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바뜨의 아이들-모스크바에서 보낸 한철
꽤 오랜시간이 흘렀습니다.
예전 '아르바뜨의 아이들'이란 소설을 읽은적이 있었습니다.
1년전 사진들을 정리하면서 올해도 가게될거 같은 러시아의 풍경들을 기억하다가
그때 가보았던 미술의 거리, 러시아의 인사동, 아르바뜨를 생각하게 되었지요.
사실 아르바뜨 거리는 사회주의 혁명의 상징이었고 러시아 전통의 대변자
역할을 했던 일종의 문화적인 기표였습니다.
바이어 미팅을 아침일찍 마치고 크렘린 궁에 갔었습니다.
그리스정교의 원류가 살아 있는 궁과 소피아 성당의 모습들을 뒤로하고
붉은 광장을 넘어 이곳 아르바뜨까지 기껏해야 10분 남짓을 걸었을 뿐이지요
16세기에 만들어진 아르바뜨 거리는 길이가 1.5킬로미터 폭이 20미터 정도의
작은 도로입니다. 종로의 인사동과 상당히 비슷한 면모를 가지고 있지요.
사실 인사동도 예전의 묵향 가득했던 풍모를 잃어가고 있듯
이 아르바뜨도 스탈린 시절과 맞물리며 혁명의 초심과 그 이데올로기의
가장 적확한 대변자들의 거리는 변화의 급물살을 타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수공예품과 목공예품이 즐비했다지만 요즘은 현대식으로 점점 더
개축되어 가고 있는 중이라 요즘은 옛스러움과 현대식이 마구잡이로 혼합되어 가는
일종의 문화적 점블현상이 다소 볼썽 사납게 보여지는 곳이기도 합니다.
스탈린이 1952년 자신의 권위를 상징하는 외무성 건물을
지어 아르바뜨 거리를 새롭게 합니다. 그의 커다란 카리스마 앞에서
아르바뜨는 또 새로운 형태의 정체성을 부여받게 되지요.
모스크바의 예술의 거리 아르바뜨에는 이렇게 아직까지
코자크족의 전통 무용 공연이 거리에서 펼쳐지기도 합니다. 다만 그들의 나이가
이제는 혁명의 퇴색된 정신처럼 노후하고 있다는 것이지요.
러시아의 대 문호였던 푸쉬킨이 살았다는 이곳.
사실 18세기만 해도 귀족들의 거주지로서 아르바뜨는 예술과 문화의 보호와 육성이
자연스레 이루어졌던 공간이기도 했습니다.
러시아인들의 정신적 지주 이자 최고의 시인으로 추앙 받고 있는 사람인 바로 '뿌쉬낀(А.С.Пушкин)'과 그의 아내 '나딸리야 곤차로바(Наталья Гончарова)'의 동상입니다.
뿌수낀 탄생 2백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1999년 세워진 동상으로
언제나 그 앞엔 꽃송이들과 기념 촬영을 하려는 사람들의 모습이 끊이지 않는곳 이고,
동상 바로 맞은편에 보이는 청록빛을 띈 건물이 바로 그가 모스크바에서
얼마간 살았던 집으로 지금은 그의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혁명의 물결을 뒤로하고 새롭게 시작된 세계화의 바람 속에서
페레스트로이카와 글라스노스트의 가장 큰 칼바람은 바로 이 전통적 향기의 공간을
새로운 이념으로 무장시키며 이전의 정신적 유해들을 하나씩 지워가고 있지요.
지나가는 길에 점심시간이 되었습니다.
러시아식 스테이크를 한번 먹어보려고 들어갔는데 어찌나 사람들이 많던지
번호표를 받고 20분쯤 기다렸는데도 자리가 나지 않아서
함께 갔던 동료가 다른곳에서 식사를 하자고 하는 통에 그냥 아쉽게 나와 버려야 했습니다.
다음에는 꼭 다시 가서 한번 먹어보고 싶습니다.
저는 어디를 여행할때 꼭 그 지명의 연원을 한번쯤 캐어묻는 버릇이 있습니다.
한국에서도 가령 노량진이나 압구정 하면 그말 안에 뜻이 있다는 것 쯤은 아실테지요
아르바뜨는 아랍어로 '도시근교'란 의미를 가지고 있다네요.
그러면 왜 도시근교란 뜻을 가지고 있었을까?
예전에는 크레믈린궁까지만 도시로 형성을 시켰다고 해요 그러니 가까이에 있는
아르바뜨는 도시근교란 뜻으로 해석이 되겠지요. 당시 아랍문화권과 많은 교류가 있었던
러시아는 아랍식의 이 이름을 자연스레 받아들이게된 것 같습니다.
아르바뜨가 지금과 같이 중심지가 되는데 커다랗게 공헌한 것이 바로,
모스크바 종합대(엠게우) 건설 이었다는 것입니다.
모스크바 종합대가 지금은 남서쪽으로 모스크바 강을 건너와 있지만 당시엔
아르바뜨와 별로 떨어지지 않은 지금의 레닌도서관과 호텔 [내셔널]사이에 위치하고 있었습니다.
지금도 거기에선 몇개 faculty의 수업이 진행중이지요.
엠게우가 건설되고 이곳으로 러시아 전역의 주요 학자들이 모여듭니다.
자신의 학문 뿐만 아니라 문화적으로도 우수한 사람들의 집단이 만들어지고
끄레믈과의 사이에 만들어진 아르바뜨는 당연히
이들이 자주 찾는 곳이 되어갔으리라 생각됩니다. 러시아 인텔리겐챠가 형성되고
이것이 아르바뜨를 문화의 거리로 승화시키는 데 기여를 했으리라 생각됩니다.
하지만 이곳 아르바뜨도 경제의 호황과 더불어
무분별한 도시개발의 일환인 '재개발'이 이루어지면서
예전의 정신이나 문화적인 혼을 찾아보기가 더욱 어려워 집니다.
아르바뜨가 일번지에는 바로 브리티쉬 페트롤리움(BP) 건물이 서 있습니다.
검은 진주, 러시아의 보석같은 자원을 착취하기 위한 메이저 석유사인BP가
러시아 튜멘석유사와 합작하여 지은 건물이지요. 사실 이 러시아 튜멘석유사도
그 연원을 찾아가보면 구 소련시절 정부의 비호아래 재산을 증식하거나 국유화에서
민간화로 바뀔때 아주 값싸게 자원할당권들을 할양받은 자들이 만든 회사입니다.
요즘같이 초여름 장마가 지리하게 우리들의 일상을 누를때는
햇살 좋은 아르바뜨 거리를 다시 한번 흥겹게 걸어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합니다.
사이언 블루빛 물감을 마음껏 풀어놓은듯
말끔하게 여과된 물방울의 응결체들이 하얀 솜사탕처럼 보송보송
하늘을 잠자리 삼아 행복하게 누워있는 곳
크렘린궁에 부속된 정원입니다.
아르바뜨에 가기전 들렀지요. 동유럽의 정원양식들을 그대로 보여주는듯
여름날의 힘을 그대로 담아낸 화려한 색조의 정원을 한참을 거닐다가 내려왔습니다.
성당과 궁을 나와 거닐었던 공원길.....
말을 타고 다니는 경찰들의 모습이 이국적이고, 뭐 뉴욕에서도 사실 똑같지만
햇살 아름다운 오후
정겹게 거니는 정원과 공원의 모습이 안온합니다.
점심을 먹고 서서히 하나하나 느린 걸음으로 걸어가며 보는 풍광은
여행객의 외로움을 충분히 지워낼만큼 풍성합니다.
여름날의 분수
그 시원한 물줄기를 바라보다가
생각에 빠져듭니다. 내가 생각한 러시아가 생각보다 참 아름다운 곳이구나 하구요
그러고 보니 방송으로 혹은 영화로 혹은 글로 배워야 했던 러시아의
모습과는 사뭇 많이 다르다는 걸 또 한번 배웁니다.
바쁜 출장길과 여행을 겸하다 보면
가장 크게 겪을수 있는 실수중의 하나가 미지의 장소에 대한
일종의 정보라든가 뭐 이런것들을 제대로 준비하지 못하고 가게 될 때가
많다는 것입니다. 그나마 유럽을 왠만큼 돌아다녀보았다고 하지만
러시아는 사실 많이 생소한 곳이지요.
저는 솔직히 러시아 문학에 대해서 그리 깊이 알지도 못하고
그냥 관심이 있다면 오히려 희곡분야를 좋아했던것 같습니다.
대학에서 연극을 했으니 그건 당연한 일이겠지만 말이죠. 그래서 연기이론가였던
스타니슬라브스키의 생가나 혹은 그를 기리는 극장 같은걸 사전에 알았더라면
갈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 봅니다만 후회가 남습니다
이곳을 거니는데 왠지 예전 라스베가스의 한 호텔을 걸을때와 왜 이렇게
닮아 있던지 조금 놀라면서 보았습니다. 여행을 하다보면 어디에선가 본듯한
데자뷔 현상을 상당히 많이 경험하게 되지요.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 !
우울한 날들을 견디면서
믿으라, 기쁨의 날이 오리니.
마음은 미래에 사는 것
현재는 슬픈 것:
모든 것은 순간적인 것, 지나가는 것이니
그리고 지나가는 것은 훗날 소중하게 되리니.
여러분이 너무나도 잘 아시는 푸쉬킨의 '삶'입니다.
이 시는 진부하게 느껴질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인용을 하고 혹은 값싼 인생의 조언을
들을때 꼭 한번쯤을 들었을거 같은 시이기도하지요. 하지만 곱씹어 볼수록 시인의
향기가 베어 있음을, 긍정속에서 여전히 떨쳐 버리지 못한 우울의 마음을 읽어봅니다.
붉은 광장은 ‘크레믈’ 다음으로 모스크바의 상징인 동시에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거쳐간 곳이자 수많은 역사적 사건의 굴곡을 지켜 봤던,
지켜 보고 있는 그런 존재 입니다.
이런 붉은 광장이 처음으로 역사상 모습을 드러낸 때가 15세기 말엽,
즉 이반 III세가 크레믈 주변을 새롭게 정비 할때 상업의 목적으로
터를 닦기 시작 하면서 부터라고 합니다.
그렇게 ‘크레믈’ 동쪽 벽으로 ‘시장-또르그(ТОРГ)’이란 이름의 광장이 생겨 났는데
이 이름은 그리 오래 불려지지 않았고 16세기 에는 광장의 이름을
지금의 ‘성 바실리 성당’의 초기 명칭을 따라 ‘삼위 일체 광장’ 이라 부르다
17세기엔 ‘불의 광장’이라는 명칭으로도 불렀다고 하지요.
그러다 19세기에 지금의 명칭인 붉은 광장으로 불려지게 되는데 “붉다”는
의미의 형용사인 ‘크라스늬이(КРАСНЫЙ)'는'붉다'란 뜻 이외에
'아름다운 -크라시브이(КРАСНЫЙ), 훌륭한- 쁘레바스호드늬이(ПРЕВОСХОДНЫЙ)'의
뜻으로 쓰였다 하니 광장의 정확한 뜻은 색깔을 나타내는 의미의 '붉은'광장이 아닌
'아름다운,훌륭한' 광장이 맞지만 서방에서 봤을때
공산주의 혁명을 이룬 나라의 광장을 아름다운 광장이라 부르기 싫었을 테고
피로 얼룩진 혁명을 치뤘대서 붉은 광장이라 말하고 싶었던게 아닐까 싶습니다.
암영속의 붉은 광장이 보이고 그곳을 지키는 군인들의 모습이
다소 인상적이었다는 기억이 남아 있습니다.
또 다시 가고 싶은 곳, 모스크바, 다음에는 제대로 미술관을 한번
가 보았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합니다. 물론 페테르부르크 지역도요.
요즘 러시아 낭만주의와 인상주의 그림들을 공부하고 있는데
그곳에 가서 직접 사진들을 찍어 올려보고 싶네요.
오늘 함께한 아르바뜨의 풍경 기행은 어떠셨나요?
마음에 드셨어요? 오늘도 비가 잔잔히 내리네요. 하늘에서 내리는 빗방울 수만큼
오늘도 행복 가득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