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 Education/딸을 위한 미술 이야기

내가 사랑하는 두 여인......

패션 큐레이터 2006. 2. 23. 02:34

다영이에게.....

오늘은 무슨 주제를 가지고 너와 대화를 나눌까 고민을 했다.

최근 너와 함께 텔레비젼에서 여러차레 보았던 미식축구 선수 '하인즈 워드'의

이야기부터 살펴보고자 한다. 그래...그는 한국인의 피가 섞인 혼혈인이지.

미국사회에서 그가 '엄마의 아들'로서 이루어 놓은 성공과 성취에 대해

연일 매체들은 떠들고 있고, 나아가서는 한국사회의 '혼혈'에 대해

이야기 한다. 모두다 소수자 집단의 이야기고, 결국은

우리가 끝내는 껴안아야 할 '타자'의 문제이기도 하다.

 

 

아드리안 반 데어 베르프, 하갈을 아브라함에게 소개하는 사라

 

구약시대에도 이러한 문제가 있었다면 어떻게 하겠니?

오늘 소개하는 하갈과 사라의 이야기는 바로 그 예전 우리 앞에서 현재 펼쳐지고 있는

흑인 혼혈과, 대리모, 아랍과 이스라엘의

갈등, 소수민족에 대한 억압과 차별의 문제를 보여준다.

 

지배계급이 그 당시 선택권을 가질수 없었던 약자로서의 노예인 여성을

어떻게 박탈하고 이용했는가에 대한 이야기로 풀어갈 수 있다. 오랜동안 수태하지 못했던

사라는 자신의 노예인 하갈을 남편에게 소개시키고, 그녀로 하여금 아이를 갖게 하지

물론 그 당시 여러명의 아내를 거느릴수 있었던 가부장의 시대에는

사실 이것은 법적으로 하자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문제는 바로 사라가 신의 은혜 가운데 수태를 하고 그 이후의 문제로 발전되지

 

 

 티에폴로,  광야의 하갈

캔버스에 유화,138 x 159 cm
루브르 박물관, 파리

 

성경의 말대로 하면 그녀는 이삭을 낳고 하갈을 구박하기 시작하지 인종적 모멸감에 가까운

그런 구박이었으리라 생각해. 아브라함으로 하여금 두 사람을 광야에 내 �게 만들지

물론 천사가 그들에게 나타나 큰 민족을 이루리란 약속을 하고 목마르지 않도록

샘을 만들어 준다......오늘날 이스라엘과 아랍의 갈등, 바로 그 씨앗의 시작이지

아랍은 자신의 조상을 '이스마엘'에서 찾으니까,

 

신으로 부터의 순수혈통을 강조하는 저 이스라엘 사람들에겐

첩에게 낳은 얼굴이 까만 이집트 여인의 아들이 영 내키지 않았던 모양이다.

주류사회에 결코 들어갈 수 없는 혼혈인 셈이지, 게다가 이스마엘은 대리모까지 했으니

그 당시로서는 약자로서 어떠한 권리는 주장할 수 없었던 거다.

 

 

페테트 조세프 베어하겐

아브라함에께 쫓겨난 하갈과 이스마엘,1781

캔버스에 유화,168 x 195 cm
코닌클릭 미술관, 앤트워프

 

광야로 �겨난 하갈과 이스마엘.....앞으로 그들에게 닥칠 생의 이면들은 무겁고도 신산하다

하지만 바로 이 순간에도 우리는 잊어서는 안된다. 미혼모인 그녀가 가장 열악한

환경인 사막에서도 살아남은 생존자임을.......사도 바울이 하갈과 사라의 문제를 해석할때

하갈은 '육체의 아들'이고 사라는 '영의 약속을 통해 낳은 아들'이라고 선포하는 문제는

단순하게 해석해서는 다소 곤란하지 않나 싶다.  바로 이러한 문제설정의 태도 자체에

그 당시 순수혈통을 강조하는 배타적인 유태인들의 기본적인 정신성이 베어있기 때문이다.

 

 

카렐 두자뎅,

광야의 하갈과 이스마엘, 1662

캔버스에 유화,187 x 143 cm
링글링 미술관, 사라소타

 

하갈과 이스마엘의 문제는 우리에게 다음과 같이 질문을 던진다.

 

What does it mean to be a member of society-who's in and who's out?

사회의 성원인 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누가 그 성원이며 누가 아닌가?

 

오래전부터 시작된 사회 내의 구성원의 정체성의 문제를

이 이야기를 우리에게 보여준다. 한국사회도 참 만만치 않게

백의 민족이란 단어를 자랑스럽게 여기는 곳이다. 물론 나쁜의미로만 받아들이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것인 약간의 차이도 인정되지 않고, 혼혈인이나

뛰어나지만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로 자신의 사회속 성원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우리들의 태도에 문제가 있다고 보는 것이다.

 

그거 아니? 이스마엘의 뜻이....바로 '하나님이 들으신다'라는 뜻이라는걸

한국 내에 아직까지 수많은 차별과 고통의 상처속에 노출된 혼혈과 소수자의 목소리를

신은 반드시 듣고 있노라고 이야기 하고 있다는 것을.....

바로 그것이 모든 곳, 우리와 당신의 내면속 가득하게 계신

절대자의 은혜임을.....잊지 않는 것이다.

타자를 껴안는다는 것은 바로 그런 것이다.

 

결국 타자를 껴안고 차이를 껴안는 것은 신이 우리에게 허락한

가장 큰 사랑의 방식이자, 존재론의 이유가 될 것이라는 점이다.

 

오늘은 이야기가 많이 무겁구나......내일 논술시험 잘 보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