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은행 임원 특강 후기-럭셔리와 바람나고 싶은 당신에게
겨울 빛이 좋은 하루다. 오늘 4시부터 하나은행 임직원 연수 특강의 한 부분을
맡아 강의를 진행했다. 2년전 부터 지속적으로 하나은행그룹과는 연계를 맺고 있지만
지난번 연수원이 아닌, 집 근처(?)의 워커힐 호텔에서 프로그램을 진행한 터라, 나로서는 쾌재를
부를 수 밖에 없었다. 사무실에서 걸어서 5분 거리이니 강사로서는 아주 좋은 경우다. 사실 강의를 하고
나면 급격하게 에너지가 떨어진다. 이건 젊은 날에도 마찬가지였다. 그만큼 강의 하나에 온 힘을 하다기에 생긴
일이다. 특히 강의기관에서 청강을 하시는 분들에게 내 책을 전부 사서 드리는 경우는 일일이 싸인도
해드려야 하고, 멋진 덕담도 적어야 한다. 나는 이런 시간이 정말 좋다. 내 미약한 힘으로
세상을 향해 메시지를 전할 수 있으니 말이다. 공감의 눈빛을 얻을 때 힘이 난다.
난 복식사와 패션미학을 서양미술을 통해 가르친다. 최근에는 영역을 넓혀서
한국미술로 한국복식사를 가르치기도 한다. 여기에도 서양과 동양을 결합해 독특한
컨셉의 강의를 한다. 여기에는 무엇보다 아름다움을 향한 인간의 의지와 색을 드러내는 방식
발색이라 불리는 그 본능이 동서양이 그다지 차이가 없음을 말해주는 것이 필요하다. 럭셔리를 비난할
생각보다, 럭셔리란 것이 인간의 역사에 왜 흘러들어왔고, 우리는 그것을 열망하며, 그 속에서 각자가 다양한
해석과 구별짓기와 자신만의 정체성을 찾으려고 하는 것일까? 이런 이야기들을 하는 과정에서 청강
하시는 분들의 각자 이야기를 끄집어 내기도 한다. 1인칭의 이야기가 우리의 강의 서사에 들어
와서 하나로 뭉쳐지는 것이다. 서로가 반성할 것들과 열망 속에서 우리가 내려놔야 할
것들을 다시 한번 살펴보는 것. 그런 마음의 여백을 사람들에게 주는 것이다.
이종송 <바람난 봄날> 162×65 cm 흙벽화 기법에 천연안료, 2008년
사람들은 럭셔리에 대해 철학하기를 포기한다. 럭셔리란 단순하게 돈으로 구매
할 수 있는 것으로 고정하는 순간, 럭셔리는 사실 인간의 역사에서 퇴행의 길에 접어들게
된다. 나는 이종송의 작품을 볼 때마다 진짜 멋진 한 인간의 럭셔리를 생각한다. 회화과에서 미술을
가르치는 그는, 모터 사이클을 사랑한다. 질주보단 천천히 이 땅을 다니며 자연의 풍광을 담는 일을 해왔다.
그에게는 항상 전통의 변주가 새로운 매력으로 등장한다. 자연과의 관계맺기를 그림으로 표현하기 위해 그는 우리의
반구 암각화를 비롯한 동양화의 다양한 코드를 빌려온다. 특히 흙벽화 기법과 우리 내 자연에서 나는 천연 안료
만을 이용하며 산을 그리고 강을 그리고, 길을 내며, 그 위를 모터 사이클을 타고 달린다. 멋진 인생이다.
왜 그는 바람난 봄날이란 제목을 택했을까? 그의 그림 속에 묘사된 이 땅의 찬연한 계절감 때문
일까? 그 보다 더 큰 뜻이 있지 않을까? 이 땅에서 바람이 난다는 것은, 부정적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사건들을 떠올리게 하는 단어다. 삶을 흐트러뜨린달까?
이종송 <바람난 봄날> 91×73 cm 흙벽화 기법에 천연안료, 2008년
그는 분명 바람이 난 듯 하다. 자연과 바람, 그 속에서 헬멧을 쓰고 달리는 그는
분명 바람이 난 것이다. 바람이 어디에서 불어오고, 어디로 흘러가는지 알수 없으나, 그
기운을 우리는 안다. 럭셔리를 사용하는 일과 소비하는 일도 화가의 모습 같으면 좋겠다. 정말 좋아
해야 한다. 누군가의 경쟁의식, 혹은 배타적 집단에 소속되기 위한 필수적 기표로서의 소비를 넘어, 정말
좋아하는 일, 좋아하는 것을 사면, 그 제품 혹은 브랜드를 사랑하게 되고 그들을 타인들에게 권유하게 된다. 어찌보면
진정한 럭셔리는 굉장히 종교적 속성과 그 전파방식을 갖고 있다. 250년의 역사가 넘는 필기구를 만드는 회사.
그 펜으로 자신의 최종 작품의 사인을 해야 만 분이 풀리는 작가와 영화감독, 조각가, 배우, 다양한
셀러브리티를 봤다. 그들은 그저 단순하게 그들의 명성을 위해 그 제품을 쓰는 게 아니다.
2대 째 물려 쓰는 이도 있으니 말이다. 진짜 럭셔리, 명품은 이런 것이어야 하지
않을까? 우리 내 암각화가, 현대의 터치를 빌어 우리시대의 현대적 풍속화가 되는 기적이
여기에 있다고 하면 과언일까? 마흔이다. 언제부터인가 정말 바람이 나고 싶었다. 화가가 모터
사이클을 타고 자연을 무진하듯, 나는 패션이란 오브제의 역사들을 캐물으며 여기까지 왔다. 우리 사회가
만들어야 할 명품의 철학, 패션의 논리, 럭셔리 이후의 진정한 럭셔리의 미학을 찾아보고 싶었다. 전통을 현대화하고
우리 안에 있는 가능성을 믿고, 그 가능성을 다양한 작가들의 상상력을 통해 풀어 보는 일. 어찌보면 지금 껏
내가 본업으로 살아온 일과 너무나 달랐다. 그래서 힘들었다. 사람들은 이 일이 화려해 보인단다. 방송
타고 영화 만든다고 하고, 다큐 찍는다고 하니 있어 보이는가 보다. 내게 있어 럭셔리는 이러한
풀어가는 과정 자체를 즐기는 것이다. 오랫동안 잊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요즘들어
진짜 럭셔리가 뭘까? 나름대로 해답을 찾으려고 나 자신에게 물어본다. 이런
바람은 뭐 쫌 나도 괜찮지 않을까 싶다. 내 안에 질문하고 답할 바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