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Holic/일상의 황홀

청년들의 인생을 위한 토핑 네 가지

패션 큐레이터 2013. 4. 30. 23:59

 

 

 

인생을 위한 토핑 4가지 


영화 한편을 봤다. 우디 앨런 감독의 <로마 위드 러브 Rome with Love>. 우디 앨런이 많이 변했다는 느낌. 영화 속 우디 앨런은 오페라 공연 기획자겸 레코드 회사의 전직 임원으로 나온다. 우디 앨런은 자본주의적 멘탈리티를 옹호하는 인물이다. 그는 자신의 딸이 결혼하기로 한 미켈란젤로란 이름의 변호사 집에 갔다가, 예비사위의 아버지가 엄청난 목소리의 소유자임을 발견한다. 이후 예비장인을 설득, 오디션을 보게 한다. 놀라운 건 샤워를 할 땐 최상의 목소리를 내던 그가, 푸치니의 오페라에 나오는 Nessun Dorma(결코 잠들지 말라) 를 부르는데 목이 메어 곡이 끊긴다. 결국 낙제점을 받고 떨어진다. 


그러나 결국 우디 앨런의 멋진 공연기획을 통해 자신의 목소리를 알리는데 성공한다. 감춰둔 꿈이 세상으로 나오는 순간 세상은 환호한다. 오늘 영화는 나래와 함께 보았다. 한예종 자유예술캠프에서 3년 전 만나, 지금껏 소식을 듣고 종종 수다를 떤다. 나래가 많이 변했다. 처음엔 너무 보이시해서 '울 아들'이라 불렀는데. 아가씨가 다 되었다. 영화 끝나고 이야기를 나눈다. 요즘 아이들의 최고 화두는 취업. 다행히 몇몇 기업에서 제의를 받아 한 숨 돌려도 되는 나래 조차, 걱정은 다르지 않다. 한양대에서 광고홍보를 공부하는 나래는 패션에 관심이 많다. 모델로 했고. 옷도 예쁘게 잘 입는다. 


고민이 많을 때다. 4학년 마지막 학기. 나래는 또래 다른 아이들에 비해, 생각이 깊다. 언제부터 자본주의적 멘탈리티가 대학 캠퍼스를 완전히 장악했을까? 입으로는 비전을, 꿈을, 멘토링을 이야기 하지만 결국 돈과 모든 걸 결부짓는 영혼의 습속을 아이들은 문신처럼 새기고 산다. 아이들만 탓할 수 없다. 선배 세대가 그런 세상을 만든 탓이다. 나래는 목적이 있는 여행을 좋아한다. 멋진 유적이 널브러진 곳들이 아닌, 후미지고, 버려진 동토의 땅을 표적으로 삼았다. 신앙의 측면도 있겠지만 그런 곳에서 더 많은 것을 보고 느꼈다고 했다. 마음 씀씀이가 고맙다.


프랑스의 철학자 몽테뉴는  "다른 생활습관에 자신을 노출시키고, 인간 본성의 무한한 다양성을 구경하는 것 보다 더 나은 삶의 학교는 없다"라고 말한다. 나는 아이들이 여행을 통해 몽테뉴가 실천하고자 했던 여행의 혜택을 누리는 걸 보고 싶다. 몽테뉴의 또 다른 말을 인용해본다. "낯선 곳에서 무엇을 볼지는 모르지요. 하지만 무엇을 피해 도망치는지는 아주 잘 알고 있답니다" 우리는 여행을 통해, 객관화된 우리 자신의 실체를 자세히 본다. 환희와 찬연한 즐거움, 지금껏 누려온 생의 리듬과 다른 리듬에 몸을 맡긴다. 또한 이와 동시에 '무언가로 부터 피해 도망치려 하는지'도 보게 된다. 왜 피해가려 할까? 


두 가지 이유 때문일거다. 기존의 관성이 편한 것을 추구하기 때문이고, 두렵기 때문이다. 앞으로 가는 일은 두려움을 내재한 발걸음이다. 요즘 대학생들은 자기소개서를 쓸 때 개당 2만원 정도의 돈을 내고 컨설팅을 받는다고 한다. 컨설팅 업체에게 절대로 돈 주지 마라. 컨설팅은 항상 모범답안을 전제로 하는 행위일 가능성이 높다. 강남 논술학원 아이들의 답이 엇비슷한 것과 같다. 나 또한 경영컨설턴트였고, 지금도 패션기업과 트랜드 분석회사에 자문을 한다. 자기소개는 철저하게 자신의 경험과 사유의 몫을 드러내야 한다. 인위적으로 스토리를 만든다손, 그것에 점수를 부여하는 대기업이 있다면 이따위 회사는 '안가는게' 인생을 위해 좋다. 입으로는 창의성과 스토리의 가치를 말하면서, 정작 실무진들이 그 가치를 아는 기업이 아닐 것이므로. 


요즘 아이들이 스펙타령을 하면서도, 미지에 대한 두려움을 이겨내지 못하고, 자기 자신이 되는 법을 외적 멘토링에만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이런 와중에 나래와의 대화는 항상 견고한 중심이 서 있는 모습을 보여줘서 쌤으로서, 세컨 대디로서 기쁘다. 정직성과 단호함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대다. 어린줄 알았던 나래가 훌쩍 성장해 있었다. 우리가 여행을 하는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몽테뉴의 말을 빌어 정리한다. "작은 장소에 묶여있는 사람은 작은 근심에 빠진다" 라고. 큰 곳으로, 가는 것은 작은 근심의 덫에서 한 발 물러나, 내 인생을 장식할 토핑거리를 찾는 것이다. 우디 앨런의 영화 속 토핑은 기억과, 명성, 스캔들, 꿈이라는 요소다. 청춘의 어느 한 순간, 기억하게 될 멋진 날을 위해 땀흘리는 아이들에게, 울 딸 나래에게, 세컨 대디는 딱 한마디만 한다. 소설가 공지영씨가 쓴 말이지만 참 좋다. '네가 뭘 하든 나는 너를 응원할 것이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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