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르단 여행-쓸쓸한 겨울의 사해, 마음을 묻는 시간
11월 30일부터 12월 12일까지, 2주가 넘는 시간을 아랍에서 보냈습니다. 물론
한국패션을 강의하기 위해서였지만, 시간을 내어 요르단과 레바논의 곳곳을 구경하러
다녔습니다. 이번에 여행기를 써야겠다는 마음을 독하게 먹었는데요. 그건 한국사회에서 중동
지방에 대한 여행이나 문화, 혹은 다양한 측면에서 접근하는 책들이 많지 않다보니, 사실 여행 준비를
하면서 매우 애를 먹었습니다. 여행기 하나 제대로 없어서 론리 플래닛을 사러 갔는데 이 또한
교보에선 절품이고, 요르단에 사시는 목사님이 쓴 성서의 땅 요르단이란 한 권의 책을
들고 무작정 떠난 이번 여행길이었습니다. 힘들었지만 많이 배우고 느꼈지요.
제가 묵었던 요르단의 수도 암만의 캠핀스키 호텔입니다. 6박을 했어요.
5성급 호텔입니다. 엘리베이터 타기 전에 그냥 한컷 찍었는데 실제 내부는 좋습니다.
수영장도 좋아서 내내 갔었고, 조식 수준도 레바논에 있을 때 묵었던 힐튼에 비해 오히려 좋더
라구요. 사람들은 레바논 음식이 더 화려하고 멋지다고 하는데 적어도 호텔 조식은 이 호텔이 더 좋았
던 걸로 기억합니다. 인터넷도 잘되어서 매번 사진 찍은거 페이스북으로 열심히 올리며 다녔죠.
요르단이란 나라에 대해 마냥 개괄적으로 이야기를 하기 보단 그냥
천천히 노정을 따라 여행 이야기를 하는게 편할 듯 싶습니다. 아침일찍부터
차를 타고 움직였습니다. 6일동안 제겐 멋진 개인 드라이버가 생겼습니다. 그것도
영어를 매우 잘하는 요르단 친구였지요. 마흐무드라고요. 그와 여행길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고 이야기하고 나눕니다. 아침일찍 안개가 다소 짙게 낀 도로를 따라 가며 요르단의 전체적인
지형과 하늘의 빛깔을 눈에 담습니다. 세상의 모든 사유는 땅을 따라 이루어지죠. 저는
많은 여행 블로그나 여행 글들, 자칭 여행작가가 되라고 부추기는 작금의 출판
문화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너무나도 엇비슷한 글들과 사진이 오가는데
그저 자신의 흔적이 유일한 양 착각하는 분들이 정말 많습니다.
여행은 '네가 못가본 곳을 난 가봤거든'이란 전제에서 시작하지
않습니다. 그저 삶의 문제점과 봉착했을 때, 나와 다른 풍토 속에서 살아온
또 다른 세계 속으로 들어가서 지금껏 몸에 자연스레 배어있는 습관을 뒤틀어보고
흔들어서 시선의 빛깔을 바꾸는 데 저는 목표를 둡니다. 여행을 가는 모든 자리는 그래서
플레이스 입니다. 영어로 공간을 스페이스와 플레이스 두 개의 단어로 설명합니다. 물론 사이트란
단어도 있고 스폿이란 단어도 함께 통용되지요. 4개의 단어에는 엄연한 차이가 있습니다.
여행을 통해 반드시 알아야 하는 것이 플레이스의 의미입니다. 이것은 풍토에
나의 기억이 덧붙여진 공간을 의미합니다. 세상의 모든 여행길은
설레고 찬연할 수 밖에 없어요. 하지만 그것을 몸에 각인
하고 기억에 남는 순간으로 만드는 공간이 있죠.
사해를 가면서 엄청난 기대를 했던 것도 아닙니다. 더구나
겨울이고 쓸쓸한 사해에 몸을 담구며 여름날의 환한 표정을 지을
그런 상황도 아니었습니다. 가뜩이나 첫날, 어떻게 여행을 할까 겨우 일정표
를 짜서 시간 배분을 하고, 어떤 경험을 해볼까를 인터넷으로 설기설기 짜보았지만
현지인 친구는 고개를 흔들며, 자기를 따라 오라 합니다. 여행에서 좋은 파트너를 만나는 일
그를 믿고, 현지의 진짜 향을 맡고 먹고 느끼는 일이 중요하지요. 첫날 찾아간 암만 비치는 아침 시간
이란 유독 사람도 없고 겨울의 시간인지라 쓸쓸합니다. 저는 이런 표정도 좋습니다. 뭐 바다가
맨날 사람들로 웅성거려야 할 이유는 없죠. 지금 이순간, 그냥 내 눈에 들어온 사해입니다.
이번 여행에서 제가 찾아낸 디자인의 영감은 바로 요르단의 토양
바로 흙빛입니다. 이 현지의 돌로 지은 최고급 호텔도 갔고, 그곳에서 멋지게
식사도 했습니다. 한 나라의 디자인을 결정하는, 적어도 유니크한 매력을 표현하기 위해
현지의 재료들을 어떻게 써야 하는가를 요르단의 한 호텔에서 봤습니다.
염분의 밀도가 강해서 몸이 둥둥뜬다는 곳이지만 겨울 한철을 맞이한
요르단에서 사해에 풍덩 몸을 던지긴 어렵더군요. 그렇다고 물이 차다는 건
아닙니다. 생각보다 물이 따스해서 사실 멱을 감아도 되긴 했어요.
저 사해 넘어 베들레헴입니다. 그러고보니 요르단은 진정 성서의 땅이었습니다.
많은 이들이 성지순례란 이름으로 이스라엘과 터키의 소아시아 지역을 주로 가시는데요
사실 찾아보면 이곳이 오히려 성서의 사건들과 관련된 지명들이 더 많습니다. 소돔과 고모라가
징벌을 받은 곳, 룻의 아내가 소금기둥이 된 곳도 가보았고, 예수님의 세례터도 이곳에 있습니다. 어디
이뿐인가요? 모세가 끝내 하나님의 약속의 땅을 밟지 못하고 죽었던 곳, 그 곳에 세워진 교회와
그 위에 상징처럼 놓여진 놋뱀도 봤습니다. 성경을 아시는 분들은 친숙한 소재지요?
이방신을 섬기는 이들을 절멸한 하나님께 인간이 화해의 의미로 만들어
항상 그 날의 사건을 기억하는 놋뱀 말입니다. 이건 다음에 쓸게요.
이번 중동여행에서 제가 생각의 틀을 많이 바꾸어야 했습니다. 우리가 아는
아랍은 항상 분쟁과 공습, 항상 부르카를 입은 여인들의 폐쇄적인 사회와 같은 그릇된
서구가 유입시킨 이미지로 가득합니다. CNN와 알자지라가 우리가 그들에 대해 생각하는 방식
을 매우 이념적으로 조정해왔다는 것을 이번 여행을 통해 배웁니다. 그리고 크리스천인 저이지만 저들
모슬렘에 대한 이미지도, 그들의 생각과 방식, 행동의 양식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할 기회였구요.
첫날 정말 많은 곳을 돌아다녔습니다. 요르단은 교통편이 좋질 않습니다.
개도국들이 흔히 그렇듯, 대중교통이 발전하지 않아서 여행을 하려면 개인 기사를
두고 가격을 협상해서 다니는게 편합니다. 호텔에서 마련해줍니다. 아랍 사람들이 타인들
에게 특히 베풀어야 할 입장에 설 때는 정말 그들의 대접은 환대에 가깝습니다. 사실 요르단에 간
동안 3킬로나 살이 쪘다가 요즘 방송 때문에 다시 빼느라 애를 먹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여행의 기억까지
힘들었던건 아니었고요. 제 안에 있는 많은 것들을 저 사해에 녹여내고 오는 과정이었습니다. 염분이 만들어내는
수정결정처럼 마냥 짝사랑에 빠진 것도, 그렇다고 쾡한 눈으로만 바라본 것도 아닙니다. 여행은 이렇게
우리의 생각의 나침반을 항상 중립에 두고, 호감과 불호의 경계선을 찾아가게 하는 힘이 있죠.
이제부터 멋진 아랍의 여정들을 본격적으로 쓰려고 합니다. 많이 기대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