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 Fashion/패션 필로소피아

프랑스 장인이 말하는 "내가 생각하는 명품은"

패션 큐레이터 2011. 10. 25. 00:55

 

프랑스 패션을 이해하는 법

 

오늘 섬유센터 17층에서 열린 <유럽시장 이해 및 진출 프로세스 세미나>에 다녀왔습니다. 지난번 회사 일로 글로벌 패션 포럼을 빠진 후 어떻게든 강의를 듣고 싶은 내용을 찾고 있었는데 패션협회에서 메일이 왔더라고요. 지난번 창의적 패션 디자이너 육성 프로그램에 <스토리텔링> 분야로 강의를 하면서 디자이너들과 알게 되고, 그런 인연이 깊어져 이렇게 강의도 들을 수 있었습니다.이번 세미나에선 프랑스 시장에 대한 심도깊은 이해를 위한 강의들이 이어졌습니다. 패션 마케팅과 문화가 접목되는 사례, 프랑스 섬유패션산업과 유통구조에 대한 강의, 에르메스 사의 장인에게 직접 듣는 명품에 대한 견해 등 다양한 내용들을 생생하게 들을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뉴욕시장에 이어 프랑스 파리에 진출, 자신의 브랜드로 승부를 하고 싶은 디자이너들과 학생들, 이외의 패션 전문가들이 참여한 세미나입니다. 저로서는 프랑스 패션시장에 대한 개괄적인 정보와 이해를 돕는 자료들을 받을 수 있어 좋았습니다. 무엇보다 프랑스 현지에서 디자이너로 활동하면서 실제 몸으로 체득한 경험들을 나누는 것은, 관련 정보지나 텍스트를 통해 얻는 지식보다 더 몸에 와 닿는 것이기에 열심히 수업에 임해야 했습니다.

 

 

오늘 강의를 맡아준 4명의 프랑스 전문가들입니다. 오른쪽부터 프랑스 시장과 트렌드 전문가인 양혜진님, 에르메스사의 가방 장인이신 강희선님, 패션 디자이너 윤성보님, 마지막으로 해외진출을 위한 컬렉션 전략을 맡아주신 디자이너 Eunwha Paris의 대표 김은화 선생님입니다. 특히 프랑스 파리의 패션시장을 구역별로 나누어 소비자 성향을 정리한 표가 일목요연해서 한 눈에 소비자가 원하는 컨셉에 따라 나뉜다는 점을 명확하게 알 수 있어 좋았습니다. 이외에도 백화점과 편집샤브, 인터넷 매체 등 현재 파리에서 뜨고 있는 경향들을 조금씩 머리 속에 담아봤습니다.

 

이외에도 바네사 브루노나 산드로, 마주, 바바라 뤼엘 등 최근 젊은 파리지엔들을 상대로 인기를 끄는 참신한 브랜드에 대한 소개도 좋았고요. 물론 마주(Maje)와 산드로(Sandro)는 한국에 이미 런칭해 있습니다. 그만큼 패션이란 언어를 공유하는 수준과 시간의 폭이 짧아졌지요. 그러나 여전히 현지 시장에 대한 정확한 이해는 필수고, 언어문제로 인해 유럽시장은 공략이 만만치 않은 곳이기도 하다는 점,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에르메스 사의 가방 장인인 강희선님의 강의는 약간 평이하게 이뤄졌지만, 무엇보다 장인으로서, 직업에 대한 철학과 자신이 느끼는 프렌치 럭셔리의 강점, 패션 액세서리 시장의 가능성 등 다양한 토픽을 쉽게 풀어내서 호평을 받았습니다. 강희선님의 주장을 요약하면 '가방을 디자인할 때, 액세서리 디자인은 부차적이다' 라는 점과 '소재중심적 사고를 갖고 가방의 패턴을 중요시하라'는 점 두 개입니다. 무엇보다 이 분이 한 말씀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디자이너는 자신의 제품과 같이 늙어갈 때 힘을 발휘한다"라는 말이었습니다. 나의 이야기를 제품에 각인시킬 수 있을 때, 진정한 제품의 성격을 살리는 힘이 된다는 것이겠지요. 이런 의미에서 제품과 이야기의 만남, 스토리텔링의 중요성은 다시 한번 부각될 수 밖에 없습니다. 저 스스로 이번 패션협회에서 디자이너들을 대상으로 '패션과 스토리텔링'을 주제로 강의하면서 이 부분에 대해 고민을 했거든요.

 

 

이번 강의에서 가장 충실하고 다양한 견해를 피력해 주신 분은 패션 디자이너 윤성보 선생님입니다. 패션 디자이너로 15년째 파리 현지에서 활동하고 계십니다. 찰스 주르당과 마틴 싯봉 등 세계적인 패션 브랜드를 거쳐 파리 에스모드에서 강의경력까지, 프랑스 현지 시장과 활동에 관한 한 상당한 통찰력을 이번 강의를 통해서 전해주셔서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내년 1월에 파리에 페어 방문 차 가게 될 때 인사를 드리러 가겠다고 말씀 드리고 왔는데요. 이분의 주장은 딱 한 마디로 '패션은 자신을 표현하는 비즈니스다' 입니다. 표현과 비즈니스, 이 두 영역이 치열하게 교차하며 충돌하고 때로는 조화를 이루어야 하는 세계지요. 패션의 본 고장인 파리를 공략하기 위해 준비해야 할 것들에 대해선 '파리지엔의 취향을 완벽하게 분석'하고 디자이너로서 자신의 이미지를 정립하는 장소로 '파리'란 패션 캐피틀을 이용해 줄 것을 당부하셨습니다. 이외에도 한번에 대규모 투자를 한 후 바로 결과가 나오지 않는 곳이기에, 그만큼 빨리 기가 죽어 시장에서 철수하기 보다, 5년 정도는 꾸준히 작업을 해서 도전해 볼 것을 권유하시더군요.

 

파리 시장에서 패션으로 성공을 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디자이너로서 자신의 포지셔닝을 명확하게 가져갈 필요가 있다는 말에 동의합니다. 최근 패션시장은 명품 럭셔리 브랜드와 SPA 브랜드로 양분된 양상입니다. 이 가운데서 자신의 브랜드를 갖고 디자이너로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시장 내에서 자신의 위상을 가져가야 할 것인가를 고민할 수 밖에 없습니다.

 

시장에서의 성공은 결국 시장을 읽는 기술과 노하우에 달려 있지요. 이는 다시 말해 소비자 행동의 변화와 그 조짐을 섬세하게 이해하고 몸으로 느끼는 것입니다. 희귀성있는 제품을 추구하는 고객층, 단 가격대는 중간 가격대를 추구하는 고객을 잡거나, 저가 추구고객이지만 패션의 독창성을 찾는 고객층을 만족시킬 수 있는 제품을 내놓을 때, 성공의 가능성이 커진다고 하시네요.

 

파리나 밀라노, 뉴욕 어디든 패션이란 휘발성 높은 상품으로 성공의 반열에 오르기란 쉽지 않습니다. 어느 사업군이나 마찬가지지만요. 저는 패션만이 어렵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국내 최고라는 삼성도 애플과의 경쟁에서 4패를 기록하는 걸 보면서, 우리가 진정 투자해야 할 부분이 어디에 있는가를 생각해 봅니다. 전자산업도 소프트적 측면을 강조하는 쪽이 대세를 이루는 요즘, 우리의 패션 산업은 안타깝게도 내셔널 브랜드들이 유통업체에 하도 치여서, 하나같이 셀렉트 샵에 매달리는 형국입니다.

 

이런 가운데서 디자이너를 국가적으로 육성하기란 쉽지가 않지요. 디자이너들의 부담은 가중될 뿐, 실제로 디자인 전 공정과 생산, 유통에 이르는 다양한 실험과 가능성을 측정하고 실패를 교훈삼아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거나 하는 식의 노력을 하기 어렵다는 말입니다. 우리의 패션 시장이 온라인과 인터넷을 통해 외형적으로는 성장했고, 커졌다고 말할 수 있겠지만 점차 이 땅에서 우리의 패션을 찾아보기 어려워진다는 말도 되지요. 그만큼 쉽지 않습니다. 좋은 해결책을 찾아가기 위해 다양한 방법들을 모색해야 할 시기인 것이죠. 우리 모두가 하나가 되어 이 땅의 패션산업과 창의성에 기반한 산업 클러스터의 경쟁력을 올려야 할 때입니다. 위기는 항상 두려움만을 동반하지 않습니다. 더 큰 가능성을 잉태할 수 있는 기회가 되니까요. 함께 힘을 내보자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