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Holic/일상의 황홀

우중산책-리좀 포레스트에서 보낸 한담의 시간들

패션 큐레이터 2012. 8. 17. 18:11

 

 

 


제천 영화제에 내려간지 올해로 4년차, 이제 파티석상에 들어서면 사람들이 꾸준히 오는 멤버들을 알아보고 서로 교제하는 수준까지 같으니 저로서는 영화제와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맺어지는 것 같습니다. 물론 제천이란 도시를 알게 되고, 청풍호반의 풍경과 쉼의 장소들을 익히는 것 또한 여행길의 작은 즐거움이죠. 의천 제림지에서 해마다 열리는 거리의 악사 프로그램에 올해도 빠지지 않고 갑니다.



사실 올해는 항상 앞자리에 앉아서 심사위원으로 동석하는 지혜 누나를 뒤로 하고 자리를 옮겨 공연장이 보이는 옥외카페에서 막걸리와 해물파전을 시켜놓고선, 지인분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네요. 최근 재미있는 일거리가 하나 생겼거든요. 지인 분중 한 분의 이야기를 영화로 옮긴답니다. 암스텔담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멋진 사랑 이야기가 될 공산이 커졌습니다. 물론 단순한 연예 이야기는 아니고요. 시대의 아픔과 다양한 문화적 약호가 함께 곁들여지게 될 거라네요.



제가 매년 제천에 내려가면서 제 지인들에 대해 언급을 했지만 제대로 소개를 했던 적이 없었던 것 같아, 오늘은 제대로 인물평을 한번 올려봅니다. 사진을 위해 특별 포즈를 취해준 두 분이 있으니 왼쪽은 음악감독인 심현정쌤, 오른쪽은 영화 프로듀서, 일명 강철여인이라 불리는 김효정씨입니다. 이 부분 이제 영화제를 통해 알게 된지 오래됩니다만, 알면 알수록 매력 넘치는 분들이에요. 다큐멘터리 <북극의 눈물> <아마존의 눈물>을 기억하시는 분이 있다면, 장엄한 풍광을 더욱 빛나게 해주었던 음악을 떠올려보세요. 바로 그 음악을 맡았던 감독님입니다. 물론 영화로도 유명하지요. 원빈 주연의 <아저씨>그 영화를 수 차례 봤지만 이 영화의 템포는 철저하게 음악을 통해 만들어졌습니다.


연세대 작곡과를 졸업하고 뉴욕에서 음악을 공부한 재원답게 사실 심 감독님의 영화음악은 다양한 스펙트럼을 자랑합니다. 영화 <올드보이>에서와 <아저씨>의 정조는 비슷한 듯 하면서도 철저하게 인물의 캐릭터와 사건의 진행과정에서 음향과 선율이 내러티브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철저하게 파악하고 있는 '고수의 검'처럼 느껴지기도 하죠. 제천에 갈 때마다 헤나 염색을 하는게 약간 유행처럼 되었는지 우리 팀에서 저만 하지 않고 왔네요. 옆의 김효정 피디는 사막 마라톤으로 유명합니다. 6박 7일 250킬로미터의 열사의 사막 위를 뛰는 마라톤을 세번이나 종주해서 그랜드 슬램을 달성했죠. 제가 좋아하고 기억하는 영화 중에는 그녀의 손길이 닿은 작품들이 많습니다. <역도산><행복한 장의사><싱글스><호로비츠를 위하여>등 이외에도 많은 작품이 있죠. 저도 김 피디 따라서 사막 마라톤에 한번 참여해볼까 생각중입니다. 인생을 바꾸는 시간이 될 수 있을까요?



사진 속 주인공은 영화감독 정윤수쌤입니다. 영화<아내가 결혼했다>를 연출하신 분이죠. 이외에도 많은 필모그라피가 있습니다. 영상미학을 제대로 공부하신 분 답게, 감독님과 하루 방을 같이 썼는데요. 이날 일본과 한국의 축구 3-4위전이 있던 날이었습니다. 미술과 영상, 패션 등 다양한 화제를 능수능란하게 대화하고 풀어내시는 모습을 보니, 역시 현장에서 오랜동안 활동하신 면모랄까, 진짜 내공이 느껴지더라구요. 감독님은 목 뒤에 헤나염색을 하셨고요. 인증샷 찍어 올려달라고 하셔서 이렇게 합니다. 
 

 

자 이제 우리들의 휴식터, 리좀 포레스트로 왔습니다. 비가 온터라, 물안개로 가득하게 시야를 메운 초록숲의 향은 청신한 물비린내와 나무들의 조근조근한 목소리가 함께 섞여들어왔습니다. 폐쇄적인 공간이지만 그만큼 입주한 이들을 위한 최상의 휴식을 담보하기 위한 노력들은 곳곳에 보였습니다. 고요한 숲은 생을 둘러싼 초록빛 풍경의 속살을 이룹니다. 고요의 정맥위를 토담토담 걸어가며, 가쁜 숨을 조금씩 잘라서 말리고, 촉촉하게 적셔보는 시간. 산책길이 고마왔습니다.


 

드라마 <시크릿 가든>의 촬영지로 사용되면서 사람들에게 알려진 공간이라고 하지만, 단지 텔레비전에 방영된 것을 넘어, 휴식을 위해 한번쯤 호사를 부리고 싶은 곳이긴 했네요. 일관된 쉼의 철학과 이를 받쳐줄 공간이 없는 나라에서, 사실 쉼의 공간이 점점 폐쇄적으로 자본을 누적한 자들의 공간으로 변모하는 것이 안타깝긴 하지만, 사실 글 중독으로 인한 피부병을 오랜동안 앓는 저에겐 너무 좋은 공간이었던 건 인정해야 겠습니다. 야트막한 오르막길과 내리막길, 이중의 포도를 따라 걷다보면, 우렁찬 송화향 발산한느 숲의 성감대 속으로 마냥 걷고 싶은 생각이 듭니다.

 

 

걷다가 배고프면 카트를 타고 식당으로 향합니다.



취사가 안되는 관계로 철저하게 식사는 외부 혹은 내부에서 해결해야 하죠. 한식당에 들러 간단하게 요기거리를 찾았습니다.

 

 

아침이 막 끝난 부산함의 와중에서 점심 준비로 바쁩니다


 

여름특선이라 다양한 냉면도 먹고 싶긴 했는데요. 아침을 놓친터라 밥을 먹고 싶어서 곤드레밥 정식을 시킵니다.
 


솔직히 표현하면 음식맛이 딱히 맞진 않았습니다. 조미료 없이 자연스레 내놓은 음식이라 그런 건 아니고요. 평범한 맛이어다고 평하겠습니다. 그래도 딱 한가지 인정하고 싶은 건, 먹고 배가 부담이 되거나 하지는 않았습니다. 아주 편했거든요. 
 

 

우중산책을 마치고, 식사를 하며 오랜 시간 수다를 떱니다. 행복한 사람은 시계를 보지 않듯, 자연 속에서 어울리며 만들어내는 표정은 그 어느때보다 인위적인 굳어짐이 풀린 자연스러움 그 자체입니다. 
 

 

이러다가 내년엔 영화제에 가서 영화는 안보고 자꾸 휴식에만 눈을 돌리게 될까 두려운걸요. 그래도 좋았습니다. 사람이 쉬어야 뭔가 조금이라도 나오지요. 몸이 많이 가려웠는데 많이 가라앉았습니다. 우중산책의 시간, 흐릿한 시야와 풍경 속에서 함께 손잡고 걸을 수 있는, 언제나 공감의 연대를 만들어낼 수 있는 친구들이 있어 행복한 오후였습니다.



하늘소도 쉬어가는 곳.



발걸음을 함께 할 수 있는 이들이 있는 삶이고 싶습니다. 저의 초록 캔버스화가 지치지 않는 초록의 열정을 발산할 수 있도록, 그 힘과 사랑이 제가 쓰고 기획하는 모든 책과 전시와 영화에 오롯하게 묻어날 수 있도록 그저 기도하고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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