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 Fashion/패션 필로소피아

패션의 미래, 테크놀로지와 패션의 한계

패션 큐레이터 2016. 3. 27. 00:32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 멋진 패션전시가 열릴 예정이다. 박물관에서 패션이란 영역이 어엿하게 전시의 레퍼토리로 자리를 잡는 모습을 보는 것 같아 뿌듯하다. 상업과 예술이라는 두 세계를 주유하면서도 이질적이지 않게 두 세계를 봉합할 수 있는 힘을 가진 패션. 이 패션이란 영역이 대형 국공립 미술관에서도 점차 조금씩 전시의, 대상으로 인정을 받고 있다. 


사실 미술관에서 전시의 주제로 인정을 받는다는 건 쉬운 문제가 아니다. 그만큼 동시대의 가장 뜨거운 성감대를 건드는, 그러나 학예활동을 통해 그 밑천을 충실하게 다져야만, 대중의 교육과 심미적 균형이란 목표를 위해 사용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없이 그저 트렌드라서, 요즘 좀 뜨는 분야라서 전시를 하는 건 옳지도 못하고, 그렇게 급조된 전시들은 항상 실망감만 가져다준다. 패션특화 전시를 연구하고 그 방식들을 알려온 나로서도, 현재의 패션전시에 대한 뜨거운 관심은 감사하면서도 한편으론 위험천만할 때가 많다. 그저 돈되는 전시, 사람들 끌어모을 수 있는 전시, 이미 확증된 전시만 알려달라고 하기 일쑤다. 



다시 말해 패션에 대한 깊은 이해, 역사와 미학, 앞으로 다가올 기술수준에 대한 연구없이, 남이 만들어놓은 전시만 가져다가, 패션전시라고 하고 있는 꼴이다. 그저 할말 없으면 '패션의 전설' 운운해가며 디자이너 몇명 팔고 나면 레퍼토리가 다 떨어지는데, 참 어떻게 하려는 건지 이 땅의 자칭 빠꾸미 큐레이터들의 행태가 궁금하다. 이번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 열릴 전시인 Manus x Machina: Fashion in an Age of Technology 전이 궁금하다. 손과 기술의 결합, 기계 시대의 패션에 대한 심도깊은 큐레이션이 짜임새있게 이뤄져야 하기 때문이다. 최근 알파고와 바둑기사 이세돌과의 바둑전은 앞으로의 미래에 대해 많은 관심을 이끌었다.


 기계가 인간의 모든 능력을 대체하고 그 능력을 능가하는 특이점의 도래를, 너무나 앞당긴 사건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레이저 커팅과 3-D 프린터로 옷을 찍어내는 시대에 인간의 손에 의존해 만들었던 한 벌의 옷의 존엄은 어떻게 지켜지고, 혹은 두 가지 기술의 융합을 통해 어떻게 새로운 차원을 만들어낼 수 있는가는 중요한 화두다. 



이번 전시는 지금껏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패션 전시들을 담당해온 앤드류 볼턴이 맡았다. 그는 알렉산더 맥퀸의 삶과 예술을 조명한 Savage Beauty 전이나 프라다와 엘사 스키아파렐리의 대화를 전제로 하는 Impossible Conversation 전을 기획한 재원이다. 이번 전시는 특히 세계적인 건축디자인 사무소인 OMA 뉴욕의 쇼헤이 시게마츠가 설계를 맡았다. OMA는 현재 렘 쿨 하스를 비롯해 세계적으로 가장 혁신적인 건축언어를 만들어내고 있는 건축가들의 집합소다.


이번 전시 설계가 기계와 인간의 공존과 혹은 그 차이의 경계를 허물어가는 시대조류에 대한 반성을 담기에, 건축가의 사유또한 큐레이터의 생각만큼 중요하리라 생각한다. 역시 전시의 후원은 애플에서 맡았다. 과거에서 현재까지, 120벌이 넘는 패션 피스를 통해 전통과 현재, 미래의 상을 담아내는 장구한 모험이 될 것이다. 



패션 큐레이터로서, 항상 동 시대 최첨단의 전시양식을 논평해야 할 때가 많다. 기존의 가진 것이 많은 자들과의 싸움은 쉽지 않다. 하지만 이땅의 미술관이 전시란 형태를 통해 시대를 해석하는 문제,그 갈급한 문제는 우리들로 하여금 새로운 양식들을 선택하도록 밀어부친다. 이번 뉴욕 전시는 시작하자마자 비행기를 타고 가고 싶게끔 만든다. 앞으로도 패션을 통해 풀어냐할 사회의 문제들이 많기에 더더욱 그렇다. 마음을 더욱 다져야겠다. 기술의 발전은 점점 노동집약적인 패션의 세계를 잠식할 것이다. 또 한편으로는 창의적 개인은 그 기술을 통해 장치산업의 운명을 넘어서지 못한 패션의 한계를 넘어설지도 모르겠다. 생각할 거리들이 정말 많이 생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