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용의 서울풍경전 리뷰-울 아빠의 수염이 빨갰을 때
서울역사박물관에 갔다. 예전에 참 몰랐던 박물관 그러나 최근 들어
그 가치를 조금씩 인정하고 배우고 있는 곳이다. 여느 역사박물관과 달리 이곳은
서울이란 도시의 역사를 담는다. 대한민국의 심장부로서, 거대한 대도시적 삶의 형식을 가장
먼저 받아들이고 발전시켜온 우리들의 또 다른 자화상. 근대란 시간대가 시작되면서
도시는 그곳을 사는 모든 인간들의 정체성을 조형하는 장소가 되었다.
원로작가 김한용 선생님이 찍은 고풍스런 서울의 모습이 고스란히 걸려있다.
종군기자에서 전쟁 이후, 폐허가 된 서울, 일제강점 하의 백화점이 생기고 소비혁명의
씨앗이 발아되던 서울의 모습, 그렇게 서울의 현재는 역사적 연속성의 옷을 입는다. 도시는 그렇게
태어나고 자라고, 성숙하며 쇠퇴한다. 인간의 문명은 도시를 만들고 그 속에서 생사화복을
나눈다. 패션도 도시란 물질적 공간없이는 존립하기 어려운 사회적 현상이었고.
번잡하기만 서울의 삶, 참 길다면 긴 생의 터우리를 이 서울이란 곳에서
보내왔지만, 지나온 발자취랄까, 도시의 풍경을 눈에 담는 일은 은근히 찰지고 재밌다.
1947년 『국제보도』의 사진기자를 시작으로 예술장르와 광고, 보도와 포토저널리즘이라는 다양한
영역을 넘나들며 온 생을 사진에 바쳤던 김한용 선생님의 작품들이다. 마치 영화 <스모크>
처럼 그 또한 같은 시각 남산 위에서 변화하는 서울의 실루엣을 찍었다. 놀라왔다.
내가 살고 있는 서울이 이렇게 변해왔구나 하는 작은 인식이 생긴다.
조선호텔이나 화신 백화점의 모습도 새롭기만 했다. 배추가 산처럼 쌓여있는
아현동 시장, 장농을 지게로 지는 짐꾼, 내 어린시절까지도 동네에 들어오곤 했던 100원
동전을 주면 회전목마와 함께 볼 수 있었던 만화경을 보는 어른들의 모습까지. 반세기 전 서울의
모습이지만, 지금의 세대에겐 생경하기만 할 것이다. 사실 내게도 그렇다. 배추가 쌓인 모습
은 김장철이 되면 시장에서 종종 보던 풍경이라 그리 새롭진 않지만, 이외에 다른 모습은
하나같이 '우리에게도 이런 때가 있었구나'라고 끝내고 마는 어느 한켠의 추억이다.
모든 도시는 세월의 때를 입지만, 그 속에서 새롭게 부활하고 재생한다. 멋과 유행의
도시 파리도 1853년 나폴레옹 3세의 정치적 목적에 따른, 오스만 남작의 파리 개조사업을 통해
오늘날의 파리로 태어난 것이다. 비스타(VISTA)라고 불리는 탁 트인 12개의 넓찍한 도로를 내고 중앙의
광장엔 개선문이 있는 에투알 광장. 한 마디로 별 모양을 한 중앙을 중심으로 뻣어있는 파리의 모습은 그때 태어난
것이다. 쉽게 말해 폭동과 소요가 많던 시절, 민중들에게 바이케이드를 치지 못하게 하기 위해 도로를 넓혔고,
소요사태를 일찍 감지하고 억누르기 위해 비스타를 만든 것이었다. 물론 서울은 이런 식의 발전궤적을
긋진 않지만 도시는 이런 식으로 태어나고 형성된다. 서울의 발전의 파리와 달리 동시다발적으로
움직이다 보니 디자이너들도 손댈 수 없는 난개발의 상징이 되기도 했다. 지금도 서울은
도시풍경의 디자인이란 관점에서 보면 홍역을 앓고 있는 아픈 도시 중의 하나다.
사진 속 정경들을 보는 60대 어르신들의 푸념과 이야기가 전시장에 들린다.
나도 모르게 귀를 쫑긋 세우고 그들의 이야기를 듣게 된다. 추억의 절반은 유년의 기억
이며, 그 시간의 순수성으로 돌아가기를 원초적으로 꿈꾸는 우리들이다. 가난했어도 그래도 사람
살만 했다고 말하는 이들이 많고, 이웃간의 정도 많았다고. 현재를 한탄하는 것은 어렵다.
잃어버린게 아니라, 잠시 우리가 '우리의 가치를 유보하고 있는 것'이라고 믿는다.
고등학교 시절 독일작가 볼프 디트리히 슈누레가 쓴 <아빠의 수염이 여전히
빨겠을 때>란 소설이 떠올랐다. 현재만이 가치가 있고, 그 속에서 영원성의 기준을
찾아내야 하는 패션의 논리에선, 과거는 종종 진부한 기억의 편린으로 남기 일쑤다. 그럼에도
과거는 지나온 시간들이 아니라, 우리가 언제든 사용할 수 있는 상상력의 카탈로그처럼, 때론 빠른 보폭
으로 걷느라 보지 못했던 것들을 우리 안에서 복원시켜주는 힘을 가졌다. 서울이란 도시의 면모를
다시 한번 사진을 통해 바라보는 작업은, 이러한 마음가짐을 내 안에 심어주었다.
지금 안방극장에 노년의 나이로 등장하는 배우들의 젊은 날의 모습을
보는 재미도 솔솔하다. 작가 김한용 선생님께서 광고사진의 대부로, 1세대로 활약한
탓에 서울의 풍경과 더불의 미인의 얼굴 전도 함께 열린다. 지금보면 촌스러운 화장품 광고나
포스터들이지만, 되집어보면 당시의 소비자들에겐 어필하기 위한 전략이었다. 그런 관점에서 외국에선
백화점의 카탈로그만 모아서 그 역사를 꾸려놓은 역사책도 있다. 당대 좋아하는 상품군, 디자인은
당시 사람들의 소비를 둘러싼 감수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니 말이다. 사미자 할머니의
젊은 시절 사진을 보았다. 정말 김태희 씨만큼 예쁘고 멋지셨다. 지나간 것들의
추억, 그 속에서 지금 우리가 현재를 감사할 수 있기에 사진 속 빛의
입자로 기억된 그 시간들이 감사하다. 삶은 그렇게 지속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