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 Fashion/패션 필로소피아

뉴욕에서 만난 패션 아이콘-다프네 기네스 전 리뷰

패션 큐레이터 2011. 12. 21. 00:11

 

 

이번 뉴욕 여행에서 만난 다양한 전시들 중에서 역시 기억나는 건 패션에 관한 전시다. F.I.T 뮤지엄에서 본패션 아이콘 다프네 기네스의 전시였다. 7th 애버뉴를 흔히 패션 애비뉴라 부른다. 남북으로 35번가에서 41번가에 걸쳐 있는 이곳은 뉴욕의 대표적인 의류업체들이 몰려 있는 곳이고, 흔히 의류지구라고 해서 가먼드 디스트릭트라고 부른다. 거리 위에는 만들어 놓은 재봉사 조형과 패션 특구임을 상징하기 위한 바늘 꽂힌 단추 조형이 눈에 들어온다. 남북전쟁의 여파 속에서 군복생산과 전미 여성복 생산의 60퍼센트를 떠안으며 활황을 맞았던 패션 특구였다. 1910년에 매디슨 스퀘어를 중심으로 시작, 1920~1950년대를 지나며 의류회사와 공장·부자재·원단 회사들이 이곳에 자리를 잡았다. 72년 뉴욕시가 7번가를 ‘패션애비뉴’로 명명하면서 뉴욕시에는 의류산업에 종사하는 인력이 40만명에 이를 정도로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했던 곳이다.

 

 

우리로 치면 동대문 패션상가와 비견할 수 있는 이곳에는 파슨즈와 F.I.T와 같은 세계적인 패션 학교들이 자리한다. 특정 산업군이 발전하기 위해 필요한 전제조건이 바로 클러스터링이다. 말 그대로 인접 산업들이 '덩어리'로 모여 있을 때, 업종간의 협력과 상상력의 교류가 커지고 결과적으로 경쟁력의 상승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가먼트 디스트릭트는 철저하게 패션에 관련된 모든 것들을 통합해서 한 자리에 위치함으로써 이런 자존심을 세웠던 곳이었다. 패션 정보 개발과 컨설팅, 디자인, 원단 및 부자재 구입, 패턴, 샘플, 생산, 포장, 쇼룸, 판매와 런웨이까지 원스탑으로 모든 걸 해결할 수 있는 곳이었다. 90년대 중반에 들어오면서 원가절감을 위한 생산설비의 해외유치 물결이 불었고, 이와 함께 해외 아웃소싱 비율이 기하급수적으로 늘면서 메이드 인 유에스에이의 위상은 약해졌다. 사실상 지금의 가먼트 디스트릭트는 위기다. 정체성의 위기며, 경제성의 위기라고 볼 수 있다. 뿔뿔히 헤어지는 이들이 많으니 더욱 심려가 크다.  

 

 

패션산업은 부침도 심하고 창작성에 대한 압력도 그만큼 심하다. 특정 섹터가 단위로 묶여있을 때 산출할 수 있는 시너지 효과를 무시하고 점차 역사 속의 한 장면으로 가먼트 디스트릭트가 사라질까 두렵다. 사실 대량생산을 할 수 없는 하이엔드 디자이너들과 젊은 디자이너들, 중소 업체들은 이런 상황이 두려울것이다. 우리라고 다를바가 있는가? 이 패션 애비뉴는 뉴욕 컬렉션에 참가하는 하이엔드 디자이너들과 중국 등지에서 대량 생산을 할 수 없는 영 디자이너, 중소 패션업체들은 항상 큰 힘이 되어 왔다.

 

이곳 가먼트 센터에 위차한 샘플룸과 생산공장이 돌아가지 않는다면, 더이상 잭 포젠과 두리 정, 프로엔자 숄러, 피터 솜, 데렉 렘, 타쿤과 같은 스타급 영 디자이너들은 고사하고 만다. 가먼트 센터의 위기는 곧 우리나라의 패션 산업에도 그대로 적용할 수 있다. 동대문 패션 특구가 최근 대기업에 아이디어를 수혈해주는 아이디어 센터로, 디자이너들의 인큐베이터로 성장하고 있다는 소식은 일견 반갑다. 단 대기업의 특성상, 그들의 아이디어만 빼먹고 인프라의 확충이나 저변의 확대에 관심을 갖지 않는다면 이는 조기의 실패로 끝날 가능성이 크다.

 

 

별의 별 생각들이 머리 속을 떠다녔다. 그 와중에 F.I.T에서 열리고 있는 다프네 기네스의 전시를 보러 갔다. 이번 다프네 기네스전은 이전의 박물관 전시와는 다른 속성을 갖고 있다. 패션전문학교 내의 부설 박물관 답게 기존의 컬렉션이나 디자이너 중심의 회고전, 혹은 패션의 개념들을 전시로 풀어가는 종류가 많았다. 하지만 이번 전시는 현대 패션의 중추가 되고 있는 패션의 아이콘, 바로 패셔니스타란 관점에서, 그의 소유물과 컬렉션, 그녀의 개성을 응축한 패션의 세계를 디자이너의 작품과 대조하는 전시다. 패션의 중심을 생산자에서 소비자인 개인과 그녀의 옷장을 중심으로 풀어간 것이다. 그래서 신선했다.

 

 

다프네 기네스는 아일랜드 출신의 아티스트다. 기네스 맥주로 알려진 제조업체의 상속녀이기도 하다. 1994년 국제 베스트 드레서 명예의 전당에 그 이름을 올릴 만큼, 그녀가 가진 패션에 대한 감각은 남달랐다. 팝아티스트 앤디워홀의 친구였던 언니와 함께 80년대 중반 뉴욕에서 살았던 그녀는 19살의 나이로 당시 그리스의 선박왕의 아들, 사이프로스 니아코스와 결혼했다. 12년 후 이혼과 함께 2천만 파운드란 엄청난 위자료를 챙겼다. 거액의 위자료 때문은 아니었지만 패션에 대한 지독한 관심은 자연스레 세계적인 디자이너들의 의상을 수집하는 일로 이어졌다. 샤넬과 니나 리치, 알렉산더 맥퀸, 최근의 로다테까지 그녀는 삶을 자신의 무대라고 생각하며 그 무대를 위한 옷을 사들였다.

 

 

 이번 전시는 패션 컬렉터로서의 그녀의 삶과 소장물을 함께 볼 수 있는 전시다. 패션의 생산은 최종적으로 디자이너의 몫이지만, 되집어보면 결코 디자이너 혼자서 이 모든 걸 완성하는 것이 아니다. 샤넬사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인 칼 라거펠트는 항상 '다프네 기네스'가 자신의 영감의 원천이라고 말해왔다. 디자이너들이 새로운 룩을 선보일 때마다, 런웨이를 벗어나 실제의 삶 속에 들어가기 위해선 다양한 이들의 손을 거친다. 패션 매거진의 에디터와 사진작가, 소매업태의 바이어, 패션의 트렌드 세터 등, 각각의 층위를 지나며 패션은 우리의 일상 속 일부분으로 용해된다.

 

패션계에서 통용되는 단어 중 스타일 아이콘이란 단어가 있다. 이것은 특정 패션의 초기 채택자인 얼리 어답터나 셀러브리티와는 또 다른 의미를 지닌다. 스타일의 아이콘이 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패션 디자이너에게 영감을 주어야 하고 이 과정을 통해 만들어진 옷에 '개인'의 영혼을 불어넣어 의인화 시킬 수 있어야 한다. 즉 옷을 사회화의 일부로 확증하는 것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 타인들이 옷을 입는 방식 혹은 착장에 대한 생각의 방식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을 때, 그 정도의 힘을 가진 존재를 가리켜 스타일 아이콘이라고 부른다.

 

 

 디자이너 패션과 대중패션을 절묘하게 조합한 미셸 오바마나 케이트 모스, <섹스 앤 더 시티>에서 온통 여성들을 쇼퍼홀릭으로 몰아넣었던 사라 제시카 파커, 독특한 의상으로 패션을 무대위의 퍼포먼스의 일부로 재현한 레이디 가가 등이 바로 이러한 스타일의 아이콘이다. 물론 복식사적으로는 자신의 겅중맞은 신체에 맞는 미소년의 룩을 탄생시킨 근대패션의 어머니 샤넬도 스타일의 아이콘이다.

 

 

다프네 기네스도 단순히 옷의 착용자를 넘어 실제 디자인 과정에 참여함으로써 새로운 스타일리스트로서의 전기를 마련했다. 2009년 콤므 데 가르송과 함께 향수를 런칭했다. 이외에도 고 이사벨라 블로의 옷장 전체를 경매에서 사들였다. 그녀는 경매장에서 '이사벨라의 소유물이 '병들어가는 기억 속의 편지'로 남는 걸 원치 않아서 '일을 저질렀다'고 표현할 만큼 그녀는 옷에 맺혀있는 인간의 기억을 소중하게 생각한다.

 

 

이외에도 다양한 오트 쿠튀르 작품들을 수년째 수집하며 장인의식과 패션의 결합을 옹호하고 특히 중세의 갑옷에 단단히 미쳐있는 열혈 패션 컬렉터다. 제작기간만 5년이 넘게 걸린 금과 다이아몬드로 만든 긴팔장갑, 그녀가 흔히 콘트라 문둠(Contra Mundum-세상을 거스른다는 뜻)이라 부르는 이 장갑을 끼고 각종 무대와 파티에 참여한다.

 

 

그녀는 특히 로코코 시대부터 이어져온 여인들의 승마복에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복식사 속 승마복을 디자이너에게 맞겨 자신의 몸에 맞도록 변형시키기도 하고 새롭게 디자인을 해서 입었다.

 

 

크리스찬 라크루아와 발렌티노, 알렉산더 맥퀸 등 세계적인 디자이너들의 의상을 볼 수 있는 기회도 흔치 않다. 특히 맥퀸의 경우 올 여름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 열린 회고전을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전시에서 볼 수 없었던 실제 의상들을 다수 볼 수 있어 큰 힘이 되었다. 그녀는 300여벌이 넘는 맥퀸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이외에도 기네스와 함께 협업작업을 통해 태어난 다양한 패션 액세서리도 선보였다. 특히 모자 디자이너 필립 트리시의 작품과 숀 린의 '갑옷'에서 영향을 받은 주얼리, 그녀의 시그너처가 된 높은 크리스천 루부탱의 플랫폼 슈즈까지 눈이 멀 지경이었다. 

 

알렉산더 맥퀸의 부츠는 화려하다 못해, 중세의 고딕적인 느낌까지 발산한다. 음산하고 차가운 기운이 퍼질것만 같다.

 

 

한국에서도 스타일의 아이콘들이 등장하길 바란다. 단순히 돈이 많아서, 연예인으로써 유명세를 떨치고 있기에 자칭 스타일리스트들의 '옷 따라잡기'의 모델이 되는 사람 말고, 디자이너들에게 영감을 줄 정도로 패션에 대한 깊은 지식과 이해, 사랑을 가진 그런 사람 말이다. 무엇보다도 패션의 본령이 '개인주의의 확산'이란 숙제를 자신만의 독특한 스타일로 언어화 할 수 있는 그런 아이콘들이 등장하기를 간절히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