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 Healing/내 영혼의 갤러리

기억의 언어로 지은 집-현대중국을 읽는 두가지 시선

패션 큐레이터 2006. 11. 17. 10:30

기억의 언어로 짓는 집

(집단적 기억과 멸실된 기억의 추억제-왕징송의 작품을 읽다)

 

요즘 중국 현대 미술에 관심이 부쩍 늘었습니다.

후배가 이 작업을 하다보니, 이래저래 대화도 나누고 그러다가 이리 되어갑니다.

오늘은 두편의 그림을 놓고, 중국을 바라보는 시선에 대해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쑨 쩌시(Sun Zixi)의 '천안문 앞에서'

캔버스에 유채, 153*293cm, 1962년, 국립박물관, 베이징

 

 나는 기억이란 단어에 관심이 참 많다. 우선 기억이란 차원은

개인이란 환원할수 없는 존재를 규정하고,

구축하는 벽돌 같은 것이라고 나는 생각해왔다.

기억은 단기와 장기의 차원에서 우리의 뇌리속에 축적되고,

마치 추억의 환약을 한줌 쥔 듯,

체험과 추억은 기억이란 지층의 저변을 구성한다.

그것은 현실을 재구성하는 힘을 가지는데,

이것은 장기 기억의 형태로 남아, 다가올 미래 속 우리 자신들의 방향성과

생각의 무늬들을 새롭게 짜낸다. 왕징송의 작품 속엔 바로 그런 기억에 대한 사유가 들어있다.

 

사회적 차원의 사건에 대해, 집단이 가지는 기억-아니 가지려고 노력하는 기억이란

표현이 맞을 것 같다-과 개인적 기억은 다른 표피와 깊이를 가지기 마련이다.

집단은 자신의 존재근거와 운동양식, 존립의 증명을 위해 이 기억을 조작하거나 제조한다.

윤색시키고 부각시키고, 또한 멸절도 시킨다. 이것은 당대의 권력과 자본의 힘이

 우리에게 강요하는 기억의 방식이다. 자 이제 개인의 기억으로 들어가자.

 

제조된 기억(Manufactured Memory)에 대한 개별자인 인간의 대응방식은

다른 형태의 운동성을 띤다. 거기엔 눅진하게 베어있는 개인의 추체험이란 동인이,

자신만의 추억이 갖는 독특한 렌즈를 ‘사회적 사건’의 풍경에 들이대기 때문이다.

사회의 집단적 기억과 개인의 기억은 이렇게 상이한 방식으로 기억의 저변,

그 깊은 배후의 사건을 해석하고 통어한다.

 

근대 중국사에 대한 집단적 기억과 그것에 반응하는 개인의 기억,

그 무늬의 차이를 설명할 수 있다면 오늘의 짧은 글은 유효한 성격을 띠게 될 것 같다.

 

왕징송의 작품 <천안문 앞에서 사진찍기>와 쑨 쩌스의 <천안문 앞에서>는

바로 이러한 기억을 둘러싼 정치학적 발화가 스며있다. 쑨 쩌스의 작품을 보자

때는 1963년 바로 마오의 4월 혁명 이후 대약진과 농촌대개혁이 혁명정부의 중심 공약이었다.

가난의 때에 찌들린 농촌을 구제하고, 마오이즘의 이념아래 개조한다던 <중국>이다.

그림 속엔 세 무리의 집단이 올망졸망 사진찍기에 정신이 없다.

 

천안문의 중심에 걸린 마오쩌뚱의 대형 초상화와 <중화 인민공화국 방문>이란 표찰 또한

당시 세계 속의 중국으로 막 진입하기 시작한 혁명세대의 초상화를

구성하는 중요한 기억의 인자다. 시골에서 상경한 듯한 농민들의 모습이

그들의 복장에서 드러난다. 당시 마오 모자는 기존의 전통적인 중국복식 속에 갖혀 있는

황실의 기억/전근대의 기억을 지우고, 집단농장과 균일적 미를 창조하는 기호였다.

 

시골에 사는 인민들 모두가 이 마오의 유니폼을 입고,

그들이 창조하고자 하는 집단적 기억의 추억제에 동참했다.

농민과 군인이 캠페인의 가장 큰 세력이었고, 그림 속 그들은 낙관적 미래에 대한

동참의식으로 가득찬 체, 근대 중국의 표상 앞에서 포즈를 취한다.

 

자 이제 시선을 왕징송의 작품으로 돌려보자. 이 작품은 쑨 쩌스의 작품을 패러디 한 작품이다.

난 패러디란 것도 사실 기억의 실을 자아가는 또 다른 방식이라 생각한다.

당대의 집단적 기억의 무늬를 전유하고 뒤집어 나의 기억으로 재구성 하는 일.

이것은 사건의 위상을 개인적 차원으로 환원하는 일이며,

정치학적 시선을 통한 인식의 재영토화 작업이다.

 

 

왕징송(Wang Jing Song)의 '천안문 앞에서 사진찍기' 1992

캔버스에 유채, 125*185cm, 한아트 갤러리, 홍콩

 

자 왕징송의 작품을 보자. 이제 혁명세대의 수사학이 힘을 잃고,

세계화의 물결 속에 놓여진 중국의 이미지.

그림 속엔 마치 포화도가 높은 색감으로 찍어낸 스냅사진처럼 명징한 기억을 위해

채색된 현대중국의 자화상이 있다. 심도가 전혀 없는 화면, 표피적으로까지 보이는

천안문 앞에 일군의 사람들이 서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말소된 사람들의 이미지가

거기엔 중첩되어 있다. 하얗게 지워진 사람들. 기억의 말소(White-out of Memory) 과정,

여기에서 배제되고 부상한 개인들이 있을 것이다. 마오의 혁명 이념 아래 억눌러온 개인의 개성과

소비에 대한 욕망은 현대 중국을 새로 움직이는 힘이다.

 

<억압받은 개인의 귀환>은 이제 천안문 앞에서 자신을 애써 지워내야 했던

마오의 초상을 지우고 중심으로 귀환한다. 사람은 기억이란 인자를 자신의 환경에 따라 해석한다.

그 인자는 자신의 컨텍스트에 따라, 소비의 대상이 되고, 공격의 대상이 되고, 환멸의 대상이 된다.

소비의 대상이 된다면 그것은 과거의 기억을 소비를 위한 오브제로 만드는 일이고,

그 속에 베어있는 과거의 기억을 비웃으며 현재에 대한 절대적인 칭송이 있다.

바로 정치적 팝아트의 지형도가 그려지는 지점이다.

 

모든 혁명엔 눈물이 있다라는 영화 감독 장 뤽 고다르의 말이 떠오른다.

이런 혁명이 이후의 세대에 의해 소비의 대상으로, 문화적 아이콘으로 변화하는 것.

자본의 유연적 축적의 힘 앞에서 무릎꿇고 있는 마오에 대한 정치적 낭만이다.

모든 아방가드르의 배후에는 사실 낭만주의의 흔적이 있다는 지성사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게 된다

프랑스 혁명 당시, 순수의 열정으로 가득했던 프랑스 지식인들, 그 혁명의 결과는

나폴레옹의 독재였고, 현실 속에서 환멸의 우상을 보았던 예술가들은

이제 뿔뿔이 각자 헤쳐모여를 통해 집단적 의미 생산과정을 탈주하여

 

개인의 기억으로 들어간다. 이제 때는 2006년 현대 중국은

각 개인의 기억으로 이전, 집단의 이념이 주었던 흔적들을 환멸에 찬 시선으로

하나씩 지워가고(whiteout) 있는 것은 아닐까?

 

그의 그림 속엔 이런 냉소적 시선이 존재한다. 부정할수 없는 강함이 베어있는체.... 아듀 마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