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 Travel/해를 등지고 놀다

북경여행 용경협-협곡 사이를 달리는 자전거를 만나다

패션 큐레이터 2013. 9. 30. 02:56


추석때 다녀온 북경 여행의 두번째 포스팅입니다. 이 포스팅을 보실 때

쯤 저는 이미 덴마크 코펜하겐을 향해 가고 있을 것입니다. 10일까지 북유럽의

코펜하겐과 스톡홀름, 헬싱키에 있습니다. 북유럽 패션 디자인 연구를 위한 첫번째 걸음

이지요. 부재하는 동안 블로그에 끊임없이 글이 오르도록, 이번 북경여행에 대한 

포스팅을 하나씩 올려 마무리 하도록 하겠습니다. 우중 북경의 기억입니다.



여기는 어디일까요? 바로 베이징에서 80킬로미터 떨어진 룽칭샤, 용경협입니다.

용이 누워있는 듯한 형상의 협곡이란 뜻이죠. 용경협은 인공댐을 통해 만든 자연의 풍광

입니다. 협곡을 둘러싸고 유유하게 바람의 지문을 녹여낸 깊음의 물과 바람, 협곡의 형상이 우람

차다는 말 밖에는 할말이 없습니다. 높이가 72미터, 길이 90미터의 철근 콘트리트로 지어진

댐입니다. 위용도 위용이려니와, 주변부에 철저하게 녹아있는 모습이 보기 좋습니다.



협곡을 오가는 곤돌라의 모습이 보이고요



댐 옆에 황색 용의 모습이 보이실텐데요. 바로 이 용은 관광지로 들어가는 

258미터의 아시아에서 가장 긴 실외 밀폐식 에스컬레이터입니다. 사람들의 모습을

찍기도 재미있으려니와, 올라가는 와중에 양쪽 벽면에 붙은 다양한 자료들, 협곡이 오랜 

세월을 통해 구축되다보니, 다양한 지질학적 가치들을 담은 지층들이 있습니다. 

이런 사진과 내용을 주요한 협곡 내 관광지와 함께 정리해 올려놓았습니다. 



저는 풍경화를 좋아합니다. 서양과 동양의 풍경은 무엇보다 

자연에 대한 관점을 이야기 하기 전에, 그 재료가 되는 자연의 실루엣

자체가 다릅니다. 특히 한국과 중국의 산수화를 볼 때마다, 중국의 산수는 저렇게

날카로운 고딕 스타일의 첨봉이 뭉개뭉개 피어나듯 솟은 풍경이 신기하기만 했는데요. 그래

서인지 중국화를 공부할 때마다 실제로 이런 풍경을 재현한 것인지, 혹은 있지도 않은 것을 정신의 

산수로 그린 것인지 참 궁금하기만 했습니다. 그림 속 세계 그대로더군요. 놀라왔습니다. 



추석 연휴 떠난 북경 여행은 아쉽게도 3일 내내 비가 왔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론 도시의 매연을 씻어내린 비로 인해 청신한 여행을 할 수 

있었고, 사선의 햇살을 바로 튕겨내는 환함 대신, 우기의 시간을 머금은 물기어린

도시의 풍경, 협곡의 풍경을 담을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1970년대 후반 장쩌민 수석이 이곳

용경협을 보고 바로 인공댐을 세워 오늘날의 풍광을 만들어냈죠. 유유히 흐르는 강물

을 막아 쓸모없이 녹조나 만드는 누구와 너무나도 대조되는 리더십입니다. 



산과 물.....말 그대로 산수화의 주요 소재입니다. 풍광은 붓이라는 

매개를 통해 종이위에 덧입혀집니다. 그린다는 표현보다 덧입혀진다는 뜻을

사용한 것은, 그것이 풍광을 바라보는 인간의 정서를 이식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

에서 쓴 것입니다. 중국 산수의 특징은 선에 있습니다. 붓이 종이에 닿는 순간, 작가의 정신이 

이입된 선이 그려지고 선들이 어울려 빛과 물과 산을 담습니다. 인간의 유전자가 선의 구조로 되어 있듯

선은 우리를 둘러싼 보편적 풍경을 해석하는 하나의 콤파스와 같습니다. 선을 그리는 일은 이리도

숭고하고 중요한 작업입니다. 선을 그리는 일은, 자연을 바라보는 우리의 의지를 조형하고

그것을 옳바른 길로 인도하기 위해 채찍질과 훈육을 함께 할 때 완성되기 때문이죠.

정치가 혼탁한 것은, 인간과 자연 사이에 선을 제대로 긋지 못해서입니다.



용경협의 풍경은 그 자체로 장관입니다. 작은 계림이라고 했다지요

용경협의 풍경을 담기 위해선 어떤 선이 필요할까요? 붓에는 힘이 들어가고

먹에는 물이, 선에는 멋이 있어야 합니다. 사혁이란 분이 쓴『고화품록』이란 책에는

오늘날 동양화의 절대적 기준이 된 육법이 정리되어 있습니다. 여기에는 기운생동과 골법용필

이란 원칙이 있는데요 사물을 그릴 때, 살아있는 기운을 포착하여 사물을 그리는 선에 에너지를 담으

라는 뜻입니다. 선을 그린다, 사물을 선으로 묘사한다는 것은 그 자체에 대한 묘사가 아니라

자연에 담긴, 혹은 내재된 그 기운을 우리 스스로 느끼고 내 몸 속에서 자연과 조응

하고 있는 기운을 뱉어내며 하나의 기운으로 수렴하는 일을 말합니다. 



배를 타고 연신 감탄사를 토하며 장관을 봤습니다. 



놀라운 풍경을 하나 봤습니다. 협곡 사이로 자전거 묘기를 보이는 

이들이 있더라구요. 단순한 묘기라고 하기엔 거의 기예에 가깝습니다. 놀랍지요. 

이 묘기를 선보이기 위해 어린아이들을 뽑아 가르친다고 들었습니다. 



번지 점프대입니다. 저도 여기서 시간만 맞았다면 한번 쯤 뛰어내리고 싶더라구요.

이날 비가 너무 많이 와서 번지 점프는 쉬었습니다. 뉴질랜드에 있던 시절부터 각종 번지점프는

다 뛰어봤던 지라, 너무나도 이걸 못해본게 아쉽기만 했습니다. 번지를 뛸때의 스릴이란 말할 수 없지요.



중국대륙의 풍경은 그들의 관점에선 용경협이 작은 계림일지 모르겠으나

제겐 결코 작은 풍경이 아니었습니다. 광막함 물의 깊이와 초록빛 세계, 그 안에서 

친환경연료를 이용해 띄운다는 배를 타고 협곡의 곳곳을 돌아다녔습니다. 그 세계는 결코 

계곡과 계곡 사이가 좁은 협곡일 뿐, 자체로는 거대한 풍경이었습니다. 인간의 자연 앞에서 무력하던

시절, 인간은 자연의 형상을 선을 빌어 묘사하며, 우리 안의 용기를 이끌어냈고, 좌절감 대신 저 거대한 자연을 

빚은 자의 지혜와 덕을 배웠습니다. 시간이 갈수록 우리는 삶 속에서 숭고에 대한 개념을 상실하고 

있습니다. 자연을 마주보고 느껴야 하는데 그럴 여유가 없는 것인지, 아니면 우리가 만든

인위적인 풍경 속에서 그저 만족하고 사는 것인지, 안타깝습니다. 용경협, 기억

에 남는 여행지입니다. 붓대신 펜끝이 그리는 선으로 세상을 좀 더 아름

답게 경험할 수 있는 글을 쓰고 싶습니다. 그것이 숙제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