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넬 제국을 만든 남자-패션 디자이너 칼 라거펠트 전시리뷰
대림미술관에서 열린 칼 라거펠트 사진전 오프닝에
다녀왔습니다. 연일 계속되는 기업체 강의 때문에 포스팅이 다소
늦어졌네요. 깊어가는 가을, 여인들의 패션도 더욱 원숙한 향을 배가하는 요즘
샤넬과 펜디의 수석 디자이너로서, 샤넬의 문화적 유전자를 지금껏
완벽하게 유지하고 계승, 발전시켜온 아티스트의 작업을 '
살펴보는 일은 즐거웠습니다.
음악평론하시는 성시완 선생님,
월간미술 이건수 편집장님, 사진사가 박주석 교수님
등 많은 분들이 오프닝에 와 주셔서 함께 좋은 이야기도 나누었습니다.
패션이 현대에 들어와, 자체의 예술성을 통해 미술관이라는 부르주아의 저장고에
조금씩 화려한 빛을 발하는 화석으로 기록되기 시작하는 점, 저는 여기에
항상 주목합니다. 패션은 시즌이란 한계성에 묶여있는 상품의
세계와 영원성을 목표로 하는 예술성의 중간에
걸터있는 애매모호한 '무대'입니다.
그 모호함을 다루는 이들은, 명멸하는 시간의
흐름을 즐겨야 하고, 찰라의 순간속에 근대의 정신을
삽입할 수 있도록 다양한 자료들과 씨름하지요. 패션 디자이너
칼 라거펠트도 바로 그런 이들 중에 한 사람이 아닐까요? 우리는 그저
그에 대해 샤넬과 펜디사의 각각 20년이 넘는 세월을 제국을 지키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정도로 기억해왔습니다. 몸에 꼭 끼는 정장, 검정색 선글래스, 가죽장갑, 여기에 마치
르네상스 시절, 재단사처럼 백색 러프로 목을 감은 옷을 시그너처처럼 입고 다니죠.
외면적으로 드러나는 디자이너의 모습입니다. 이번에 온 작품들을 보니
하이디 클룸을 모델로 삼아 반전사진을 찍은 작품도 보입니다.
2009년 <누메로>지에서 봤던 작업이었는데요.
칼 라거펠트는 현존하는 디자이너 중
가장 다양한 예술 범위의 경계를 넘나들며, 패션창작자로서
자신의 영역을 확장해왔습니다. 우리는 흔히 패션 디자이너 라고 하면
그저 한 벌의 옷을 디자인 하는 사람 정도로 치부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조금만
표피적인 이해를 넘어, 소비재, 건축, 인테리어, 심지어는 자동차에
이르기까지 그 상상력을 결합시키고 있는 협업의
사례들을 찾아볼 수가 있는데요.
중국의 여배우 장쯔이와의 협업 작업도 보입니다.
약간 팝아트 풍으로 재해석한 것인데, 사실 이 작품은 팝아티스트
로이 리히텐슈타인의 작업과 너무 닮아있죠.
제가 디자이너 칼 라거펠트를 좋아하게 된 건
단지 복식사에서 그가 차지하는 디자이어로서의 위상 외에도
그의 서재에 꽂혀있는 수십 만권의 책 때문이었습니다. 수십년에 걸쳐
디자이너의 컬렉션을 구상하는데, 아이디어를 빌리거나 영감을 떠오르게 해주었을
수많은 책들의 숲, 그 아래서 도도하게 검정색 선글래스를 벗지 않고
스케치에 몰입하는 그의 모습이 참 멋졌습니다.
그의 실험적인 성격이 드러나는 작품 사진에서
디렉터로서 사진작가들과 협업한 작품들, 펜디와 샤넬을
위해 감독을 맡아 디자인한 사진들이 선보입니다.
패션잡지가 너무 주변에 즐비하다 보니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패션 잡지에서 보는 이미지들에
중독되거나, 혹은 무덤덤해지는 경우도 많죠. 이런 감성적인
무뎌짐이란 지속적인 노출에 의해, 우리의 감정들에 각질의 옷이 입혀
진 탓입니다. 디자이너들도 마찬가지로 이런 세계 속에 놓여진
소비자들에게 자신의 입장과 관점을 드러내려면
더더욱 예민하게 자신의 속살을 드러내야죠.
그 과정에서 마구잡이로 자신의 세계를 노출하는 것은
아닙니다. 제가 디자이너 라거펠트의 소장 도서들을 보면 느낀 점도
그렇습니다. 그의 사진들은 어떤 점에서 보면 리처드 아베든과 같은 기존 작가들의
작업과 유사한 측면들도 많이 보입니다. 분명 디자이너로서, 사진이란 독립적인 매체로 작업을
할때, 얻게 된 영향의 흔적이겠지요. 그러나 더 중요한 건 이러한 시각적인 텍스트를
디자이너가 자신의 관점에서 해석하고 정리하고, 자신만의 색이 덧붙여질
때쯤, 그들이 양산하는 작업은 새로운 성격의 세계가 된다는
점입니다. 인문학과 예술이 떨어질 수 없는 이유죠.
칼 라거펠트를 보면서 우리 사회가 반성해야 할 것은 바로
예술성, 창의력과 같은 말이 한때의 유행어로 끝나지 않고 사회의 중요한
정신적 자양이 되기 위해 디자이너가 어떤 관점에서 사물을 보고, 사물의 표피와
내면을 찍고, 그것을 옷을 통해 재해석 해왔는지, 그 정신의 오디세이를 찾아보는 일입니다.
이것이 없다보니 말만 꺼내면 인문학이요, '어머 선생님 요즘 인문학이 대세잖아요' 이 따위 논평들을
듣게 되는 겁니다. 인문학은 삶의 불편한 진실을 대면케 하는 렌즈입니다. 디자이너의 세계를
살펴보는 일도 이와 같습니다. 인문학적 관점이 없이, 그저 표피적인 한 벌의 옷을
해석하다 보면, 우리는 다시 한번 '올 시즌 우리를 사로잡는 패션' 이따위
수사학에 우리를 얽매기에 만들겠지요. 그런 더러운 세상이
싫어서 오늘도 열심히 패션을 위해, 패션을 통해
싸우고 있습니다. 함께 해주실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