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경원 의원을 위한 그림-장애인에도 등급이 있나요?
미인도 · 동(冬) [김기창 作] 시대유감, 장애인에도 등급이 있나요?
서울시장 선거를 둘러싼 행보가 가열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정책을 꼼꼼히 살펴보는 지금, 중요한 것은 정책의 가시적인 성과를 이루기 위한 토대가 되는 지표와 수치의 균형을 살펴보는 것일거다. 안타깝게도 정책선거에 대한 비전 보다 이번에도 상대 진영에대한 네거티브가 잦아들고 있지 않아 우려된다. 이런 가운데 나경원 후보를 둘러싼 한나라당 선거 위원회의 대변인을 맡았던 신지호 의원이 <100분토론>의 취중방송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퇴를 했다.
안타까운 것은 그들이 내건 사과문조차 반말로 작성되어 시민들의 공분을 샀다는 점이다. 공손하게 사안에 대한 사과를 올려도 시원찮은 판에, 거의 국민들을 겁박하듯 반말투로 쓰여진 사과문은 이후 선거위 게시판에서 삭제되었지만 명민한 네티즌들의 추상같은 눈길을 피하지 못한채, 관련 화면은 캡쳐 되어서 이리저리 퍼지고 있다. 어디 이뿐인가? 정신지체장애인을 벌거벗겨 목욕시킨 일 때문에, 장애인 인권침해로 언론의 십자포화를 받은 나 의원측은 고인이 된 스티브 잡스의 이미지까지 패러디해, 다시 공분을 샀고 관련 화면을 1분간 담당자의 실수로 올렸다는 거짓 해명(실제로는 5시간 이상 화면에 떠 있었다) 을 올려 또 다시 공분을 샀다. 거짓말이 계속 거짓말을 양산하고, 국민들의 분노를 샀다.
더욱 재미있는 건, 이런 상황 속에서도 반성없이 민주당이 네거티브를 하고 있다고 나 의원측에서 주장한다는 점이다. 글쎄 그럴까? 스티브 잡스 건이나 장애인 목욕 건은 모두 언론에 의한 일차 노출은 있지만, 실제로 그것이 온라인으로 퍼지는 속도와 깊이는 정치혐오와 선거철 이미지 선거에 식상한 건전한 네티즌들의 참여를 통해 누적된 결과가 아닐까.
시각장애인 예술단 '한빛예술단' 정기연주회 자리에서 나경원 의원측은 "시각장애인은 장애인 중에서도 제일 우수하며, 우리가 관심을 가질수록 더 역량을 발휘할 것" 이라고 축사했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이 축사를 듣는 순간 불쾌감에 사로잡혔다. 시각장애인들이 주축이 된 장소이니만큼, 덕담을 하는 것은 좋다. 하지만 마지막 문구가 내 귀에 걸렸다. "시각 장애인은 장애인 중에서도 제일 우수하다"라는 말. 바로 여기에는 장애인 조차도 그 효능감과 경쟁력에 등급을 부여해 서로를 배제하려는 정치가의 무서운 철학이 담겨 있다고 사려되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나경원 의원에 대한 비난보다, 정치권 전반에 걸쳐 장애인에 대한 시각과 태도를 묻는 글을 쓰기 위해 오늘 펜을 들었다.
장애인은 우리 사회에서 여전히 배제된 존재다. 장애인/정상인에 대한 엄존한 구분을 만들고, 서로간의 개입의 여지를 사회적으로 일궈오지 못한 사회. 그 속에서 장애인들은 모든 사회생활에서 정상인이 경험할 수 없는 제약들에 놓인다. 시각장애인이 장애인 중 제일 우수하다란 말은, 시각장애가 아닌 다른 신체 장애및 정신 지체자의 경쟁력을 폄하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 위험한 발언이다. 이 땅에서 장애인의 삶은 '신체부위'와 상관없이 동일한 힘겨움과 척박함에 놓여있다. 나경원 의원은 이 점을 철저하게 간과했다.
정청(靜廳) [김기창 作] 비단에 채식
나경원 의원, 완곡어법에 관한 학습이 필요하다
예전 나경원 의원은 비슷한 발언으로 고초를 겪었다. 2008년 '경남여성지도자협의회 정기총회'에 참석 1등 신붓감은 예쁜 여자 선생님, 2등은 못생긴 여자 선생님, 3등은 이혼한 여자 선생님, 4등은 애 딸린 여자 선생님이라 발언, 여성 교육자들의 공분을 샀다. 여성을 생물학적 대상으로 볼 때, 이런 구분이 가능한 셈인데, 이를 두고 해당 '정당의 정체성'을 굳이 캐묻고 싶지도 않다. 내가 보기엔 나경원 의원에겐 '사회적 발화, 공적 자리에서 말하는 법'에 대한 교육이 필요한 것 뿐이다. 기본적인 교양의 문제인 것이다.
모든 언어에는 '완곡어법'이란 것이 있다. 흔히 영어에서 유페미즘(euphemism)이란 인간 상호간의 만남에서 상대방을 사회적으로 배려하기 위해 뜻을 돌려서 말하는 것을 말한다. 뚱뚱하다란 표현 대신 '혈색이 좋아 보인다'로 말하는 차이다. 나경원 의원은 자신이 살아온 삶의 과정에서 완곡어법을 배울 기회가 없었던 것 같다. 사람이 사람을 대상으로 등급을 나누는 것, 그 자체가 품위있는 사회의 비전과 거리가 멀다. 이스라엘 출신의 철학자 아비샤이 마길릿은 <품위있는 사회>에서 “품위 있는 사회는 그 사회에 속하는 사람들이 시민으로서 갖는 명예를 훼손하지 않는다. 더 쉽게 말하면 품위 있는 사회에는 이등 시민이 존재하지 않는다”라며 인간의 존엄성을 강조한다.
전복도(戰服圖) [김기창 作] 비단에 채색
나경원식 발화의 근거에는 항상 모든 시민을 일등/이등시민으로 나누려는 정치적 의도(물론 자신의 실제 의지와는 상관없이 문화적으로 학습된)가 배어나온다. 오늘 글을 쓰면서 나 의원에게 추천하는 그림은 운보 김기창 화백의 그림이다. 8살 때 장티푸스를 앓으며 청각장애인이 되었던 운보는 이후 이당 김은호의 사사아래 인물과 풍경을 비롯 한국화의 거장으로 성장한다. 청각장애인으로서 화가로 성장한 그의 삶은 항상 인간승리물의 단골 메뉴이기도 했다. 물론 그를 존경하진 않는다. 그의 삶은 온통 친일로 점철되어 있으며 일본의 군국주의를 떠받는 화가였을 뿐이다. (역사적 해석으로는 단죄어야 할 사람이지만, 아내 우향 박래현과의 사랑, 그림의 완성도는 별개로 존중한다) 그의 미인도는 한국 복식사에서 잃어버린 시대의 패션을 참 잘 그려냈다.
시각장애인이 가장 우수하다라는 표현을 쓰기 전, 다른 지체 장애를 겪는 그룹의 사회적 효능성도 함께 살펴야 옳지 않겠는가? 친일파 화가를 예로 들어서 아쉽지만, (친일파 후손들에게 그녀가 판사로서 베푼 호혜적 관점을 고려해보면) 김기창을 예로 든 건 탁월한 선택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시각장애인이 가장 우수하다가 아니라, 청각장애든, 기타 다른 장애든, 그 삶을 살아가는 각자의 몫이다. 중요한 건 그들을 향해 모욕하지 않는 것이고, 그들을 향한 사회적 시각과 포용의 범위를 확대하는 일이다. 난 그저 이 점을 나경원 의원에게 말하고 싶을 뿐이고. |