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큐레이터 2006. 10. 11. 00:20

 

오늘....이 글을 쓰면서 참 많은 감회에 젖어봅니다.

칼럼에서 블로그로 바뀐지, 그렇게 이 공간에서 블로그를 형태로

여러분을 만나고 사랑하고 나누었던 날들이

이제 천일이 되었습니다....

1000.........일

 

짧다면 짧은 시간일수도 있겠지만

이곳에서 글을 쓰는 순간만큼 항상 진실했고, 많은 것을 노출시켜

때로는 아프기도 했습니다. 글쓰기는 저를 키운 힘이었고

그 속에서 나는 항상 행복했습니다.

 

 

마치 저 머나먼 여행길, 익숙하지 않은 골목길의 정경에

때로는 혼란스럽게 때로는 신산하게, 마음 다잡으며 눅진하게 베어진

삶의 향기를 찾아서 떠났던 저 길들이 이제는 내게 오라 말하고 있습니다.

 

이 공간에서 참 많은 분들을 만났습니다.

화가선생님도 만나고, 피아니스트도 만나고, 저널리스트도 만나고

사진작가 선생님도 만나고, 패션 애널리스트도 만나고

발레리나도 만나고, 전문 번역사도 만나고

기업을 경영하는 분도 만났고, 황혼의 멋진 할머니도 만나고

미래를 꿈꾸는 청년들도 만나고......

 

이외에도 이곳에 적지 못한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지나가거나 혹은 오늘도 이곳에 기록을 남기고 있습니다.

내가 만난 모든 사람은 아름다왔고, 난 그 속에서 행복했습니다.

 

 

내 청춘의 낙서장....처럼

마치 낮선 거리벽의 그라피티처럼

혼산하지만, 소중한 추억의 환약 한웅큼 머금고

그리움의 노래를 토해내는 곳.

 

적어도 이곳은 제겐 그런 곳입니다.

미술과 사진에 대한 글을 실으면서, 한번도 허투루마투루 한적이 없다고

감히 고백합니다. 그림 한장을 읽기 위해 밤을 새워 읽어내야 했던

아티클이며, 도록이며, 내 월급의 4분의 1은 가져간 비싼 그림책들과 논문집들

그래도 한가지, 쉽지않은 미술관련 영어를 이제는 좀 몸에 붙었다고

감히 말할수 있는 지경은 되었습니다.

 

 

어두운 아치형 대문을 건너

환한 오후의 햇살 아래 빛나는 사물의 형식을 담으며

내 기억의 분수령 속에 작은 물방울을 더해봅니다.

이곳에 왔던 많은 사람들의 기억이 이제는 작은 물방울이 모여

하나의 흐름이 되고 물줄기가 되어

기갈에 목말라하던 제 남새스러운 영혼의 갈빛 영성들을

갈무리합니다.

 

 

그런 여러분에게 오늘은 근사한 와인 한잔씩 돌려야 할까 봅니다

 

태풍이 지나간 이른 아침에
길을 걸었다
아름드리 플라타너스 왕벗나무들이
곳곳에 쓰러져 처참했다
그대로 밑둥이 부러지거나
뿌리를 하늘로 드러내고 몸부림치는
나무들의 몸에서
짐승 같은 울음소리가 계속 들려왔다
키 작은 나무들은 쓰러지지 않았다
귀똥나무는 몇 알
쥐똥만 떨어뜨리고 고요했다
심지어 길가의 풀잎도
지붕 위의 호박넝쿨도 쓰러지지 않고
햇볕에 젖은 몸을 말리고 있었다
나는 그제서야 알 수 있었다
내가 굳이 풀잎같이
작은 인간으로 만들어진 까닭을
그제서야 알고
감사하며 길을 걸었다

정호승의 '감사하다' 전문

 

 

제 청춘의 작은 비망록속에

보석처럼 알알히 박혀 있는 여러분들 얼굴

모두 오늘 기억하며 지내려 합니다. 아니 평생을 두고도 감사한 마음 가득하게

담아 그리 살려합니다.

 

 

항상 세월이 지나도

이곳의 문은 저 적갈색벽 사이로 환히 열고 인사하는 아쿠아마린빛

창들처럼 그렇게 환하게 열어놓으려 합니다.

녹청이 스민 창연한 내 기억의 파티오엔 여러분이 보낸 붉은 우정의 꽃들을

하나씩 터트려 하늘에 올리려 합니다.

 

참 많이도 감사합니다.

그렇게 적지않은 길을 왔네요.

우리들의 천일을.....

천일동안, 우리의 사랑이 영혼했듯

내 영혼은 여러분들 가슴속에서 함께 하겠습니다.

 

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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