한 사랑이라는

두가지 목적을 채우지 못하는 바람둥이 '솔리스'가 있고, 완벽한 엄마와 아내를 꿈꾸는

브리의 뒤에는 변태성욕을 가졌던 의사남편이 있었습니다.

 

현대작가 루 비치의 작품 속 여피 부부들의 삶에도

이런 벽은 여전히 나누어진채 그려집니다. 아무리 기술로 무장한 세대라도 말이에요

 

 

고든 파크 1942 <아메리칸 고딕>

 

이 드라마의 원제인 Despeate는 여러가지 뜻이 있지만 저는 '절망적인, 더 나아질수 없는'

이런 뜻을 가지는게 아닐까 싶습니다. 그들은 서로에게 친구이면서도

고통을 공유하기 보다는 감추기 그렇지 않은 척을 하느라 바쁘지요.

끊임없이 우아함과 별일없음을 강조하느라,

자신의 영역에서 무한의 벽돌쌓기를 해가고 있습니다.

 

드라마를 보니 이런 표현이 나오더군요

This is how I see it, Good friends support each other after they've been humiliated

Great friends pretend nothing happend in the first place.

좋은 친구란 그들이 챙피를 당하고 난 후에야 도움을 손길을 주고

훌륭한 친구란 우선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은것처럼 행동하는 법이라는......

 

원래 고딕이란 양식의 배후엔, 점점 더 사글어가는 인간의

신에 대한 사랑과 욕망을 자꾸 높이 쌓아가는 건축물을 통해 대리로 배설하고

가장하고 꾸미려는 우리들의 어리석은 모습이 베어 있습니다.

우리들의 삶도 이렇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이 그림을 보는데

갑자기 들더라구요. 뭐니뭐니해도 진실한것, 볼품없어도, 외관이 화려하지 않아도

당당하고 나를 소중히 여기는 작업부터 시작해야 하지않을까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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