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투 고백자들을 위한 한 장의 그림-망치로 찍기 사용설명서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
<야엘과 시스라> 1620년경, 캔버스에 유채
부다페스트 국립미술관 소장
충남도지사 안희정이 자신의 비서를 지속적으로 성폭행했다는 충격적인 폭로가 나왔다. 이날 새벽, 그는 사퇴한다. 미투운동은 권력자가 항의수단을 갖지 못한 약자를 어떻게 성적으로 착취하는가를 드러내 보여주었다. 도덕성의 리트머스 시험지를 육안으로 응시하게 해주었다는 점에서, 한국사회의 형질을 바꿀 캠페인이다. 성추행/폭력을 고백하는 이들은 2차 가해도 당한다. 자신이 거대한 가부장제 사회의 공범이었음을 잊고, 아니 공범의식을 내적으로 다지며 은폐하기 위해 희생자들에게 침묵을 강요한다. 맞서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마치 젠틸레스키의 그림(1620년작, 부다페스트 미술관 소장) 속, 적장 시스라의 머리를 텐트를 박는 못으로 찍어 죽이는 야엘처럼.
머리를 쳐서 죽이는 것이 핵심이다. 이 땅의 미투는 숨어있던 죄악의 머리를 향해 닿으려고 한다. 가해자들의 변명은 역겹다. 추상적으로 '모든 것을 내려놓는다'에서 부터, '인지하지 못했다'까지. 갖은 변명이 온라인에 오간다. 나아가 한국의 정情 문화를 들먹이며 미투가 변화시킨 기업 및 사무실 분위기를 놓고 옹알이를 한다. 사무실이란 공간 속에서, 인간은 사무란 행위를 한다. 그 행위를 할 때 요구되는 행동의 조건은 결코 사적이고, 친밀한 사적 공간의 제스처나 언어가 아니다. 도대체가 그 경계를 모르고, 해매고 있는 치들이 너무 많다. 여전히 인지가 안되고 이해가 안간다면, 앞으로도 지속될 미투의 망치를 정수리에 한 대 맞아도 좋겠다. 진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