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 Fashion/패션 큐레이터의 서재

팝아트의 황제 앤디워홀, 타입캡슐엔 뭐가 담겼을까?

패션 큐레이터 2011. 12. 30. 02:28

 

오늘 앤디 워홀을 다룬 독특한 한 권의 책을 샀다.『앤디 워홀 타임캡슐』이 책은 피츠버그의 워홀 미술관에 소장된 워홀의 ‘타임캡슐’에서 그대로 복제한 20가지가 넘는 자료를 직접 만져볼 수 있도록 구성한 책으로, 앤디 워홀의 생애와 작품들을 들여다보고 그의 감수성과 독특함에 공감할 수 있도록 디자인된 점이 눈에 띤다. 워홀이 직접 그린 책 <나의 정원 바닥에서>라든가 앤디 워홀이 디자인한 연하장, 생의 첫 전시를 알리는 엽서, 죽기 전 마지막으로 병원에 갔을 때의 택시 영수증, 1966년 뉴욕의 레오 카스텔리 화랑에서 전시한 <암소 벽지>, 워홀이 ‘캠벨 수프’ 회화에 사용한 스텐실, 워홀이 발레리 솔라나스로부터 총상을 입고 병원에 입원했을 때 에디 세즈윅이 보낸 문병카드 등  등, 독특한 실제자료들의 복제본이 들어있다. 그래서 책도 두툼하다.

 

 

대공황시기 피츠버그에서 보낸 워홀의 어린 시절부터 1950년대 뉴욕으로 건너가 일러스트레이터로 성공하기까지, 그리고 악명 높은 팝아티스트, 언더그라운드 영화제작자, 저술가, 출판인,수집가, 한 시대의 기록자로서 진정한 하나의 아이콘이 된 워홀의 진면목을 볼 수 있다. 무엇보다 앤디워홀과 패션이란 항목에 그가 그린 패션 일러스트의 선에 반했다. 예전 브룩클린 미술관에서 그의 패션전시를 했을 때, 자료로만 접했었는데, 작은 섹션이나마 그의 패션관련 상상력을 보게 되어 기쁘다. 최근 몇 년새, 패션의 예술화 경향이 뚜렷해지고 패션산업과 예술의 콜라보레이션이 더욱 견고해지는 시점에서 다시 한번 그 시초가 되어준 앤디 워홀을 풍성한 실제 사료들과 사진, 소장품을 통해 볼 수 있다. 

 

앤디 워홀은 대학에서 미술의 요소를 산업에 적용하는 픽토리얼 디자인으로 학사 학위를 받았다. 당시 2차 세계대전 이후 전쟁의 참상을 겪은 다른 클래스메이트들과 달리 그는 도시에서만 살았다. 당연히 그림을 통한 재현의 세계엔 차이가 컸다. 결국 그림도 작가의 정체성이 묻어나는 지문과 같은 것일테니 말이다. 화가의 형은 화물트럭에 야채를 싣고 다니며 팔았는데 워홀은 형의 일을 도우면서 세심하게 사람들을 관찰하고 스케치로 남겼다. 이 당시의 작품들은 비록 공모전에서는 떨어졌지만 도시적 면모가 끓어넘치는 당돌한 면모는 많은 비평가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무용과 패션 등 도시에서 경험할 수 있는 연극적 상황들은 그의 상상력에 불을 지핀 원재료들이다. 책을 읽다가 발견한 무용가 마사 그레이엄의 판화가 눈에 들어온다. 너무 멋지다. 미술로 무용의 역사를 풀어보는 것이 내가 써야 할 책의 일부 중 하나인데, 실제로 책에 이 이미지를 넣는다면 도판료만 수백을 줘야 할거다. 미술책 저자들이 힘든 부분 중의 하나다. 그러나 뭐니뭐니 해도 내 눈길을 끄는 건 그가 그린 패션의 이미지들이었다.

 

앤디 워홀은 대학시절 조셉혼 백화점의 디스플레이 부서에서 일을 했다. 이 당시 고객들의 욕망과 접객기술, 무엇보다 디스플레이를 통해 옷의 형상을 전시하는 방식에 눈을 떴다. 전시를 위한 아이디어를 찾아 수많은 패션잡지들을 읽었으니 그 황홀의 세계에 빠지는 건 당연한 터였다.

 

 

그는 대학을 다닐 때, 미술 비평 수업에서 들었던 첫번째 질문을 평생 간직하고 살았다. '당신에게 가장 소중한 오브제는 무엇입니까"란 질문이었다. 누구에게나 기억되는 사물이 있을 것이다. 그에게는 백화점에 가득 쌓인 캠벨수프 상자들이 헐리우드를 비롯한 집적된 자본주의의 가장 핵심을 표현한다고 믿었던 것 같다. 이번 달 패션관련 자료들을 대거 구매했다. 매달 200만원 정도의 자료를 사모으지만 이번에는 복식사 관련 사전과 논문 모음집이 포함되어 예산이 거덜날 정도다. 그래도 배는 부르다. 나의 타임캡슐에는 무엇이 남을까?

 

그러고 보니 타인이 갖지 못한 꽤 진귀한 것들이 많다. 세계적인 미술경매장을 다니며 사 모았던 클래식 의상들과 각종 패션 관련 도록들, 무엇보다 그 도시의 패션과 정신을 함축한 한 순간의 느낌을 찍은 나의 사진들, 그리고 패션을 담론으로 풀어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4천여 권의 각종 역사, 인류학, 미학, 문학, 영상이론책들이 빼곡히 꽂힌 내 서재다. 나의 서재는 나의 상상력의 기반이자, 적어도 이 땅에 패션을 인문학적으로 사유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잉태하고자 노력하는 내 열정의 서랍이다. 그 서랍을 열때마다 반성한다.

 

 

 Famous Jewelry Collectors의 번역을 마치고 2차에 걸친 교정을 보았다. 어제 최종 교정지가 번역을 맡았던 내게 돌아왔다. 옮겼던 문장을 다 뜯어내고 싶은 마음이다. 글을 쓰는 것 보다 번역이 더 어렵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이번 보석책 번역은 쉽지 않았다. 무엇보다 대형서점에 가도 보석학이란 영역 하의 책들이 너무 소수인데다 제대로된 자료를 담고 있는 책도 많지 않다. 보석을 세팅하고 렌더링하고, 깍아서 아름다운 조형의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과정, 그 지난한 과정을 설명하며 만나야 했던 너무나 많은 단어들이 책 속에 새겨져 있어서 나로서는 애를 많이 먹었다. 하지만 1년 가까이 질질 끌던 번역을 마무리 하며 또 내 자신에게 감사한다.

 

그 과정에서 배운 보석에 대한 새로운 지혜들, 역사와 문화, 현대 보석세공의 기술과 미학들은 앞으로 미술을 통한 복식학의 체계를 세우는데 큰 역할을 할 것 같다. 패션은 단순하게 한 벌의 옷을 입은 인간을 설명하지 않는다. 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한 인간들의 기술을 포괄하기에 옷과 헤어스타일, 메이크업, 보석을 비롯한 액세서리, 이 모든 것들을 가능케 하는 '패셔너블'의 논리를 익혀야 한다. 내년 봄을 기다리고 있다. 내 인생의 참 멋진 한 권의 책을 쓰고 싶었다. 패션의 인문학을 선보이고 싶었다. 이제 곧 보여질 것 같다. 참 기분좋다. 올 한해 버겁도록 바쁘고 수많은 스케줄로 몸과 영혼이 축나긴 했지만, 그래도 이만하면 '그래....인생아 고맙다'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